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장애가 여행을 주저하게 되는 이유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함께 가는 나와 당신의 여행
본문
2013년 내가 21살 때 장애를 처음 얻었고, 그때부터 쭉 휠체어를 이동수단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장애를 얻기 전에도, 장애를 얻은 이후에도 여행을 좋아한다. 2019년 병이 재발하면서 다시 뇌출혈 수술을 받았다. 병이 재발하면 아주 높은 확률로 사망한 다고 한다. 다시 살게 되어 정말 기쁘고, 감사했는데그 이유가 바로 ‘살아 있으면 여행을 할 수 있기 때문’ 이었다. 재발 이후, 아프리카 여행을 간 친구의 여행 기를 읽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장애를 얻었다고 해서 여행이라는 취미를, 아주 많은 제약을 경험하게 될지 언정,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는 슬프고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유형의 장애이든 간에, 그 종류의 감각이 제한적이라면 다른 자유로운 감각 또한 존재할 것이다. 그럼 그 감각을 중심으로 자신의 여행을 꾸려나가면 된다. 그렇 다면 여행은 충분히 의미 있다.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괜찮아!
장애인의 경우, 여행은 절대 즉흥적일 수 없다. 충분한 사전 조사와 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장애인이 여행을 한 번 마음 먹는다는 건 엄청난 결심을 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그 여행은 하늘이 두 쪽나도 가야만 한다는 뜻이다. 한 예로 필자는 전에 대학교 친구와 함께 남도여행을 계획한 적이 있다. 그런데 여행 전날, 남도의 일기예보가 좋지 않았고, 이를 본 나의 어머니는 마치 아기 대하듯 당시 스물여 섯 살이던 내 여행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셨다. 그러자 친구는 예약한 숙소를 모두 취소하려고 했다! 필자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지만 그 친구는 아니었던 듯했다. 여행에 대한 무게감이 서로 달랐던 탓이다. 내 친구는 너무 쉽게 여행을 취소하려 했고, 그렇게 내 여행은 시작도 해 보지 못한 채 종료될 위기에 놓여 버렸다.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난 바득바득 우겨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갔다. 여행은 시설과 계획 면에서 완벽하지 못했다. 나도 그 친구도 숙소에 대해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았던 탓에 방 입구와 숙소 내 화장실에는 턱이 있었다. 물론 그런 사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예약한 숙소가 ‘흔한 모텔’이라는 친구의 말에 숙소가 매우 불편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 친구를 믿고 불편도 감수하려 했다. 내 나름대로 모험을 결심한 셈이다. 그랬기에 더욱, 나에게는 친구의 도움이, 친구에게는 나의 도움이 절실해졌다.
결과적으로 친구와 함께 고생하면서 같이 한 추억이 많아졌고, 사이는 더욱 깊어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엄마와 집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어서 여행을 결심했다. 하지만 여행을 하다 보니 비 오는 여행길을 함께한 친구와는 물론이고 지방에서 우릴 기다린 가이드 친구와도 더 친해질 수 있었다. 주변으로부터 도움도 많이 받아 결국 여수와 순천의 분위기와 풍경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여행 준비를 하고자 한다면, 눈여겨볼 사이트
△ ‘대한민국 구석구석’ 사이트
하지만 독자들은 분명 궁금할 터. ‘치밀한 계획’은 대체 어떻게 세우는 것일까? 국내 여행에 있어서 필자는 ‘대한민국 구석구석(Korean.visitkorea.or.kr)’이 라는 사이트를 활용한다(휴대폰 어플리케이션도 존재한다). 이 사이트는 휠체어 이용에 신경을 쓴 관광지에 한해서이긴 하지만, 휠체어 이용과 관련해 각 관광지마다 위의 사진과 같이 정보를 제공해주어 편리하다. 이 사이트가 장애인들에게 빛과 소금 같은 존재가 되는 이유는 사이트가 제공하는 ‘무장애 여행’ 정보 때문이다. 이전에는 사이트 안의 한 페이지 에서 정보를 제공하였는데, 현재 분리돼 완전히 다른 사이트 ‘열린 관광 모두의 여행(access,visitkorea.
or.kr)’ 이라는 곳에서 따로 제공된다. 이 사이트는 평소 여행에서 소외된 장애인·영유아 가족·고령자를 위한 페이지를 따로 마련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필자는 ‘추천 코스’ 부분을 정말 추천한다. 가고 싶은 장 소만 선택하면 글에서 나머지 부분, 즉 코스 및 음식 점, 숙박을 모두 추천해주어 편리하기 때문이다. 메뉴 속 다른 카테고리인 ‘여행안내’에서는 장애인 여행사나 장애 도움 사이트 등 장애인들에게 유용하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열린관광 모두의 여행’ 사이트
여행 목적지를 정했다면, 교통은 어떻게 할까?
그렇다면 또 궁금한 점 하나. 그곳엔 어떻게 갈까? 국내에 한해서는 먼저 KTX를 활용한다. 제일 편리하고, 게다가 값이 싸기 때문이다. 코레일 장애인 할인은 아래 표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도심 속 지하철은 무료이다. KTX를 타고 역에 도착한 후에는 장애인 콜택시(이하 장콜)를 이용하여 계획한 장소로 이동하면 된다. 장콜은 휠체어를 탄 채로 들어갈 수 있는 택시 같은 차다. 휠체어를 타지 않은 동반자는 같은 차에 최대 3명까지 탑승이 가능하다.
할인 적용 대상 | 할인 적용 범위 | 할인율 |
등록장애인 중 중증장애인(1∼3급)
본인과 동행하는 보호자 1인
|
KTX, 새마을호, 무궁화, 통근열차 | 50% |
등록장애인중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 | KTX, 새마을호 |
30%
(토, 일, 공휴일을 제외한 주중에 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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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콜은 저렴해서 여행비용을 줄여주는 일등공신이 다. 하지만 이 또한 가고자 하는 지역의 장콜에 미리 연락해서 등록해 놓아야 가능하다. 이용 시 복지카드도 물론 지참해야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장애인들은 즉흥 여행에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세상 밖으로의 여행을 위한 마음가짐
장애인이 여행을 시작할 때에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먼저, 장애인 본인이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는, 세상이 꽤나 냉정하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이를 모르고 사회에 무작정 나갔다가는 상처 입기 십상이다. 사람들은 장애를 갖고 사는게 아주 딱하다고 생각한다. 내 전동휠체어가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틈에 빠졌을 때 나를 구해준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절대 지하철을 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결국엔 본인들의 삶이 너무 바쁘다. 게다가 밖은 차가운 세상의 논리로 돌아간다. 이 사회의 구성원은 소수자까지 신경 쓰기엔 그 수가 너무 많고 또 다양한가 보다.
나는 홍콩 디즈니랜드에 가서 배를 타는 아주 간단한 놀이기구를 타는데도 안내 직원으로부터 ‘휠체어 에서 일어나 걸을 수 있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당시 나는 다행히 걸을 수 있었지만, 그게 가능한 휠체어 사용 장애인은 정말 극소수다. 하지만 휠체어에서 일어나 배에 옮겨 타기 위해서는 도움이 있더라도 보행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디즈니랜드의 이러한 요구는 타당한 것이었다. 게다가 디즈니랜드를 이용하는 고객은 무수히 많다. 외국인들도 오는데, 디즈니 랜드에서 그 외국어를 일일이 제공하지 않듯이, 휠체어 이용 장애인 또한 따로 배려하지 않는다. 냉정한 사회 앞에서 휠체어 장애인이 눈물을 머금고 길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면 어떤 체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어딘가를 가기 위해 업히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업히는 게 가능하다면 위의 예에서 홍콩 디즈니랜드의 배 모양 놀이기구에, 본인이 마비가 있는 경우에도 탑승이 가능하다. 물론 나를 업는 그 사람이 무척 힘들겠지만 말이다. 사실 평소에 예민한 성격의 나는 업히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부득이할 경우 업힌다. (그리고 그 후 며칠 밤을 이불을 걷어차는 심정으로 후회하곤 한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업혀야 하는 경우는 다른 일을 할 때보다도 여행하는 도중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여행에 앞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미리 정해놓는 것이 좋다. 내가 여행 중에 업힐 일이 생긴다면 업힐지, 아니면 말지를 말이다. 예를 들어, 필자는 이제껏 업혀 본 일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아빠 등 가족 및 친지가 업어줄 경우 제일 문제가 없지만 항상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게만 업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 경험을 돌이켜볼 때, 내가 심리적으로 안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보다는 그 상황에서 당장 힘을 쓸 수 있는 남성에게 업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동반자에게 업히기 어렵다면, 마음 편히(?) 직원에게 미리 요청하자. 아무리 불편해도 한 번으로 끝일 테니까. 당연한 소리겠지만 전화로 물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빠르다. 궁금한 점이 있다면 전화로 직접 물어보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장애인에게 여행은 가능한 수단보다는 의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필자는 실제로 대학을 다닌 3년 내내 월요일 또는 금요일에 강의가 없었다. 주변에서는 나에게 ‘그때 여행가면 되겠다’며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나는 그 당시 정보도, 훌륭한 동반자 후보도 많았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아마도 귀찮아서, 여행을 가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거나 돈을 이유로 여행을 주저한다. 장애도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생각하기에 여행이란 나에게 꼭 주어야 하는 선물이다. 휠체어와 함께한 여행에서 필자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고, 사람들이 꽤 많은 도움을 주어 대부분의 경우 여행을 잘 마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그런 점에서 여행은 사치나 낭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장애가 여행을 주저하게 되는 이유가 되지 않길 바란다. 일단 날과 장소를 정하자. 이 연재도 참고해서 말이다. 우리는 떠날 수 있다.
작성자글과 사진. 원소연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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