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그 외침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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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묶음으로 보관하던 사진들 중 이 한 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1999년이었으리라 기억되는 서울지하철공사 앞 농성 당시의 모습입니다. 계단 턱으로 가로막힌 본사 앞에서, 30여 명의 중증장애당사자와 활동가들이 구호를 외쳤죠. “우리도 지하철을 타게 해 달라!”
당사자들의 외침에 난감한 표정을 짓던 공사 직원들은 결국 두세 명씩 조를 정해서, 당사자들이 앉은 휠체어를 직접 들고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지만, 등에 업히기를 거부한 당사자들의 요구에 따라 지하철역으로 갈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기반시설이 비장애인의 눈높이에 철저히 맞춰져 있던 당시, 중증장애인은 지하철역에 내려갈 수도, 개찰구를 통과할 수도, 탑승장에 도착할 수도, 혼자 지하철에 올라탈 수도 없는, 말 그대로 모든 게 불가능한 환경이었습니다. 게다가 문이 열린 지하철과 탑승장 사이가 얼마나 넓게 벌어져 있었는지도 잊을 순 없겠죠. 지하철역까지 내려갔던 당사자들은 직원들의 손에 들려서, 휠체어에 앉은 상태 그대로 짐짝처럼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러면 또 다시 외쳤죠. “우리도 지하철을 타게 해 달라!”
몇날 며칠 계속됐던 이 농성을 지금 의미 깊게 떠올리는 이유는, 모든 불편함을 무릅쓰고 그때 그렇게 몸소 외치며 싸웠던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편의시설이 생겨나게 됐다는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외출조차 못하던 상황을 마냥 견디기만 했다면, 세상의 벽은 ‘그냥 그대로’ 두텁게 막혀 있었을 겁니다. 누군가가 질문을 던졌고, 움직였고, 외쳤습니다. 그 결과로 건물 입구에는 경사로가 생겼고, 전동휠체어가 보급됐으며, 차도와 인도 사이의 턱도 사라졌습니다. 엘리베이터와 장애인화장실 설치도 불과 몇 년 전의 일이었죠.
차별 없는 평등을 지향한다면, 지금 우리들도 질문을 던지고 직접 움직여야 하며, 더 큰 목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거저 얻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몇 년 후 이 지면에 탑승이 거부된 고속버스 앞 전동휠체어의 당사자 사진을 올리면서, “그때는 고속버스도 탈 방법이 없던 시절이었죠.” 이런 글이 적혀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묻고 움직이며 외치다 보면, 분명 쟁취해 낼 수 있는 일입니다. 20여 년 전의 사진 한 장이 그 증거로 남아 있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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