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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PS와의 싸움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찾다

사람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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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여기, 저 살아있어요』
 
여기, 저 살아있어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 이하 CRPS)은 신체의 한 부분에 극심한 통증 또는 부종, 경련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통증이 발생하는 부위는 자극에 매우 예민해져 바람이 불거나 옷깃에 스치는 가벼운 접촉에도 극심한 통증을 느낄 수 있다. 이로 인해 CRPS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강한 고통스러운 질환으로 불린다.
 
CRPS 환자들이 느끼는 이 고통은 단지 신체적인 통증을 넘어 고립감과 외로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고통 속에서 김소민 씨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여기, 저 살아있어요』를 발간했다. 자신이 겪은 고독한 싸움을 진솔하게 풀어내며, 같은 아픔을 겪고 있을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아플 때 제일 힘들었던 게 내가 따라갈 수 있는 발자취가 없다는 거였거든요. 저도 아플 때 생각해 보면 고독함과 싸우는 느낌이 되게 컸어요. 근데 희귀병 환자들은 누군가 나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기도 해요. ‘하루를 버티다 보면 좋아질 날이 올 거다’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던 청년
처음엔 잔병치레일 거라 생각, CRPS일 거라곤 상상도 못해
 
CRPS 진단을 받기 전, 소민 씨는 하루하루를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던 청년이었다. 여느 사람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도 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소민 씨는 교사였던 부모님을 보며 자신도 안정적인 교직원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뒤늦게 교사의 꿈을 갖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결단이었지만, 몇 개월 남지 않은 시험에 소민 씨는 하던 일을 정리하고 공부에 매진하기를 결심했다. 그렇게 시험 준비를 시작했던 2018년, 이 해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해였다.
 
“2018년 5월에 하던 일을 다 정리하고 전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임용고시가 12월에 있어서 ‘딱 반년만 달리자’는 생각으로 몇 달 동안 주말 없이 공부했죠. 근데 그게 몸에 무리가 됐나 봐요. 잔병치레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부비동염, 편도선염, 장염이 차례대로 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결국 대상포진이 생겼었죠.”
 
그러나 대상포진도 일시적인 것으로 여겼다. 염증 수치가 눈에 띄게 떨어졌고, 외관상 상태도 호전되어 퇴원도 문제없이 했다. 그러나 퇴원 2주 후, 여름밤 얇은 이불을 덮고 잠을 자다가 통증에 깜짝 놀라 ‘악!’ 소리를 내며 깨어났을 때 소민 씨는 자신의 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음을 직감했다.
 
△ 포즈를 취하는 소민 씨
 
처음 듣는 병명에 곧 낫겠다는 생각
겉으로 보이지 않아 고독감도 심해
 
‘뼈가 꺾이면서 부러져 나가는 통증’
‘망치로 내리치는 듯한 통증’
‘피부를 불로 태우는 듯한 통증’
 
상상의 범위를 넘어선 고통이었지만 소민 씨는 곧 나을 수 있는 병이겠거니 생각했다. 난치병이라는 말에도 여느 때처럼 노력한다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이내 접혔다.
 
“우리가 울면 몸이 들썩이면서 진동을 하잖아요. 그게 또 아픈 거예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이 악물고 가만히 있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상생활은 사라지고 종일 마우스피스 끼고 방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게 전부였죠.”
 
사라진 일상에서 더욱 좌절을 주었던 것은 점점 심해져 가는 고통이었다. CRPS의 통증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주요 양상으로 구분된다. 바람이나 접촉 같은 외부 자극에 의해 강하게 발생하는 ‘돌발통’, 상대적으로 약한 강도가 지속적으로 느껴지는 ‘지속통’이다. 소민 씨는 초기 돌발통 수준의 고통이 나중에는 지속통으로 변할 정도로 증세가 악화되었다.
 
△ 입원 당시 소민 씨와 CRPS 안내 문구
 
소리조차 내지 못할 고통, 그러나 CRPS는 외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타인이 정도를 공감하는 데 어려움도 있다. ‘꾀병 아니야?’라는 말도 들으며 심한 고독에 빠져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암에 걸리면 가족은 물론 친척과 사돈까지 난리가 나잖아요. 그런데 CRPS는 그 자체가 생소하고 겉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계속해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요. 심지어 사람들로부터 ‘왜 이걸 못 이겨내고 있냐. 나도 허리 아프고 무릎 아프고, 사람은 다 아프면서 산다’는 말을 듣기도 해서 더 깊은 고독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고통으로 인해 24시간을 깨어있어야 했다
처음으로 희망을 찾았던 2020년 가을
 
CRPS 환자들은 극심한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와 다양한 약물을 복용한다. 그러나 약물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추가적인 약물을 복용하게 되며 결국 소민 씨는 하루에 100개에 달하는 약을 복용해야 했다.
 
특히 한 번에 20~30개의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도 있었고, 손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그중에는 수면을 위한 약물이 많았는데 이는 고통으로 인해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하루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아프니까 24시간 내내 깨어있어요. 그래서 약으로 몸의 기능을 꺼버리는 수준의 약을 먹는 거죠. 약을 먹으니 너무 아프다가도 잠깐씩 잠이 드는데 시계를 보면 1분 지나가 있고.. 진짜 많이 잘 때가 한 5분 정도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걸 다 합치면 하루에 30분 정도가 된 거죠. 하루에 30분도 못 자는 날도 많았어요.”
 
소민 씨는 신경차단술, 각종 경구약, 모르핀 주사, 케타민 치료 등 가능한 모든 치료를 시도했으나, 효과는 일시적이었다. 그러다 2020년 봄, 신체에 전자 판을 삽입하여 뇌로 향하는 통증 신호를 변환하는 척수자극기 수술을 하면서 드디어 호전의 기미를 보았다. 조금이라도 생긴 희망의 끈을 놓칠 수 없었던 소민 씨는 이때부터 회복을 위한 재활치료에 열심히 임하며 통증을 줄여갔다. 현재는 하루에 6시간 정도 자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아는 주변 지인들은 소민 씨를 만나면 늘 '잠은 잘 잤어?'라고 묻곤 한다.
 
다시금 느낀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소민 씨는 현재 지속적인 통증은 여전히 있지만, 그 정도가 많이 호전되어 하나하나 잊고 있었던 일상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앉아 있는 시간을 늘리고, 걸음걸이와 목을 반듯하게 가누는 연습을 하며, 발음이 어눌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이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해내기 위해 노력하며 복귀를 도모했다.
 
소민 씨에게 앞으로의 목표에 관해 물으니 ‘평범한 일상의 복귀’를 꼽았다. 이전에 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하던 일을 다시 하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그 도전으로 올해는 작게나마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도 했다. 가장 통증이 심했던 시기에 밥 대신 견과류를 먹었던 것에서 영감을 얻어, 직접 원물을 선택하고 로스팅하고 포장하며 배송까지 하는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이 점점 커졌다며 나름대로 분주한 일상에 너스레 웃었다.
 
△ 회복 후 등산을 한 소민 씨
 
고통 속에 있을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 되었으면
 
희귀성 난치병인 CRPS, 이를 겪는 사람들은 언젠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분명하지 않아 깊은 절망에 빠진다. 그 외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소민 씨는 그들의 곁에 더 다가가고 싶다고 말한다. 
 
“내 몸을 잘 관리해서 계속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 조금씩이라도 계속 좋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고통 속에 있는 분들에게 하루를 버틸 힘을 주고 싶어요.”
 
끝없는 고통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소민 씨는 평범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작은 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작성자글. 동기욱 기자 / 사진제공. 김소민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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