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헤어지고, 마지막 모습을 기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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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익혀야만 가능한 배려
아주 가끔씩만 지하철을 타다 보니까 탈 때마다 느끼는 게 많아요. 모임 장소까지는 지하철을 갈아타야 되는데 처음 가는 장소, 지하철 타는 시간보다 엘리베이터 장소를 찾아 기다리고 갈아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늦을까 봐 조급해서일까요? 행선지가 맞는지 확인하기 바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 닫는 단추를 누르려고 할 때 젊은 엄마가 유모차를 밀고 오는 모습이 보였어요. 휠체어에 유모차가 엘리베이터 안에 한 번에 같이 타는 건 약간 비좁지만, ‘문 열림’ 단추를 눌러 잠깐 기다렸다가 휠체어를 구석 쪽으로 밀었습니다.
아기 엄마가 웃으며 인사를 하더라고요. 안쪽으로 들어온 유모차를 보니 3살쯤 됐을까? 유모차 안에는 작은 남자 아이가 세상 모르게 깊이 잠들어 있네요. 꼭 감은 두 눈의 속눈썹이 얼마나 귀여운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올라갈 때 슬쩍 흔들리니까 흠칫 놀란 아이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금방 표정이 풀려 자는 모습 또한 정말 평화롭고요. 그런데 유모차를 밀고 있는 그 엄마의 품 안에는 아주 더 작은 아기가 안겨있는 거예요.
‘야, 정말 혼자서 힘들겠다!’ 물론 보고만 있어도 입가에 웃음이 맴돌 정도로 어여쁜 아이들이고 더할 나위 없이 보람 있는 일이겠지만,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 모든 것을 대신해 주어야 하는 어린 아이들을 돌본다는 걸 혼자서 다 하기엔 순간순간 벅차게 느껴지는 때가 얼마나 많겠어요.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 엄마는 저보고 먼저 나가라고 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 순간 저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장애인인 저보다,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밀고 가슴에는 아기띠를 메고 있는 그 엄마가 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시간은 서두르고 있었지만 그 10여 초가 그리 대단한 시간은 아니니까 먼저 나가시라고 했어요.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그 엄마는 문 밖에서 ‘문 열림’ 단추를 누르고 제 휠체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는 거 있죠. 자연스런 배려의 연속, 몸은 피곤할 텐데 마음은 참 여유가 있는 분이죠?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연하게 배어나오는 친절함에 쭈굴쭈굴한 마음조차 훈훈하게 펴지는 것 같았어요. 자기 혼자 일 챙기기만도 바쁘고 힘겨운 이 시대, 풍요로운 사회를 꿈꾸지만 왠지 더 척박해져가는 것 같은 이 시대, 하지만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 서로를 위한 배려가 당연하게 몸에 배어 따지고 계산하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행해진다는 건 그 사회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일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입장에 서는 동행자 마음
사실 제가 그 날 발길을 향했던 곳은 대학생 때부터 20여 년간 활동지원의 현장 일을 도맡아 해왔던 한 활동보조지원 코디네이터의 추도식이 열리는 곳이었습니다. 아직 40대 초반, 너무나 돌연히 아무런 예보도 없이 찾아온 그와의 작별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고,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와의 ‘작별식’을 ‘마나베 씨와의 추억을 되돌아보는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마련해 약 120여 명이 모여, 사진을 보거나 추억담을 나누며 인사하는 시간이었죠.
평소 달콤한 간식을 좋아했다는 마나베 씨, 일을 마치고 차 한 잔에 달콤한 다과를 곁들이며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었었을 그 시간을 더불어 되돌아 보는 의미도 겸해 테이블에는 음료와 일본식 떡과 과자, 케이크들이 다양하게 놓여 있었어요. 사진의 슬라이드 상영이 끝난 후, 그와 관계가 깊었던 사람들의 추억담이 소개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대학교 때 친구, 휠체어를 탄 그는 뇌성마비 장애인인 자신의 학창시절, 친구이면서 활동지원 일을 접하게 됐던 마나베 씨를 떠올리며 졸업 후 활동지원사로서의 자신의 진로를 상담했던 이야기도 되짚어 줬어요.
▲ 마나베 씨를 그리는 사진과 꽃 |
아직 제도로 보장되는 직업이 아니었던 20여 년 전, 하지만 그 일을 자신의 본업으로 삼아 매진해 보겠다는 결심을 했던 친구는 “활동지원사라는 일은 ‘친구’라는 측면이 반, 그리고 ‘프로의 직업’이라는 측면이 반이라고 생각해!”라고 말했다네요. 활동지원사의 경제적인, 사회적 평가의 면에서 제도적인 향상을 추진해 나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 일에 임하는 마음가짐 한편에는 항상 이용자에 대해 친구에게 하듯 봉사한다는 자세 없이 현실적인 면만 따져서 하기는 어렵다는 말을 했다는 거예요.
친구이면서 휠체어 이용자이기도 했던 대학 친구의 울먹이는 목소리에서는 20여 년간 프로인 활동지원사로서의 입장을 추구해 가면서도, 활동지원의 본질인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다가가 그 입장을 이해하고 이용자를 일상생활에서의 부자유로부터 조금이라도 해소시켜 줬을 그 진심이 진하게 느껴졌어요. 단지 요구받은 것을 처리해 주는 것만이 아니라, 같은 입장에 서서 생각하며 함께 생활하는 동행자가 되기를 추구했던 따뜻한 심성의 마나베에 대한 그리움이 찌릿찌릿 전해져 왔습니다.
누구라도 배제되거나 단절되지 않고 참가하며 사는 사회를 지향하는 가운데, 장애당사자의 사회참가를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장애인의 활동지원사들이죠. 지금은 활동지원사에 대한 기본적인 제도가 만들어져 운영되며 노동의 대가, 국가의 공적지원과 개인부담의 기준 등을 공론화시키려고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죠. 그 내용이 심도화 되고 발전되기를 바라는 건 물론이지만, 그와 더불어 활동지원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에 있어서 그 누군가를 지원사와 이용자로 일방적으로 고정화시키는 편견에 꽉 묶이지 않도록 하는 주의도 필요할 것 같아요.
지킴이가 돼 주었던 누군가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크게 뚫린 그 빈자리가 다시 서로의 다독임과 배려로 빨리 채워지기를 기리는 시간이었습니다.
▲ 함께 일했던 장애인 스텝이 그린 자화상과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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