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 쉬는 공연을 위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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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찬타! 정숙아>는 극단 함께사는세상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창작한 마당극이다. 2015년 초연 이후, 2017년까지 3년에 걸쳐 지속적인 개작을 거듭하며 공연됐고 지금도 여전히 개작 중이다. 연극은 관객과 함께하는 공연 과정을 거치며 새롭게 창작된다. 작품에 대한 비평의 시선으로 개작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괜찬타! 정숙아>는 어릴 적 황달을 앓고 뇌병변장애를 갖게 된 35세 여자 이정숙의 골방 탈출기, 자립 도전기다. 장애인인 정숙이 칩거 생활을 마감하고 외출에 성공하기까지 2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외출이, 그녀에게는 일생의 꿈이자 소원이다. 자립에 성공하기까지의 과정과 사연들이 무대 위에서 다양한 몸짓과 노래, 춤으로 표현된다.
장애를 바라보는 가족의 시선
할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를 학교는 말라 보낼라카노. 어마이 아바이 묵고살기 바쁜데 사시사철 누가 핵교 델꼬 댕닐끼고? 너거 할배 한 바라. 아이고 엉성시러바라. 사람들이 우예 그래 매정하노. 전쟁나갔다가 상이군인 된 사람이 한둘이가? 그거를 불구자라고 손가락질하고….
2015년 공연을 살펴보면 냉담한 할머니는 시종일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할아버지가 상이군인으로 힘들게 살았고, 동네사람들의 수군거림을 기억하는 할머니는 정숙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고, 초경이 시작되자 동네사람들에게 소문이 날까 걱정한다.
아버지: 뭐? 자립? 이노무 가시나가 이때까지 키아 놨두만은…, 그몸으로 무슨 자립을 한단 말이고? 집에 가자. (휠체어를 밀고 가려한다)
정숙:(발버둥 치면서)안 간다! 나도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아버지: 보통 사람 같은 소리하고 있네!
아버지는 정숙이 야학을 하며 활동지원사와 함께 자립하려 하자, 홀로서기의 어려움과 위험을 이야기하며 반대한다. 창작 의도와 달리 사회의 인식과 제도보다, 가족이 자립을 막는 더 큰 원인인 것처럼 보인다.
2016년 공연에서는 가족들의 모습이 달라졌다. 할머니는 정숙의 장애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면서도, 혈육인 손녀를 아낀다. 정숙이 글을 배울 때, 틀린 철자를 고쳐준다든지, 아끼는 라디오를 준다든지 하며 상황에 따라 변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버지도 가부장적인 모습의 틀을 완전히 벗지는 못했지만, 집회 현장에서 전경에게 저항하는 딸을 보면서 결국은 자립을 허락한다. 이렇게 가족들의 모습이 변한 건 2015년 공연 창작을 위한 인터뷰 과정에서 나온 당사자들의 사례가 많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정숙: 안녕하세요! 인터넷 방송 <쎈 언니가 간다>의 이정숙입니다. 여기는 동그라미 장애인 야간학교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는 동성로 칼라 봄축제 현장입니다. 참여하신 분들 중에 가족이신 것 같은데 인터뷰 한번해보겠습니다. (관객에게)안녕하세요! 학생 가족이신 것 같은데 오늘 축제에 참여한 소감이 어떠세요?
관객:(대답한다.)
정숙: 네. 감사합니다. (상황에 맞는 대답)즐거운 시간되세요. (관객에게)여기 이분은 아까 선물 타신 분인데요. 대구에서 우리 장애인들이 봄나들이 갈 만한 장소를 추천하신다면?
관객:(대답한다.)
2015년 공연에서 어린 정숙이 시설의 폭력에 노출되는 모습과 계단 앞에서 무기력한 상황을 감내해야 하는 모습, 장애등급을 받기 위해 장애를 부풀리는 모습, 그리고 자립 후 동료 상담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나열식으로 보여줬다면, 2016년에는 야학 야유회에서 인터넷 방송 진행자로 일하는 현재 정숙의 활기찬 모습으로 극을 시작한다. 관객들을 야유회에 참여한 야학 학생과 활동지원사, 교사로 설정해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고,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도 허문다.
랩퍼: 골방에서 시내로 나왔다. 시설에서 지역으로 나왔다. / 그늘에서 햇빛으로 나왔다. / 과거에서 지금 여기로 나가자. /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여기, 지금 여기 함께 살자고 함께 놀자고, 함께 먹자고 함께 살자고.
야학 문화제 장면에서는 야학 학생(관객)들이 장애인등급제와 탈시설에 대해 함께 노래하고 부양의무제의 심각성을 인형극을 통해 관람하며, 비장애인 관객이 장애인의 문제를 공통의 사회문제로 받아들이고 고민할 수 있도록 수정돼 공연됐다.
<괜찬타! 정숙아>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관객과 나누고자 한다. 2015년 공연 후 장애인·비장애인 관객의 공연 비평 모니터링을 바탕으로 대본을 수정해 2016년 공연을 올리고, 형식적인 부분(영상, 인형극)을 수정·보완해 2017년 3차 공연을 올렸다. 아직도 집 밖으로, 시설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정숙이들을 응원하며, 살아 숨 쉬는 공연을 위해 <괜찬타! 정숙아>는 오늘도 수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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