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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바램, 또는 다짐

[오사카에서 온 편지]일본의 새해맞이 풍경에 곁들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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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새해를 기원하는 모두의 마음

“어머, 웬 사람이 저렇게 많아?”

새해 첫 번째 토요일을 맞이해 차를 타고 시내를 지나가는데, 도로 건너편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줄을 서 있는 거예요. 운전을 하던 남편 말이, 아마도 근처에 꽤 유명한 신사가 있는데 ‘하츠모데’를 하러 온 사람들일 거래요. ‘하츠모데?’ 아무 상관도 없던 저였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으니 무슨 구경났나 궁금해져서 남편에게 한번 가보자고 했어요. 제가 일주일에 한 번씩 다니는 장애인단체 사무실이 여기서 반대편으로 바로 5분만 가면 있는데도, ‘오쿠니누시 신사’라는 곳을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지냈지 뭐예요. 하긴 원래 신사라는 일본식 의식에 약간 거부감도 있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아서 거리를 둔 것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역시 일본의 새해맞이는 이 신사를 찾는 것부터 시작하는 국민이 대다수인 것 같더라고요. ‘신사’는 일본에서 그 지역의 유명한 사람이나 신통한 능력이 있다고 믿으며 전래되어온 신앙의 대상을 모시는 곳이라고 하는데,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신사를 찾아 기원을 하는 것이 일본의 풍습이라고 해요. ‘하츠모데’라고 하는 건, 새해를 맞이하여 신사를 찾아가 첫 번째 기원을 올리는 의식을 일컫는 것 같아요.

이 ‘오쿠니누시 신사(大国主神社)’라는 곳은 재물에 관한 ‘금운’이 높은 곳이라고 하네요. 특히 이 신사에서 부적을 받으면 ‘복권’에 당첨된다고 하여 입수가 곤란할 정도라고 해요. 또한 ’복’과 ‘덕’이 높은 신인 ‘다이코쿠텐(大黑天)’을 모시고 있어서, 좋은 인연을 맺어 주고 소원이 성취된대요. 정말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를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안에 들어가는 차례를 기다리려면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할 것 같더라고요.

줄 서서 기다려 기도만 해도 재물의 복이 들어오고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다면 그리 대단한 수고도 아니겠지만, 우리는 신사에 들어가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만 구경하고 그냥 돌아왔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그 앞을 지나갔던 건 사실 그 신사 길 맞은편에 있는, 싸고 맛있다는 초밥 체인점에서 저녁 때 먹을 초밥을 사기 위해서였거든요. 보통 일본에서 연말연시는 1월1일부터 3일까지 쉬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 2020년은 앞뒤로 주말이 끼어있어서 길게는 9일이나 됐어요. 길다 보니 여유가 있기는 한데, 식구가 같이 밥을 먹어도 좀 특별한 걸 먹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초밥을 먹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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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에서 새해의 복을 기원하려는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 일본에서 ‘소비세(한국의 부가가치세)’가 8%에서 10%로 인상되어, 모두들 주머니 사정이 더 빡빡해졌어요. 그런데 ‘경감세율’이라고 해서, 식당에서 직접 먹는 게 아니라 주문을 해서 가지고 가면 8%로만 계산되거든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놓고 찾으러 가는 중이었어요. 2% 차이지만, 그것도 쌓이면 꽤 큰 금액이잖아요. 신에게 ‘금운’을 비는 것보다는,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절약해서 맛난 것을 먹게 해주는 것이 만족감을 실감하게 되는 현실이 됐네요.

 

모두가 바라는 세상을 함께하고 싶다

“새해 좋은 것만 보고, 좋은 말만 듣고,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곳에만 가거라.”

전에 이 덕담을 듣고 참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좋다’는 기준이 세상의 흐름에 따라 빠르게 돌아가는 유행에 맞춰 변해가는 것이고요. 보고 듣고 먹고 가는 것에 불편함을 갖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장벽이 높구나 싶어요. 신문을 몇 장 넘기다 보니 ‘트리처 콜린스 증후군(Treacher-Collins syndrome : 염색체 이상으로 볼, 턱 결여 등 안면장애와 청각장애 등이 중복됨)’으로 인해 얼굴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었어요. 소개된 사람은 이바라기 대학원생인 이시다 유키(石田祐樹, 26세) 씨와 오사카에 사는 고바야시 에미카(小林栄美香, 25세) 씨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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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다 씨는 볼과 턱뼈가 미숙한 상태로 태어난 데다 청각장애도 있는데, 크면서 ‘외계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힐끗힐끗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면서 힘들었대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귀의 형태를 만드는 수술을 받았지만 난청으로 친구들과의 소통이 어려웠고, 남들이 자신에게 말 걸기를 꺼려하기에 먼저 말을 걸려고 노력했다고 하네요. 지금은 국립대학인 이바라기 대학원에서 장애인이 직면하는 사회의 장벽을 없애기 위한 방법을 주제로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바야시 씨는 태어날 때부터 입술이나 턱이 삐뚤어져 있어, 사춘기 때는 외모 때문에 고민하며 학교생활이 어려웠대요. 그 후 통신제 학교로 전학하면서, 외모의 장애는 아니지만 가정의 빈곤이나 폭력 등으로 학대를 받거나 어려움을 겪는 다양한 형편의 친구들과 만나, 서로의 어려움을 터놓고 나누며 세상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게 됐대요. 현재는 방과후 교실에서 일하면서, 같은 증상의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NPO(비영리단체)활동단체 ‘미소 짓는 사람들’을 설립하려고 한다네요.

취재를 한 아사히신문 기자 이와이 겐키(岩井健樹) 씨 또한 ‘이 얼굴로 산다는 건’이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고, 장남(9살)이 얼굴 오른편 근육이 없이 태어난 당사자 가족으로, ‘외모만 보고 판단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거론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신체의 기능 장애도 힘들지만 겉모습, 특히 얼굴에 장애가 있으면 학교생활부터 시작해 연애와 취직 등 모든 면에서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장벽에 부딪치겠죠. 장애라고 해도 치료의 긴급성이나 기능의 장애가 크지 않으니 제도적 혜택도 많지 않을 거고요.

기사를 읽고 제가 덜 민감하게 여기고 있던 또 다른 장애의 일면을 배우며 새해 다짐이랄까…, 저 먼저 일상 밖의 세상을 좀 더 알고 이해하고 같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모두가 바라는 세상을 향해서 말이에요.

 
작성자변미양/지체장애인, 오사카 거주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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