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어떤 설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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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오후 시간, 지수의 톡이 요란하게 울린다.
“내일 뭐해? 바빠?”
지수는 불안해진다. 언니가 ‘뭐해?’라고 하는 건 분명 또 무엇인가를 부탁할 게 생긴 거라는 의미이다.
“응 매우, 아주, 많이 바쁠 예정.”
“호호 별일 없구나. 그럼 부탁 하나 할게.”
“바쁠 거라니까.”
“내일 아주 좋은 강연이 있어. 거기 은별이 데리고 좀 갔다 와.”
“갑자기 무슨 강연.. 언니는 뭐 하는데?”
“내일 갑자기 시어머니 올라오신다 해서... 미안한데 부탁 좀 하자. 은별이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던 거라서.”
“엄청 바쁘지만 이번만 내가 데리고 가줄게. 그런데 무슨 강연이길래 그렇게 난리야?”
“가보면 알아~ 고마워.”
지수는 은별이의 손을 잡고 승훈의 강연이 있는 곳을 향했다.
시청각장애 첼리스트 승훈... 시청각장애라는 것도 생소했지만 들리지 않는데 첼로 연주를 한다는 것에 관심이 쏠렸다.
5년 전 교통사고로 은별이는 장애인이 되었다. 은별이에게 일어난 변화는 가족 모두의 삶과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관심 없었던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앞으로 은별이가 살아갈 세상이 달라지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럼에도 시청각장애 첼리스트라는 말이 낯설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조곤조곤 풀어내는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며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지수는 느낄 수 있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가 연주를 했다. 화려하고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들어본 그 어떤 연주보다 큰 울림을 주었다.
“들리지 않는데 어떻게 저렇게 연주를 할 수 있어?” 은별이도 지수와 같은 생각이었다.
“아마 엄청나게 많은 노력을 했을 거야...”
“이모~ 저 삼촌 정말 멋있다.”
“그러니까...”
며칠 후, 지수와 은별은 유튜브 동영상을 틀며 지영에게 승훈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언니도 들어봐 봐. 완전 감동이야.”
“엄마 진짜 멋있어. 나도 첼로 배울래.”
영상이 시작되고 승훈의 이야기와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다시 들어도 찡... 하다..”
혼잣말을 하며 지영을 바라보던 지수의 눈이 커졌다.
“언니~ 왜 울기까지 해...”
“선생님 이야기도 너무 감동이고.. 연주도 너무 좋고..”
“엄마 나도 뭐든 열심히 해서 저 삼촌처럼 멋진 사람이 될게.”
“그래 우리 딸~”
“언니.. 나 저 사람 한 번 만나볼까?”
“왜?”
“잘생겼잖아.”
“장난 삼아 그러는 거 아니다.”
“나 장난 아닌데...”
툭 던진 말이지만 지수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어떤 사람인지 더 알고 싶어졌고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수는 그렇게 승훈에 대한 생각을 마음 한편에 담아두었다.
아름다운 계절을 지나 뜨거운 계절을 걷던 어느 날 잠시 접어두었던 그를 만났다.
“이건 우연이 아니라 인연일 거야.”
지수는 카페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는 승훈에게 반갑다며 인사를 건넸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지수를 보던 승훈은 “아... 그때...” 하며 미소를 지었다. 지수는 강연을 봤었고 연주도 잘 들었다며 소감문을 발표하듯 그날의 감동을 쏟아놓았다.
“죄송하지만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좀 적어주시겠어요?
아시겠지만 제가 시청각장애라...”
“아... 죄송... 해요...”
혼잣말을 하고는 뒷걸음치듯 카페를 빠져나왔다.
“내가 왜 그랬지?... 왜 이렇게 바보 같지?... 말을 잘해서 그냥 듣고 있다고 생각했어... 이 바보...”
강연을 듣고 시청각장애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던 지수는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도 정확하게 담아두지 않았던 자신의 경솔함에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며칠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페를 다시 찾아갔지만 거기에 승훈은 없었다. 그러기를 여러 번. 지수는 승훈에 대한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했다. 동정? 그건 분명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설렘과 다시 그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언니... 나 그 사람 만나볼까 해.”
“만나서 뭘 어떡할 건데?”
“내 감정이 뭔지 확인하고 싶어.”
“너 감정 확인하자고 연락하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그래서 확인하면 그다음은...”
“그다음은 그다음에 생각하면 되지.”
“참 이기적이다.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 안 해봤어?”
“언니야말로 이상한 거 알아? 마음이 끌리는 것 같은데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어서 만나고 싶었다고 말하고~. 옆에 아무도 없음 젊은 남녀가 만날 수도 있지~ 그 사람 이 상처받을 거라고 왜 미리 걱정하는데? 내가 상처받을 수도 있잖아. 장애인은 무조건 상처받는 편이라고 생각하잖아. 그게 편견이야 언니.”
“......”
“만나보다 좋으면 계속 가는 거고 아니다 싶음 헤어지기도 하잖아. 은별이 크면 남자친구 절대 못 만나게 할 거야? 은별이 장애를 알고도 남자친구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면, 헤어지는 이유가 꼭 장애 때문은 아닐 거야. 안 맞아서 헤어지는 거야.”
지영은 더 이상 지수 말에 반박하지 않았지만 공감할 수도 없었다. 지수든 승훈이든 상처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수는 더 이상 우연을 기다리지 않고 그에게 연락을 했다. 노트북을 들고 온 지수를 보며 승훈은 미소를 건넸다.
“지난번에는 미안해요. 익숙하지 않아서..”
“괜찮아요^^”
“오늘 만나자고 한 이유가 궁금하시죠?”
“네, 연락받고 궁금했어요.”
“강연하고 연주하시는 모습 보면서 심쿵~ 하더라고요. 친해지고 싶고 좀 더 알고 싶었어요. 승훈 씨에 대해.”
“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날 강연에 오셨을 때 너무 열심히 잘 들어주셔서 저도 기억에 남았어요. 옆에 있던 아이...”
“조카예요^^”
“하하 전 많이 닮아서 따님인 줄 알았어요.”
지수의 솔직함이 승훈은 좋았다. 강연을 하는 내내 눈에 들어왔던 지수와 인연을 맺게 되어 행복했다.
지수와 승훈은 그날 이후 매일 만나며 서로를 알아가고 있다. 승훈을 향한 그 설렘에 지수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달아주었다.
그 사랑이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작성자글과 그림. 최선영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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