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의 정신, 기자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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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권단체들과 수많은 현장활동가들은 그를 ‘이현준 열사’라고 부르죠. <함께걸음>은 그를 전직 ‘이현준 기자’라고 기억합니다. ‘근이영양증(신체의 근육이 위축되며 호르몬 이상과 대사장애가 진행되는 위중한 증상)’이란 중증장애로 온 몸을 가누지 못하고 손가락 몇 개만 움직이는 게 가능했는데, 그는 <함께걸음> 객원기자가 되면서 정말 최고의 취재활동을 펼쳤습니다. 특히 2001년 12월호엔 그가 작성했던 기사만 12면이나 되더군요. 그가 기자로 활동한 기간을 통틀어 확인해 봐도, 월 평균 8면 이상의 지면을 책임지며 직접 취재와 기사작성을 담당해 왔습니다. (사실 그의 몸 상태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업무량이었죠.)
왼쪽의 사진 안에 담긴 건, 기자생활 당시에 작성하던 그의 취재노트입니다. 비장애의 손길로도 적어 넣기 힘들 만치의 분량을, 그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새겨놓았습니다. 장애인 차별이 당연시되던 부조리한 세상에 그는 끊임없이 대항하며 도전했고, 이 사회의 일그러진 장벽을 깨뜨리기 위해 실천의 행동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건 인생의 한 부분을 그와 함께했던 모든 이들이 공감하고 인정하는 대목일 겁니다.)
이현준 기자의 삶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치열’이라는 두 글자 이외에 떠오르는 언어가 없습니다. <함께걸음>이 본받고 계승해야 할 단 하나의 가치는 바로 ‘이현준 기자의 정신’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가 바라고 원했던 세상을 실제 현실로 만들기 위해, 그의 정신 그대로 2020년의 <함께걸음>을 만들어가겠습니다. <함께걸음> 안에 그는 언제나 살아 있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특유의 미소 띤 눈짓으로 그는 가리키고 있을 겁니다. 그가 생전 처음 들어왔다던 호프집에서 생맥주가 이렇게 시원하고 맛있는지를 처음 알았다며 행복해 하던 얼굴, 그 눈빛의 아득함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진심으로 그가 그리워지는… 2020년 봄이 이제 시작되고 있습니다. (3월 16일은 그의 기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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