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긴 고통과 소란한 공감에 대한 경계
본문
몇 년 전 휠체어를 탄 장애인 미술가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막 더위가 시작되는 즈음이었는데 작가의 웃음과 활기로 에너지를 충전 받는 느낌이었다. 장애를 만난 일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 화제였지만 뜻밖에도 그녀가 장애인으로 맞닥트린 현실 속 한 사건에 마음이 무거웠다. 작가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학교에서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받고 온 날 ‘엄마가 장애인이야?’라며 깜짝 놀란 토끼 눈으로 물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딸은 이전까지 엄마를 장애인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장애인식개선 교육은 딸과 엄마를 장애 유무에 따라 ‘다른’ 사람으로 명징하게 나눴다.
낙인, 혐오의 확인
‘다르다’는 것은 존재의 차이점을 부정적 특성과 연관해 추출하면서 대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만들어낸다. 이 고정관념은 다른 존재에 대한 ‘거리감’을 생성한다. 이정민·이동영이 전국 22개 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생 66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장애인에게 느끼는 사회적 거리감은 다문화인, 동성애자에게 느끼는 것보다 컸다. 고정관념, 부정 감정, 접촉 경험 등이 사회적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었다. 고정관념의 경우 인지적 요인보다는 감정적 요인에 영향을 받았다. 소수자와의 접촉 경험은 고정관념을 변화시키기보다는 부정적 감정을 감소시키는 과정을 거쳐 개인의 태도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 즉,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은 감정적 요인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장애인과의 접촉 경험이 많아진다고 해도 쉽게 변하지 않았다.
이보다 앞서 진행된 김상학의 연구에서는 참여한 대학생 1,005명에게서 장애인들 스스로 ‘열등감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애인을 열등감이 강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은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을 통한 장애인에 대한 이해보다는 사회의 통념이라 믿고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장애인은 열등하다’는 자신의 생각을 사회적 통념 뒤로 숨기며 이러한 결과를 장애인의 탓으로 돌리는 자기 합리화를 적극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의 ‘가깝지만 먼 거리’에는 수많은 고정관념이 존재하고 이것이 반복적으로 생산, 재생산되고 있음을 증언하는 것이리라.
낯선 그대, 낯선 산책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은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주요 제재로 다뤄지며 다양하게 형상화됐다.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거둬내고 이미 익숙한 차별과 배제를 멈춰야한다는 문제의식을 도출했다. 그러나 장애인을 절대적으로 ‘선한 자’로 미화하거나 장애인을 차별하고 괴롭히는 이들을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평면적 인물 설정과 이분법적 대결 구도는 스스로 한계를 노출했다. ‘재미는 없고 가르침만 가득한 교재’가 됐던 것이다.
문학은 특히 동화와 소설에서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생산했다. 장애는 현실의 강제성이 투영되거나 소수자의 억눌린 분노 등이 집약된 신체로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문학사적으로도 장애는 역사의 상흔이 담긴 육체와 피폐한 정신의 신체적 재현으로서 상징적 의미를 평가받았다. 주목할 것은 이 과정에서 다르고 ‘낯선’ 인물은 지속적으로 대상화 된 이미지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신체적 결손으로 인한 장애와 장애인의 특성이 부정적으로 인식되면서 동시에 고정관념을 북돋는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는 메시지 창출을 목적하는 문학적 장치에 쓰임으로 그 생명을 다 하는가? 정용준의 소설은 이 질문에 다른 답을 내놓는다. 정용준의 몇 편의 소설에서는 장애와 장애인이 주요 제재고 인물이다. 소설 속 장애인 주인공은 전체에서 풍요로운 역할을 수행하며 미처 독자가 읽지 못했던 다른 영역의 읽기를 진행한다. 그의 첫 번째 소설집 <가나>에 수록된 여러 단편에서 장애를 가진 주인공과 그들과 관계된 인물들은 서로를 대상화하지 않고 대화한다. 물론 그 대화는 가볍고 흥분되지 않지만 우울하거나 비극적이지도 않다. 덤덤하여 무감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렇지만 감지하기 버거운 침착한 애정이 가득하다. 작가가 집중했던 언어를 통한 이해와 소통의 문제는 이후 ‘선릉 산책’으로 이어졌다.
2016년 제16회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선릉 산책’은 화자인 ‘나’가 자폐증을 가진 ‘한두운’을 ‘알게’ 되는 소설이다. 선배를 대신해 아르바이트로 자폐 장애인 한두운과 하루를 보내게 된 나는 첫 만남에서 헤드기어를 쓰고 무거운 가방을 멘 그가 낯설다. 헤드기어는 자해를 막기 위해서, 책 일곱 권과 물병 세 통, 2kg 아령이 든 가방은 두운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선배는 말했다. 눈을 맞추지 않고, 이유 없이 길에 침을 뱉거나 먹을 것에 집착해 삼키지도 못한 채 또다시 음식을 우겨넣는 그의 행동들에 나는 예민하다. 그러나 나무 이름에 도통하고, 부서진 이어폰이나 부러진 안경다리, 흙 속에 반쯤 파묻힌 털모자 등 버려진 것을 세심하게 발견하고 ‘보는,’ 또 나에게 ‘보라’고 하는 그에게 다른 관심이 생긴다. 한두운을 ‘보게’ 된 것이다.
나는 한여름 견고하게 머리를 둘러싼 두운의 헤드기어를 풀어주고 무거운 가방도 내려놓게 한다. 그의 얼굴은 땀띠를 업고 있다. 이후 둘은 바람을 ‘본다.’ 두 사람 사이의 평안은 세 시간 늦는다는 한두운 이모의 일방적인 통보를 받으며 끝난다. 한두운과 보내는 시간은 다시 고액의 돌봄 아르바이트가 된다. 직전에 한두운과 나란히 걸으며 나눴던 이야기와 둘이 함께 발견한 바람이 지나간 허공 속의 새로운 ‘길’은 이내 사라졌다. 그러나 침을 뱉는다며 화가 난 학생들의 주먹을 피하며 두운이 드러낸 적의 이후 벌어진 일들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소통의 모습은 다시 발견될 가능성을 얻는다.
주춤하던 학생들은 기습적으로 나와 두운에게 모래와 돌멩이를 던지고 바나나 우유와 콜라 세례를 퍼붓고는 “병신 새끼들”이란 욕설을 날린다. 주저앉아 무릎 속에 얼굴을 파묻던 두운이 자기 얼굴을 때리기 시작하고 나는 그것을 막으면서 뒤엉킨다. 잠시 후 답답함과 알 수 없는 분노로 꽉 쥔 나의 주먹 안으로 미끄러지듯 두운의 손가락이 들어오며 “파피용(나비의 프랑스어)”이라 정확한 발음으로 말하고 나와 눈을 마주친다. 나는 두운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두운처럼 자기 광대뼈를 때려본다.
낯선 그대를 알아가기
‘선릉 산책’은 낯설고 다른 장애인과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며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그 가능성을 타진한다. 의도는 물론이거니와 그 방법을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이 진지하고 섬세하며 소란스럽거나 과장되지 않다. 치장하지 않은 걸음과 목소리가 몰입을 돕는다. 상대를 알고 싶은 관심과 호기심은 그동안의 독서 경험에서도 만나기 어려웠다. 상대에 대한 단정과 평가가 얼마나 익숙한 것이었나. 특히 그것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만남이었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선릉 산책’은 새로운 만남의 과정을 이끌어가는 데에 앞서 다소 장황하게 거론했던 고정관념을 활용 내지 환기하고 있는 점에서 아쉽다. ‘선릉 산책’은 서로를 알지 못하는 나와 한두운의 우연한 만남을 나로 하여금 한두운을 알고 싶어 하도록 이끈다. 그야말로 나는 미지의 한 ‘세계’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선배가 전해준 두운에 대한 정보와 메시지는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생하는 것이었다.
선배의 정보는 나와 두운의 만남의 과정에서 두운의 겉모습과 옷차림에 대한 관심을 끌어낸다. 그리고 두운과 나 사이에 있었던 서로에 대한 앎의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는, 보살핌으로 한정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에 매몰된 사고로서 소설의 주제를 부각하는 역할을 한다. 사건 전개와 주제에 필요한 인물이고 사고임에도 그것이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고정관념)를 증폭하고 있는 점에서는 문제적이다.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몰지각한 행위를 나열하고, 선과 악의 문제로 귀결해 장애인에 대한 시혜적 태도를 긍정하는 태도는 두운에 대한 주인공의 이해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역할 한다 해도 ‘보호받아 마땅한, 그래서 보호하는 데 버겁기도 한’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환기한다. 나와 두운의 만남은, 그들의 나란한 걸음은 서로에게 집중했을 때에도 가능할 수 있었다. 더불어 세상의 고정관념과 낙인으로부터 지쳐있는 두운 이모의 울음(“이렇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도 비로소 탈출구를 찾을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상대에게서 느끼는 사회적 거리감, 특히 비장애인이 장애인에 대해서 느끼는 거리감은 장애인과의 접촉 경험과 그 접촉의 질, 친분 등이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문학을 통해서 만이라도 장애인과 여러 차례 만나고 만남의 내용을 충분히 채워가며 이를 지속한다면 둘 사이의 사회적 거리감은 좁혀질 수 있다. 새롭고 낯선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이 적지 않다.
그리고 함부로 기대하게 된다. 더 많은 낯선 만남 속에서 이야기가 빚어지길 기대한다.
<참고 자료>
이정민·이동영, 「대학생이 인식한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거리감 비교연구: 장애인·다문화인·동성애자에 대한 태도차이 및 영향요인 분석」, 『한국장애인복지학』, 한국장애인복지학회, 2019, 61-98면
김상학, 「소수자 집단에 대한 태도와 사회적 거리감」, 『사회연구』, 2004, 181-18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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