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로 농인과 수어를 알린다
농인 유튜버 박상규 씨 이야기
본문
요즘 사람들에게 SNS(사회관계망서비스)만큼이나 생활화된 것이 있으니 바로 유튜브다. 유튜브를 통해 수입을 올리기도 하는 등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장애인 중에도 유튜브를 즐기며 생활화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유튜브를 통해 우리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와 활발히 교류하고 있는 유튜버를 이 지면에 소개하고자 한다. 농인 유튜버 박상규 씨의 이야기를 <함께걸음> 독자들에게 전한다.
대한민국을 알린다
농인 박상규 씨는 4.62천 명의 구독자 수를 보유한 유튜브 ‘DEAF KSL’ 운영자다. ‘DEAF KSL’에서 ‘DEAF’는 농인, ‘KSL(Korea Sign Language)’는 한국수어를 뜻한다. 즉 농인이 한국수어를 가르치고 알리는 것을 유튜브의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유튜브에서 농인과 한국수어를 알리는 대상이 한국사람만이 아니다. 박 씨의 유튜브 구독자와 댓글을 보면 외국인들도 다수 있다는 것을 금방 발견할 수 있다. 한국사람들 중에도 한국수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있는데, 굳이 외국인들에게까지 한국수어를 알리는 유튜브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2019년부터 외국 농인 친구들과 교류를 하며 지냈어요. 당시 외국 친구들은 한류의 영향 덕분에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컸어요. 그래서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 했고, 한국수어도 알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한국과 한국수어에 관심이 있는 외국 농인 친구들과 함께 한국수어를 공부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나라마다 시차가 다 다르니까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함께 뭔가를 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그 당시 유튜브가 뜨기 시작하던 시점이었거든요. 그래서 유튜브를 통해 한국과 한국수어를 알리면 좋겠다 생각하고 시작하게 되었어요.”
박 씨가 한국수어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을 촬영해서 ‘DEAF KSL’에 올려놓으면, 한국과 한국수어에 관심이 있는 외국 농인들이 시차에 관계없이 언제든지 유튜브를 보며 한국과 한국수어를 배울 수 있다. 박 씨의 ‘한국과 한국수어 알리기’를 위한 유튜브 시작은 외국 농인 친구들이 한국수어를 배우고 한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수어를 모르는 한국사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한국수어를 알릴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안녕하세요’는 한국수어로 어떻게 하는지, ‘만나서 반갑습니다’는 어떻게 하는지 등을 박 씨가 촬영한 유튜브를 보면서 특별히 한국인과 외국인 구분 없이 모두가 함께 한국수어를 배워가는 것이다.
“저도 유튜브를 통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한국수어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었지만 아직 한국수어가 한국어와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고, 그만큼 수어에 대한 인식도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유튜브 활동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수어를 알리고 싶어요. 처음에는 외국 농인 친구들에게 한국수어를 가르쳐 주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지금은 한국인들에게도 한국수어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어졌어요.”
실제로 박 씨의 유튜브에 있는 댓글들을 보면 외국 농인들의 영어 댓글도 있고 한국인들의 댓글도 있다. 한국인들의 댓글은 ‘한국수어를 알게 되었다’, ‘이거(유튜브) 보느라 시간 다 갔다’ 등과 같은 긍정적인 반응이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박 씨의 유튜브를 통해 수어를 몰랐던 한국인들이 대한민국 제2의 언어인 한국수어를 배우게 되고, 자연스럽게 농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저도 유튜브를 하면서 ‘감사하다고, 덕분에 좋은 정보를 얻어간다’는 내용의 댓글을 종종 보거든요. 외국 농인들도 있고 한국인들도 있는데 그런 댓글들을 보면 유튜브를 하는 입장에서 뿌듯하고 한국수어를 알릴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한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꾸준히 유튜브 활동을 하고 싶고 저의 활동을 통해 지금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수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한국수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아마 지금보다 농인에 대한 인식도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한류의 영향으로 외국인들이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면, 그 외국인들 중에 농인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외국 농인들은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도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충분히 한국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박 씨의 유튜브를 통해 한국수어를 배움과 동시에 한국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박 씨의 유튜브를 통해 한국수어와 한국을 외국에도 알리고 있다.
↑‘감사합니다’를 한국수어로 하고 있는 모습
농인이 유튜브를 할 권리
전 세계를 강타했던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대한민국에서 수어와 관련해 생긴 한 가지 큰 변화가 있다. 기존 뉴스에서 수어통역이 나오는 위치는 화면의 오른쪽 하단에 ‘작게’ 나왔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매일 브리핑되는 확진자 수와 거리두기, 방역수칙 등 관련 정보를 농인들이 제대로 접하기 어려워함에 따라, 수어통역의 크기가 이전보다 확연히 ‘커진’ 것이다. 농인들이 정보에 접근할 권리, 알 권리 등 헌법상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모습이지만 사실 수어통역의 크기는 꼭 코로나19 사태가 아닌 ‘보통’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에서도 크게 배치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뉴스에서의 수어통역 크기뿐만 아니라 그동안 유튜브를 하면서 비장애인 유튜버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라고나 할까요?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그런 느낌이 있었던 건 사실이에요. 저는 아무래도 구어를 못 하고 수어만 해야 하니까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수어나 자막 등으로만 보여줘야 하니까요. 아무래도 유튜브니까 조회 수를 통해 더 알려질 수도 있는데 수어나 자막을 통해서만 전달을 해야 하니까 한계가 있기 마련이죠. 그래도 어떻게 보면 이렇게 유튜브를 하는 게 저만의 특징이자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이젠 충분히 즐기면서 하고 있어요.”
지금 박 씨의 유튜브 구독자 수도 충분히 많은 편인데, 그래도 수어나 자막으로만 알린다는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단순히 한국수어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을 넘어 유튜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박 씨의 유튜브에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보다 자연스럽게 한국수어에 대한 관심을 더 높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를 보면서 뭔가를 배우고 이해하게 되는 것처럼 박 씨의 유튜브를 보고 한국수어를 배우고 농인을 이해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유튜브 활동을 통해서 사람들이 한국수어뿐만 아니라 농인에 대해서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농인이 수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고 ‘말’로만 대화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하면 좋겠거든요. 그러니까 누구나 ‘다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또 존중해 주면 좋겠어요. 저는 농인으로서 하고 싶은 활동인 유튜브를 편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서 지금보다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크거든요. 비장애인들이 유튜브를 활성화시켜 유튜브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잘 운영하는 걸 보면 저도 언젠가 꼭 그렇게 해보고 싶어요.”
코로나19 사태에서 농인들에게 나타난 또 다른 한 가지 변화는 ‘실업’이다. 기업이나 사업체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사업의 규모를 줄임에 따라 인력을 축소시키는 경우 비장애인보다 장애인 근로자의 자리가 줄어들게 된다. 농인의 경우에는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입을 비롯한 얼굴 표정을 제대로 보기 어려워 의사소통이 더 불편해진다. 그래서 코로나19 사태에서 농인들의 취업이 쉽지 않다. 그런 환경에서 유튜브 운영을 통한 수익 창출은 농인뿐만 아니라 장애인에게도 새로운 일자리 확보의 길이 될 수도 있다.
↑ ‘제 이름은 박상규입니다’(왼쪽)와 ‘웃다’를 한국수어로 하고 있는 모습
그래서 박 씨가 유튜브를 운영하면서 본인이 원하는 방향대로 한국수어와 농인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모습을 응원해 주고 싶다. 그의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가 농인과 한국수어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농인이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그 ‘직업’이 ‘유튜버’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어떤 직업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선택에 ‘장애’가 절대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박 씨의 열정적인 활동에 <함께걸음> 독자 여러분의 응원을 부탁드린다.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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