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제게 더 열정적으로, 더 넓은 물에서 놀아보라는 의미인 것 같아요
사람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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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집에서 강의를 진행하는 오성윤 강사
“하츄핑과 바로핑은 같아요?”
그러자 5살 정도의 아이들이 “아니요~”, “에이 당연히 다르죠!”라며 앞다투어 대답한다.
“그렇죠? 하츄핑과 바로핑은 달라요. 특성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능력도 달라요. 그렇다면 장애는 다른 걸까요, 틀린 걸까요?”
다시 한 번 아이들이 “다른 거요!”하고 크게 대답한다.
유치원생 대상의 장애인식개선교육 현장에서 만난 오성윤 강사. 그의 눈가에는 친근한 미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지체장애인 당사자로서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오 강사는 비장애인으로 50년을 살아오다 10년 전 사고로 경추에 손상이 가 목 아래의 신경이 모두 마비되었다. 그러나 그는 움직일 수 있는 목과 얼굴, 어깨의 가동으로 세상을 바쁘게 누빈다. 자신이 거주하는 창원 마산지역은 물론이고 부산, 울산, 진주, 서울까지. 그가 가는 길에 망설임은 없다.
천장이라는 지옥에서 탈출
사고 이전 오성윤 강사는 교사였다.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걸 좋아하고, 단상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 선택한 교직 생활이 하루하루가 참 즐거웠었다고 회상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자부하는 그는 노래와 풍물에 특기가 있어 아이들에게 흥을 전파하기도 했다.
△ 교사 시절, 풍물 수업을 진행하던 모습
그러다 10년 전인 2014년 1월 30일 있었던 사고는 오성윤 강사의 삶의 궤적을 바꾸어 놓았다. 설을 하루 앞둔 아침, 집 밖에서 미끄러운 바닥에 넘어지게 되는데 이때 신경이 크게 다쳤다. 오성윤 강사는 담담하게 그때를 설명했다.
“안 좋은 상황들이 겹쳤더라고요. 그날은 설을 하루 앞둬서 병원도 문을 닫았어요. 또, 워낙 새벽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나중에 온 구급대원이 저를 호송할 때 목을 안 받쳤다고 하는데, 나중에 의사가 말하기를 그때 목 부분이 잘 지탱했거나 빠르게 수술을 할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상황이 나았을 거라더군요. 만약 그랬다면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일 수 있지 않았을까요?”
6시간의 대수술, 11개월의 입원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몸에 할 수 있는 건 방 안에 누워 천장을 보는 것뿐이었다. 일순간에 가족을 챙기던 ‘엄마’에서 모든 행동을 도움받아야만 하는 ‘짐’이 되어버린 것 같아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정말 지옥 같았죠. 목숨은 있지만 무덤에 있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8개월을 있었는데 ‘언제까지나 이렇게 있을 수 없다’, ‘이제는 스스로 이 무덤에서, 그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장애인을 지원한다는 센터에 전부 전화를 해봤어요. ‘내가 지금 상황이 이런데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하고요.”
전화가 연결된 창원의 한 장애인인권센터가 오 강사에게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를 제안했다. 그렇게 시작한 강의 활동도 올해로 8년째다.
교사에서 전문 강사로, 천직 같은 일
오성윤 강사는 이 일이 ‘천직’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일과표는 빼곡하다. 바쁠 때는 하루에 3~4곳도 강의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장소는 어린이집, 교도소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제가 강의할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은 교육을 듣는 대상에 맞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거예요. 어린이집에 교육 일정이 있으면 그 아이들이 관심 가질 내용들을 강의에 녹여야지요. 예를 들어 요즘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하츄핑’처럼요. 강의안을 정리한 USB만 10개가 넘어요. 제겐 이것들이 보물입니다.”
사람들의 박수, 오늘 강의가 너무 좋았다는 피드백을 들을 때면 피곤과 고통, 외로움은 씻은 듯이 사라진다. 단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뭐라도 하기 위해서가 아닌, 강의를 통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끼기에 하는 것이다.
“24시간 내내 천장만 봐야 할 때 저는 제가 쓸모없다고 느꼈어요. 가끔 누가 찾아와도 불쌍하니까 외로울 것 같으니까 오는 것이었겠지요. 근데 강사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여기저기서 제가 필요하다면서 남들이 먼저 부릅니다. 주변에서 저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지요.”
운전, 주체적인 인생을 사는 데 가장 큰 역할
휠체어를 이용하는 오성윤 강사. 이곳저곳 이동할 일이 많은 강의 활동을 어떤 방법으로 해나가고 있을까. 바로 ‘직접 운전’이다. 사고 이전부터 오랫동안 운전이 취미였을 만큼 운전을 좋아했는데 장애가 생긴 후에도 그 취미는 이어지고 있다.
△ 보조기를 부착해 운전하는 오성윤 강사
“장애가 생기면서 휠체어에 앉아있으니까 사람들보다 키가 작아졌잖아요. 근데 운전석에 앉는 순간, 도로에서는 모두 같은 눈높이예요. 그게 너무 행복했어요. (…)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게 운전인 것 같아요. 내가 운전을 할 수 있으니까 남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이동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면허를 취득하기까지의 여정은 마냥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거주하던 아파트 근처에서 보조기가 장착된 차량으로 연수를 받는데, 아파트 주민들이 ‘장애인 운전연수 차량’이라는 글자를 보고 ‘장애인이 운전하다 아파트에서 사고 나면 그쪽이 책임질 거냐’면서 모질게도 반대했다. 그로 인해 단 몇 번 만에 끝난 연수, 주변의 말들에 상처는 남았지만 장애인 운전면허를 취득한 2016년부터 지금까지 8년간 무사고라고 당당하게 답한다. 주변에서 ‘장애인이 운전하는데 위험하지 않아?’라고 물을 때면 웃으며 ‘운전하는 방식만 다를 뿐’이라고 여유롭게 넘긴다.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닌, 느끼기에 아는 것
손녀들을 보며 다름이란 무엇일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된다
“기자님, 제가 장애인이 된 이후부터 개가 무서워졌어요. 왜일까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처음엔 당황했다. 장애인이 된 후에 개가 무서워졌다니.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는 맹견 때문일까? 휠체어에 깔려 다치진 않을까 걱정되는 소형견 때문일까? 이내 오성윤 강사가 정답을 알려준다. 재치 있는 넌센스 퀴즈였다.
“사람들의 편견(見)과 선입견(見)들 때문이에요. 장애를 바라볼 때 편견과 선입견을 걷어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나 편견과 선입견을 걷어내고, 다름을 이해하는 것은 교육만으로 전부 깨우치기 어렵다. 오성윤 강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손녀가 태어난 후, 아이들이 하는 행동들에서 장애와 다름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된다고 한다.
“한 번은 작은 손녀가 ‘다른 할머니들은 우리한테 음식도 해주고 머리도 땋아주고 하던데 왜 할머니는 우리한테 이것저것 해달라고 시키기만 해?’라고 묻더라고요. 그러니까 큰 손녀가 ‘할머니는 우리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사고로 다쳐서 몸이 불편해. 우리가 할머니를 도와드리면 되지!’ 이렇게 대답하더라고요. 누가 가르쳐서 아는 게 아니에요. 느끼기에 아는 거죠. 아이들을 보며 ‘장애인식’이란 뭘지 고민하게 돼요.”
오성윤 강사는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이해하고 느끼는 것이 장애인식의 중요한 첫 걸음이 될 것이라 강조한다. 의무교육이기에 듣는 것이 아니라 흔한 일상이 되었으면 하면서 말이다.
지금의 소중한 일상
앞으로 더 열정적으로 살고자 한다
오성윤 강사는 장애로 맞이한 제2의 삶에 대해 “더 큰 물에서 놀아보라는 의미 같아요”라며 웃으며 설명했다. 장애가 생김으로써 알게 된 세계와 맺게 된 관계들에 오히려 감사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자신이 운전하여 직접 손녀딸을 어린이집에 등원 시켜줄 수 있고, 손녀들의 재롱을 볼 수 있는 것, 사람들에게 ‘강의가 정말 좋았어요’라고 이야기 들을 수 있는 지금의 이 일상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말한다. 오 강사가 요즘 하는 고민도 어떻게 하면 이 삶을 더 오래, 열정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을지이다.
그리하여 오성윤 강사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지금의 일상이 주는 감사함 속에서 앞으로도 더 넓은 세상,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소망을 품고 있다. 그가 가진 곧고 긍정적인 마음이 세상에 어떤 바람을 불러올지 기대하게 된다.
△ 강의를 마치고 활짝 웃고 있는 오성윤 강사
작성자글과 사진. 동기욱 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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