스포츠는 내 삶의 원동력입니다
전미경 씨 이야기
본문
↑ 2012 런던 패럴림픽에 참가한 전미경 위원
스포츠는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가져다 준다. 올림픽과 패럴림픽 같은 국제대회에서 선수들의 경기를 통해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도 있고, 우리가 직접 스포츠를 통해 건강한 삶을 누릴 수도 있다.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모두에게 해당된다. 장애인이 스포츠를 하기 힘들 거라는 것은 편견일 뿐이다. 스포츠를 삶의 일부, 아니 전부라고 생각하며 스포츠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는 전미경 씨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에서 스포츠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함께 돌아본다.
전문지도위원 전미경
전미경 대한장애인체육회 전문지도위원은 하계 패럴림픽을 2회 출전한 경력이 있다. 2012년 런던 패럴림픽과 2016 리우 패럴림픽인데, 특이한 건 각 대회에서 다른 종목으로 출전했다는 거다. 런던 때는 수영으로, 리우 때는 싸이클로 출전했단다. 아쉽게도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선수로서 2차례나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패럴림픽에 출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자부심과 의미를 두고 있단다. 그런 전 위원에게 스포츠는 어떤 의미일까.
“교통사고로 경추 부분을 다쳐서 사지마비가 왔어요. 특히 오른쪽을 쓰기 어려워서 거의 움직임이 안 되니까 왼손을 통한 움직임을 많이 하고 있어요. 예전부터 스포츠는 저의 삶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고가 났던 날도 수영을 하러 가는 길이었거든요. 그랬던 제가 사고로 장애인이 되어 움직임이 없으면 거의 죽음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침대에서 아무런 움직임을 하지 않고 남에 의해서 밥을 먹고 신변 처리를 하게 되니까 그건 정말 삶이 아니라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어요. 살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내포가 되어서 스포츠를 다시 하게 되었고, 여기까지 온 게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 위원을 인터뷰하기 위해 만난 곳이 이천 선수촌인데, 전 위원이 내민 명함에 적힌 ‘전문지도위원’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다. 감독이나 코치, 트레이너와 같은 직업을 생각했는데, 전문지도위원은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지 궁금해진다.
“전문지도위원은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고충상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원을 해줄 수 있는 통로라고 생각해요. 선수에게 어떤 게 필요한지 대화를 통해 파악하고 그 필요성과 연결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죠. 이 전문지도위원은 이번 도쿄 패럴림픽에서 처음 생겼어요. 제가 선수일 때는 없었거든요. 저를 포함한 전문지도위원이 3명, 인권관리관이 1명으로 팀처럼 구성되어 있어요. 대학원에서 스포츠심리를 공부하고, 또 선수로서 활동했던 경험을 토대로 우리 선수들이 경기력을 최대치로 향상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어요.”
패럴림픽이라는 큰 대회를 앞두고 선수단이 합숙을 하면, 선수단 내의 모든 구성원이 다 좋은 관계로 지내는 건 쉽지 않다. 대회가 다가올수록 예민해질 수도 있고, 지도자나 선수들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선수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원만한 문제해결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직업이 바로 전문지도위원이다. 보통 코칭스태프의 경우 피지컬, 체력, 의료, 재활, 장비 등 담당이 다 있기 마련이지만, 전문지도위원처럼 선수들을 지원하는 직업은 생소하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직업 특성상 누구보다도 선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될 것 같다.
“스포츠심리에서도 기본은 선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는 건데, 선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없죠. 그런 역할을 저희가 담당하면서 선수들이 심리지원이 필요한지 아니면 체력증진을 위해서 웨이트트레이닝이 더 필요한지 파악하고 연결시키는 게 필요한 거예요. 그리고 현재 전문지도위원은 선수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아무래도 선수로서의 경험이 있으니까 그만큼 선수들의 이야기에 더 공감을 해줄 수도 있겠죠? 또한 각자 이쪽 분야에서 공부도 많이 하신 분들이기도 합니다.”
전 위원은 전문지도위원으로서 이번 도쿄 패럴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원해 주었을 것이다. 이번 패럴림픽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사태로 인해 예정보다 1년 연기되어 개최되는 특수성이 있었고, 올해도 여전히 사태가 진정되지 않아 대회 준비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가까이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봤을 전 위원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일단 훈련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백신 접종을 하고 난 뒤에는 마스크를 벗고 훈련을 하기도 했는데, 문제는 아예 선수촌 밖으로 나가지를 못했어요. 선수들의 외출이나 외박이 안 되는 상황이고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도 차단이 되는 상황이었어요. 또 무엇보다도 훈련 일수가 많이 부족했어요. 작년에는 거의 하지도 못했었고 올해도 연습량이 부족했고요. 이렇게 여러 요인으로 선수들에게 심적으로 불안한 요소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시국이 시국이니까 많이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 중요한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바이러스에 감염되기라도 한다면, 함께 훈련하고 준비하는 선수들과 관계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게 뻔하다. 그런 사태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외부인을 차단하고 선수들의 외출과 외박을 제한했겠지만, 선수들의 심리적 불안감은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선수 출신으로서 전 위원과 같은 전문지도위원의 존재가 큰 역할을 했을 것 같다. 또 옆에서 선수들을 지켜보며 선수일 때 생각도 많이 났을 것이다.
“그럼요. 제가 런던 패럴림픽 때는 수영선수였는데, 그때 같이 훈련했던 친구들 중에 아직도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런 친구들을 보면 나도 선수생활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또 제가 선수로 활동할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선수들의 훈련 환경이 많이 개선된 것 같아요. 지금 선수로 활동하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전보다 훈련 환경이 많이 좋아진 거죠.”
↑ 2012 런던 패럴림픽에 수영선수로 출전할 때의 모습
선수로서의 전미경
전 위원이 선수로 출전했던 패럴림픽은 각각 영국과 브라질에서 개최됐던 대회다. 그래서 대회기간 해당 국가에서 지내봤을 텐데, 장애인 선수들이 운동하기에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면 어떠했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실 저는 우리나라가 더 좋다고 생각해요. 단지 해외가 우리나라보다 더 좋았던 건 시선이에요. 우리나라는 장애인이 지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잖아요. 저도 처음 장애를 갖게 되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게 사람들의 그런 시선이었거든요. 그런데 영국이나 브라질뿐만 아니라 북미 등 다른 국가는 그런 시선에 개의치 않고 다닐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어디를 가도 숨겨져 있는 경사로가 나타나요. 영국에서 지하철을 탈 때는 장애인이 타고 내릴 수 있는 곳에 표시가 되어 있었어요. 또 한번은 지하철을 타려는데 휠체어 앞바퀴가 단차에 끼었어요. 그랬더니 전혀 관심 없어 보이던 지하철 안의 사람들이 우르르 나와서 휠체어를 들어서 무사히 지하철 안으로 넣어줬어요. 정말 감동이었죠.”
역시 우리나라와 해외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장애인이 나타나면 신기하게 또는 불쌍하게 바라보지만, 해외에서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 중 한 명으로 볼 뿐이다. 전 위원이 지하철에 무사히 탑승한 뒤에는 지하철 안에 있던 영국인 가족이 다가와서 같이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요청을 한두 번도 아니라 많이 받아 봤다는 전 위원의 말에서, 어쩌면 해외에서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 못지않게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에 대한 관심과 인기도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선수가 패럴림픽에 나간다는 게 엄청난 영광이잖아요. 런던은 첫 패럴림픽이니까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했고 약간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어요. 일단 태극기를 달고 출전하기 때문에 국가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너무 좋았고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기분 좋고 설레는 경험으로 남는 것 같아요. 그리고 런던 때는 선수촌 밖을 나갈 수 있으니까 쇼핑몰 센터에 간 적이 있거든요. 친구들과 쇼핑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저한테 와서 싸인을 해달라는 거예요. 그때 제가 스타가 된 줄 알았어요(웃음). 사실 그때는 제가 글씨를 쓰기 좀 어려운 때라서 당황스러운 거예요. 그래도 왼손으로 최선을 다해서 모자와 흰색 티셔츠 등에 싸인을 해줬던 기억도 나네요.”
그렇게 런던에서 수영선수로 패럴림픽에 출전했던 전 위원은, 4년 뒤 리우에서 열린 패럴림픽은 수영이 아닌 싸이클로 종목을 변경해서 출전했다. 4년의 준비기간이 있다고 해도 종목을 변경하는 결정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이유로 종목을 변경하여 출전하게 된 걸까?
“간단한 이유는 메달을 따고 싶어서였고, 감독님의 유혹도 하나의 이유였어요(웃음). 수영은 실내 종목이지만 싸이클은 실외 종목이잖아요. 감독님이 저를 유혹할 때 한번 타보라고 하셨거든요. 실내에서 탔는데도 바람이 제 얼굴을 탁탁 치는 느낌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그 바람의 유혹에도 빠져서 싸이클에 도전하게 되었어요. 바람이 실내에서도 이렇게 좋은데 실외면 얼마나 더 좋을까 생각하게 된 거죠. 메달을 땄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그래도 싸이클을 하면서 예전보다 많이 건강해졌어요. 신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스스로 많이 단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 덕분에 공부 등 앞으로 뭔가를 더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전 위원처럼 어깨가 튼튼했던 덕분에 수영에서 바로 싸이클을 할 수 있는 경우처럼 종목을 변경할 수도 있나 보다. 싸이클을 처음부터 시작한 게 아니기 때문에 스킬(기술) 같은 부분에서 부족할 수도 있지만, 전 위원은 싸이클을 탈 때의 파워가 너무너무 좋았다고 한다. 전 위원에 의하면 해외에서는 선수가 두 가지 종목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한 가지 종목만 선택해야 하는 우리나라는 이런 부분이 아쉽다고 한다.
↑2013 몬트리올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전미경 위원
“아무튼 싸이클 종목으로 출전했던 리우에서는 간절한 마음이 정말 컸어요. 메달에 대한 간절함이죠. 그래서 싸이클이라는 새로운 종목을 선택하면서 겪어야 하는 더 힘든 것을 견뎌내야 하는 게, 어떻게 보면 저에게는 유리한 점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또 런던에서의 경험이 있으니까 단순히 퍼포먼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죠. 그리고 브라질에서는 선수촌 내에서 많이 지냈는데 다른 나라 선수들과 교류를 많이 했거든요. 그때 다른 나라 선수들이 타는 휠체어나 그런 것들이 우리나라에서의 그것보다 더 좋은 게 많아서 부러웠던 게 있었어요.”
국제대회를 한 번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경험을 할 수 있다. 자신의 기량을 다른 나라 선수들과 함께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은 물론, 다른 나라의 훈련 시스템이나 환경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면서 배워올 수 있는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전 위원도 두 번의 패럴림픽 출전을 통해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 선수들에게 아낌없이 물려주고 있다. 그것도 전문지도위원이라는 직책을 통해 누구보다 선수들의 가까이에서 말이다. 선수로 활동하던 때를 돌아보던 전 위원이 에피소드를 하나 더 들려줬다.
“리우에 가기 전에 전북에 있는 한 초등학교 학생들한테서 엽서와 편지를 받았어요.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 비슷한 내용이에요. ‘이렇게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운동을 하세요?’, ‘꼭 메달 따세요!’ 대부분 이래요. 이 중에서 한 학생에게 꼭 답을 해주고 싶었어요. 제가 엽서를 써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리우에 가서 선수 엽서에 제가 운동을 하는 이유를 적었어요. 운동은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이라는 그런 내용이었는데, 그 학생에게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네요(웃음). 여력이 된다면 그 학교로 찾아가서 직접 얘기해주고 싶어요. 또 저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자신의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면 좋겠어요. 그러면 장애인식개선이라는 걸 특별히 하지 않아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을 테니까요.”
장애인도 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독일 수영선수들을 보니까 등급을 나눠서 지원하는 체계가 달랐어요. 등급에 따라 실력에 차이가 있으니까. 또 오전 9시에 출근해서 훈련을 하고, 점심은 밖으로 나와서 또는 집에 가서 먹은 뒤 다시 출근해서 훈련을 해요. 우리처럼 집합을 시켜놓고 하는 훈련과 다른 거죠. 또 독일 선수가 영국에 있는 여자친구랑 떨어져 있는 게 싫은 거예요. 그러면 코치가 영국에 있는 코치와 팀에 부탁을 해서 같이 훈련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죠.”
우리나라라면 그냥 선수들이 대회를 위한 훈련에 전념하도록 하는 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반면 해외에서는 선수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그것을 반영하여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고 노력하고 있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훈련과 경기와 같은 객관적인 것에 집착하기보다, 거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입장을 충분히 생각하는 ‘과정’이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게 아닐까?
“제가 세계선수권 출전으로 스위스에 갔을 때 척수재활병원에 간 적이 있어요. 거기는 병실이 정말 좋은 뷰(view)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의사가 더 좋은 뷰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는 왜 병실이 더 좋으냐고 물어보니까 그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환자들이 좋은 공간에 있어야지 의사들은 어차피 진료하고 가는 사람들인데 왜 좋은 공간이 필요하냐는 식이었어요. 그리고 여긴 재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스포츠를 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어서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게 너무너무 부러웠어요.”
↑ 2016 리우 패럴림픽 때 선수단(왼쪽)과 전미경 위원
장애인의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굳이 통계자료를 내세우지 않아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장애인의 인구가 증가하는 이유는 다양하게 있지만, 그중에서도 산업재해나 교통사고, 낙상과 같은 원인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되는 경우가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 중에서도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되는 경우가 90%에 육박한다. 그런 후천적 장애인이 장애를 가진 뒤에도 삶을 즐기면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스포츠다. 전 위원처럼 처음부터 스포츠를 좋아했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장애에 맞는 스포츠를 찾아보거나 재활을 하는 과정에서 스포츠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렇게 운동을 통해 삶에 대한 즐거움을 찾고, 건강과 취미도 함께 얻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스위스의 병원처럼 장애인이 재활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스포츠를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나라에 서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면 좋겠어요. 재활을 하는 과정에서 이런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소위 ‘장애인이 운동하면 위험해’와 같은 생각은 덜하지 않았을까요? 또 스포츠를 통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도 있고요. 운동할 공간조차 없었던 우리에게는 꼭 필요하죠. 우리도 이제 실업팀이 많이 생기고 있고 운동할 수 있는 체육관과 같은 공간도 생기고 있으니까, 굳이 집합을 시켜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내세우지 않아도 충분히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전 위원처럼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스포츠를 삶의 일부로 또는 전부로 생각하면서 건강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전 위원이 전북의 초등학생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처럼, 스포츠가 삶의 원동력이라고, 삶의 전부라는 게 우리 사회에도 꼭 전달되길 희망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도 많은 장애인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원하는 스포츠를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길.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