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4·3이고 4·16이며 5·18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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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여 명의 유태인이 학살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폴란드에 위치해 있죠. 앙겔라 메르 켈 독일 총리는 “폴란드가 됐다고 할 때까지 사과를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한 “나치의 만행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독일인의 영원한 책임”이고 “독일은 수백만 명의 희생자에 대한 책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며, 공식석상에서 항상 단호하게 강조해 왔습니다. “우리가 뭘 잘못했나?”, “우리가 왜 사과를 해야 하며, 대체 언제까지 사과를 요구 받아야 한단 말이냐?”고 끝까지 강변하는 이웃 어느 나라의 인식과는 확연히 다른 대국(大國)의 품격을 느끼게 되는 대목입니다.
그런 역사인식과 책임의식을 접하면서, 우리는 밖으로의 시선이 아닌 내부 자체의 현실을 직시해야 함을 절감하게 됩니다. 분명한 인권침해와 반역사적 만행이 저질러졌는데도, 통렬한 반성은커녕 ‘그게 뭐가 문제냐?’며 오히려 고개를 똑바로 치켜드는 모습들이 연일 계속되고 있죠.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용서를 빌며 과오를 참회해도 모자랄 판에, 피해자들을 조롱하고 희화하는 반(反)인륜의 언행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자행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오늘날이 왜 이렇게 돼버린 걸까요?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밝혀진 것 없이, 드러난 것 없이, 적폐의 청산 없이 기득권 중심의 세상 그대로 이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친일파가 득실거리는 이 암담한 현실은 일제강점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이요, 군부독재를 찬양하는 세력들이 대놓고 대로를 활보한다는 건 아직도 그 잔재들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가해자는 없다 하고 피해자들만 절규하는 ‘그 날’의 광주와 세월호 참사는 역사의 진실이 한 걸음도 진전하지 못했음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외쳤던 ‘그’의 10주기를 지난 5월 23일 맞이하면서, 국립5·18민주묘지 참배광장의 ‘대동세상군상’에서 늘 마주하던 한 인물의 눈빛이 떠올랐습니다. 조각상의 눈동자인데도 마주설 때마다 얼어붙듯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던…, 그 눈빛과 손짓이 수많은 화두를 전달하고 있음을 직감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눈빛과 몸짓이 전하는 언어들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며 새겨놓게 됩니다. 그들이 말하고 있죠. 깨어있어야 할, 직접 행동해야 할, 앞서서 떠나간 ‘자신들’을 대신해 ‘산 자여 따르라’를 실천해야 할 ‘누군가’는 바로 ‘그대’이자 ‘당신’이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은 떠나간 그들이 매듭짓지 못한 바로 그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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