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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사랑에 장애물이 될 수 없어요 - 마음의 소리를 들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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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리야, 소개팅 어때?”
“소개팅? 완전 좋지^^”
 
연애 세포가 다 죽어버릴 것만 같은 위기의식이 스멀거리고 있던 주리는 친구의 전화가 반가웠다.
 
“주리야... 그런데 소개팅할 상대가 약간의 장애가 있어.”
“음... 뭐 나야 늘 자유로운 연애를 주장하잖아. 장애가 뭐 별문제가 되겠어? 괜찮아^^”
 
특수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연극을 하며 장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주리에게 장애라는 말은 익숙했다.
 
주리의 동생 역시 장애가 있어서 장애인에 대한 다른 시선은 없다고 평소 늘 생각했기에 쿨하게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소개팅하는 날이 가까워 오자 두려움 같은 긴장감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 순간 지체장애 아이들과 즐겁게 수업하며 그들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얘들아, 얼마든지 비장애인과 똑같이 일하고, 사랑하고, 결혼해서 살 수 있어. 장애가 너희들 인생에 장애물이 되지 않으려면 너희 스스로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던 주리는 소개팅 날짜가 다가오자 가슴이 먹먹하고 무거워졌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연애와 결혼을 지켜보며 대단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주인공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나가고 싶지 않은 것도 솔직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녀이기에 널브러진 생각들을 접고 그를 만나기 위해 거울 앞에서 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보니 첫 소개팅에 대한 설렘으로 마음이 두근거렸다.
 
40분이나 늦은 항승은 전화로 전해 들은 대로 오른팔이 없었다.
귀여운 외모에 듬직하고 순박한 항승의 첫인상이 싫지만은 않았던 주리는 늦은 이유를 듣고 뒤늦게 이해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4살 때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장애인이 된 이유와 함께, 한쪽 팔만 없는 게 아니라 한쪽 다리도 무릎 아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사실보다 항승이라는 남자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크게 보였다. 그렇게 만난 그들은 애매모호한 관계로 서로 바라만 보며 지냈다. 주리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항승이 용기를 내는데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가 주리에게 자기 마음을 보인 것은 제주도 여행에서다.
 
비슷한 시기에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안 주리는 항승과 함께 비행기를 타면 할인된 가격에 갈 수 있다는 이유를 들면서 함께 떠나자는 제안을 했다. 그 여행에서 주리는 사소한 것까지 챙겨주며 좋은 미소를 보내주는 든든한 그가,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사랑스러웠다. 마치 오래된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것 같은 편안함이 들었다.
항승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 사람... 놓치고 싶지 않다...’
 
주리는 그런 마음이 들었다.
 
둘째 날 밤 항승이 의족을 뺀 다리를 보여주었다.
그가 의족을 빼내자 그의 오른쪽 다리는 무릎 바로 아래에서 잘려있었다.
 
“... 징그럽지 않아?”
 
주리는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외면하고 잊어버리고 싶었던 다름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뭐라고 해야 항승 씨가 상처받지 않을까, 아니, 상처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상처가 아닐까?’
 
긴 침묵을 깨고 항승이 먼저 말을 꺼냈다.
사고를 당하게 된 상황, 병원 생활, 가족들 이야기, 대안학교생활... 자세하게 빠짐없이 들려주었다.
그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주리는 손끝이 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4살의 아이가 교통사고로 그렇게 심한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이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항승의 표정과 말투, 그의 담담한 분위기는 마치 “난 이제 괜찮아. 아니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가 깊어지고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도움이 필요한 쪽은 항승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을 주리는 알게 되었다.
 
제주여행 이후, 늘 그 자리를 지키던 항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른 그의 모습, 그의 숨결, 그의 몸짓...
정장과 어울리지 않는 배낭에서 꽃다발을 꺼내더니
드디어 사랑 고백을 했다.
 
“난 너를 좀 더 알고 싶고 너와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어. 너의 남자친구가 되고 싶어.”
 
예상 못했던 말도 아닌데... 사실은 기다렸던 말인데... 주리는 모든 것이 멈추어버린 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당황한 주리의 표정을 항승도 읽었다. 주리의 감정을 항승은 계속 토닥이며 어루만져 주었다.
 
 
 
 
“주리야. 내가 이렇게 너에게 나의 마음을 전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고,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넌 절대 모를 거야. 널 처음 봤을 때부터 난 네가 좋았어. 하지만 쉽게 말할 수 없었어. 내가 생각했을 때 넌 너무 대단한 여자고, 난 너무 부족한 남자거든. 장애도 있 고. 직업도 안정적이지 않고. 돈도 별로 없고. 너에 비해 부족한 것들만 계속 생각났어. 내가 너를 좋아해서는 안 되는 이유들이 너무 많았어. 그런 이유 때문에 나의 감정을 숨겼던 것 같아. 하지만 여행을 통해 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안 되는 이유들을 하나둘씩 버릴 수 있게 됐어. 지금도 난 여전히 부족해. 여전히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어. 하지만 너는 나의 그런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을 버릴 수 있게 해 줬어. 너와 함께 있으면 난 계속 힘이 생겨.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너는 나에게 그런 사람이야,”
 
항승의 마음을, 진심을 너무 잘 알기에 주리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다가옴을 기다렸는데 왜 지금 그를 밀어내려 하는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착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는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을 잘 알기에 어쩌면 아름다운 내면을 가진 항승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음의 소리를 들어봐.”
 
고민하는 주리에게 친구가 들려준 말이다.
주리의 마음은 항승을 향하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며칠이 지나고 주리는 항승과 만났다.
 
이제 더 이상 그저 바라만 보던 항승이 아니었다.
“이제 대답해 줄래? 나와 함께 할 마음이 정해졌다면 내 손을 잡아줘.”
 
주리는 결심한 듯 그에게 말했다.
“난 스노보드 타는 걸 좋아해. 나랑 만나려면 스노보드 를 타야 해.”
“배울게. 너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스노보드 나도 탈게.”
 
주리는 마음의 소리를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항승의 손을 잡았다.
 
오른손이 해야 할 일까지 왼손이 하느라 그 손은 거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손은 듬직하고 아주 많이 따뜻했다.
 
 
[다음 편에 계속]
 
이 동화는 ‘사람 사는 이야기’의 주인공 박항승 님의 러브 스토리를 동화로 각색했습니다.
 
작성자글과 그림. 최선영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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