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있어야 할 이유
본문
1.
어린 시절 동네의 담벼락엔
가끔씩 누군가의 이름과 함께
‘OOO 바보’라는 낙서가 등장하곤 했습니다.
힘센 아이 앞에선 직접 대놓고 말을 못하니까,
밤사이 남몰래 적어놓고선 사라지는 것이죠.
얼마나 답답했으면,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그렇게라도 표출해야 직성이 풀렸을까요.
약한 이들의 분노는 낙서라도 동원해야만,
그렇게라도 내질러야 가라앉는 가슴앓이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모인 이들은 드러내놓고 낙서를 합니다.
그것도 대낮 도시 한복판의 길바닥에,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새겨놓는 겁니다.
이미 수천수만 번 입과 몸으로 외쳐왔던 구호들을
쉽게 지우지 못할 방법으로 또렷하게 기록합니다.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라고,
부양의무제 기준을 없애라고,
수용시설의 존재 자체가 적폐라고 말입니다.
이들이 이 자리에서 떠나가면,
누군가는 달려들어 그 흔적들을 성급히 지워버리겠죠.
하지만 이들의 가슴에,
그들의 심장에 새겨진 구호는 절대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건 생존을 위한 마지막 절규이기 때문입니다.
2.
가을이 깊어간다는 건
겨울이 멀지 않았음을 의미하죠.
계절의 겨울은 어떻게든 견디겠지만,
마음의 겨울은 참아낼 길이 없습니다.
‘우리도 국민이다!’
‘우리도 인간이다!’
이들의 외침이 문제해결의 환호로 뒤바뀔 날까지는
아직도 더 많은 피눈물과 분노가 필요한 일입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나아갈 수 없는 먼 길,
갈수록 외로워지고 갈수록 소외되기만 하는,
하루하루 난감해지고 무기력해지는 현실 앞에서
‘너’와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함께’ 있을 때만이 가능해집니다.
‘나’를 위해서, ‘당신’을 위해서,
우리 모두의 완성과 성취를 위해서 말입니다.
함께 걸어야, 함께 외쳐야, 함께 움직여야만
불가능이 가능함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죠.
긴 팔의 옷을 꺼내고
옷장 깊숙이 담아둔 두터운 옷들을 살펴보듯,
이젠 함께할 동지와 선후배들을 찾아보세요.
먼 곳 아닌, 이미 당신 곁에 가까이 있으니까요.
그들의 손길이, 그들의 결연한 눈빛이
앞으로 같이 나아갈 힘을 몇 배로 전해줄 겁니다.
꼭 기억하세요.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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