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사랑에 장애물이 될 수 없어요 2 - 결혼 그리고 동계패럴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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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에 비친 하얀 눈이 아름답게 빛나는 날, 항승은 스노보드를 타기 위한 첫 시작을 했다. 의족을 하고 있는 항승은 어쩌면 불가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족 스노보드 커뮤니티인 ‘헝그리보드’에서 같은 조건으로 스노보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당연히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부츠를 착용하고 의족 철봉에 준비해왔던 수건을 꺼내 테이프로 칭칭 감았다. 공간이 남는 부츠 속을 채우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그런 과정 중에 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았다. 고글을 쓰고 있었지만, 항승과 주리를 향하고 있는 그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주리는 사랑을 시작하자며 내민 항승의 손을 잡은 이후부터 그런 시선은 상관하지 않았다.
성우에 심철 첫 개장 날.
초보자들이 데크 신고 일어나는 것을 연습하는 오작교 중간의 작은 언덕에서 항승의 꿈이 시작되었다. 오른쪽 다리가 의족, 오른쪽 팔은 어깨까지만 있는 항승은 왼쪽 바인딩을 채우는 것은 왼팔이니까 전혀 무리가 없었지만, 오른쪽 바인딩을 채우려니 왼팔이 반대로 가서 힘을 줘야 했기 때문에 허리에 무리가 오기도 했다. 그래도주리가 약간의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몇 번 해보더니 혼자서도 잘하게 되었다.
“어때? 너무 힘들지 않아?” “아니, 할만해.”
그곳은 경사가 거의 없어서 일어나자마자 중심을 잡을 필요는 없기 때문에 생각보다 일어나기도 쉽게 성공했다.
“오~ 스노보드 체질인데^^ 너무 잘한다.”
생각보다 잘하는 항승을 보며 주리는 더 큰 욕심이 생겼다. 둘 다 한 번 느낌이 오면 끝까지 가보는 성격이라, 일어나서 앞으로 내려오는 단계에 바로 도전했다. 2시간 정도 타고나니 항승은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혼자서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나도 초보라 말로 설명하는 게 더 어렵네. 내가 타는 걸 잘 보고 힘이 들어갈 곳을 한 번 찾아봐.” 주리의 시범을 보고 항승은 신기하게도 잘 찾아내고 자세를 잡았다. 어려움은 있었지만, 함께 보드를 타는 것이 기뻤다. 이렇게 시작한 항승은 어느새 주리보다 더 잘 타게 되었다.
“난 장애 때문에 사실 보드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리 네 덕분에 불가능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평소에는 속도 내서 달리지 못했는데 보드 위에서는 달릴 수 있어서 자유로워진 것 같아 정말 좋아. 주리야 고마워. 널 만난 건 내 인생 가장 큰 축복이야. 사랑해.” “우리 스노보드 정말 잘 시작한 것 같아. 스노보드를 타는 모습~ 너무 멋져.” “응 정말 고마워 주리야.”
하얀 눈 위에서 함께 하는 시간은 그들에게 많은 행복을 안겨주었다. 주리는 '헝그리보드' 게시판에 항승에 대한 글을 올렸고, 그것을 본 전문 강사님으로부터 체계적인 강습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응원하며 선물을 보내주는 많은 사람들의 따스함이 너무 감사했다. 좋은 사람들의 온기로 인해 그 겨울은 몹시도 포근했다.
어느 복지재단에서 주최하는 절단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키/보드 캠프 소식을 듣고 항승과 주리도 참가했다. 주리와 항승은 그곳에서 의족을 한 채로 스노보드 협회 강사 자격을 취득한 선생님을 만났고 그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항승에게 ‘버즈런’에서 제작해 준 맞춤 부츠는 그에게 새로운 보드의 길을 열어주었다.
단순히 취미로만 시작했던 스노보드에 좀 더 강한 열정을 쏟아붓게 했다. 보드를 좋아하는 주리와 보드를 사랑하게 된 항승, 그들의 겨울은 그렇게 강원도에서 함께했다.
“주리야. 나….”
항승은 말을 하다 말고 잠시 주리를 바라보았다.
“응 말해.”
“나…. 연습해서 평창 동계패럴림픽에 나가고 싶어.”
“동계패럴림픽에?”
“응….”
주리는 항승의 말에 잠시 생각했다. 경제적인 문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전지훈련도 가야 하고…. 우리 많이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그래도 꼭 도전해 보고 싶어.”
주리는 항승의 눈이 반짝이는 걸 보았다. 늘 가만있어도 빛나는 사람이지만 보드를 탈 때, 가장 반짝이는 항승. 그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데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걸렸지만 주리는 그를 응원하기로 했다.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해서 평창 동계패럴림픽 선수가 되자.^^”
“고마워. 주리 네 덕분에 큰 꿈이 생겼어. 너와 함께라면 이루지 못할 꿈도, 하지 못 할 일도 없을 것 같아.”
“난 항승이라는 남자 만나고 이해심도 깊어지고 더 많은 걸 보게 된걸~ 나도 고마워.” “우리…. 결혼식도 설원에서 할까?”
“호호 멋진 생각인데. 좋아 그러자.”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항승을 가족에게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주리는 많이 고민하고 준비를 했다. 항승을 데리고 강원도 부모님 댁으로 찾아가 처음에는 친구로 소개했다. 그리고 자주 항승과 부모님을 만나게 했고, 그럴 때마다 항승의 장점들을 줄 세워 말하며 부모님이 항승에게 자연스럽게 호감을 가질 수 있도록 순탄한 결혼을 위해 하나하나 진행해 나갔다.
스키장 인근인 시골집에는 장작도 패야 하고 사소하게 해야 할 집안일이 많았다. 주리는 장애가 있어도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항승에게 장작을 패게 하고 그의 좋은 성품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나중에 눈치를 채신 부모님은 주리가 항승의 칭찬을 하려고 하면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좀 해라. 좋은 사람인 건 잘 알고 있단다.”라고 말했다.
부모님도 이미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여전히 걱정은 남아있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장애가 있는 사람이 심적 사회적 고난을 겪고 실패할 때, 다시 일어나는 게 상대적으로 힘들지 않겠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지켜보셨잖아요. 잘 할 수 있어요.”
부모님은 그들의 단단한 사랑을 보며 남은 걱정마저도 내려놓게 되었다.
많은 사람의 축하 속에 그들의 바람대로 설원에서 결혼했다. 하객들 입장을 고려해 예식은 리조트 홀에서 하고 신랑 신부 행진을 스키장 슬로프에서 했다. 아름다운 그들의 첫걸음을 사람들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평창 동계패럴림픽을 위해 주리는 가장이 되었다.
“3년 동안 아무 염려 말고 마음껏 보드만 타. 대신 남은 인생은 나를 위해 희생해야 해.^^”
사랑스러운 미소와 속 깊은 그녀의 마음에 항승은 무척이나 고마웠다.
나가고 싶다고 다 나갈 수 있는 올림픽은 아니지만 평창에서 열리다 보니 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컸다. 이미 경기도체육회, 대한체육회와 미팅을 진행했고, 항승의 스케줄에 맞춰 훈련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타고난 숨은 재능과 노력으로 그는 평창 동계패럴림픽 스노보드 국가대표로 출전하게 되었다.
항승이 출전하는 스노보드는 2014 소치 동계패럴림픽에서 알파인스키 세부 종목에 포함돼 시범 종목으로 경기를 치렀는데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그가 전지훈련을 떠날 때면 주리의 마음은 텅 빈 공간이 되고 항승의 빈자리는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죽을 힘을 다해 훈련하는 항승도 늘 주리를 생각하며 더 열심히 땀을 흘렸다. “주리야 사랑해”를 외치며.
스노보드를 좋아하는 주리를 사랑한 항승은 그녀와 함께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큰 꿈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랑스러운 딸과 함께 또 다른꿈과 행복을 만들어가고 있다. 서로를 비춰주는 빛나는 이들의 사랑이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작성자글과 그림. 최선영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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