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소통의 문을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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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 보조구를 끼고 몸을 일으키기까지가 큰일이지 일단 현관문을 나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면 망설임은 사라져요. 한 시간 남짓한 외출 길, 신호등 앞에 서니 “시장 보러 가요?” 라며 김치 가게 아주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인사를 건네요. 길을 가다 보니 이번에는 아는 선생님이 자전거를 손으로 밀며 걸어와요. “자전거가 펑크 나서 고치러 가요.” 오사카의 생활필수품인 자전거가 고장 났다니, 서둘러 고쳐야죠.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엔 좁은 보도 저편에서 휠체어를 밀며 오던 어떤 남성이 길 한쪽으로 비켜서 기다리네요. 처음 본 그 아저씨도 친절하게 “조심해서 다녀요”라고 말을 건네요. 대단치 않은 지나침과 인사들이지만 은근한 미소가 떠오르고, 저도 모르게 굳어있던 미간이 펴지며 새삼 고마움을 느끼게 돼요. 혼자만이 아니라 같이 어울려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고요.
‘히키코모리’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어요? 자기 방에만 틀어박힌 사람을 일컫는 말로 한국에서는 ‘은둔형 외톨이’라고 한다던데. 얼마 전 바로 그 은둔형 외톨이 경향이 있는 사람들을 주목하게 한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어요. 5월 28일 아침, 가와사키시에서 스쿨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던 초등학생 등 18명을 수십 초 사이에 무차별 칼로 찔러 2명이 사망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어요. 범인(51세)은 그 자리에서 스스로 칼로 찔러 사망했고요. 범인은 장기간 일도 외출도 하지 않은 히키코모리 경향이었다고 밝혀졌어요. 어려서부터 그를 양육한 80대 숙부·숙모가 같이 살았지만 말도 나누지 않고 용돈과 식사를 놓아두면 가져가는 정도였다고 해요. 6월 1일에는 전 농림수산부 사무차관(76세)이 자택에서 히키코모리 아들(44세)을 칼로 찔러 살해한 후 자수했어요. 평소에 부인과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아들이 사건 당일 집에 인접한 초등학교에서 열린 운동회에 시끄럽다고 짜증내는 것을 보며, 아들이 무분별하게 아이들을 해치지 않을까 두려움을 느끼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대요.
일본에서는 ‘8050문제’라는 것이 거론되고 있어요. ‘8050문제’란 80대 부모와 동거하며 생활 전부를 의존하는 50대 자녀의 문제로, 그런 가정이 점점 증가하고 또 고립되고 있기에 ‘8050문제’라고 부르게 됐어요. 2018년 일본 정부의 조사에 의하면 40세에서 64세까지의 인구 중 61만 3천 명이 히키코모리 상태인 것으로 밝혀졌어요. 히키코모리가 사회적으로 대두된 것은 1990년 초인데 당시에는 10대·20대 청소년 문제로 지적되던 것이 그간 30년 사이에 자녀도 나이가 들고 부모도 고령화돼 문제의 심각성이 극명해졌다고 해요.
사건 후 인터넷 상에서 히키코모리를 예비 범죄자로 취급하는 표현이 눈에 띄어 히키코모리 지원 단체 등에서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어요. 히키코모리가 되는 이유는 학대나 실업, 왕따 등 다양하며 그에 따른 대응도 다양하게 고려돼야 하는데 ‘히키코모리’라는 말 한마디로 싸잡아 묶어서 다루려는 풍조는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거죠.
시각 장애나, 하반신 장애가 있어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없기에 이동권, 접근권을 고민하고, 지원을 확대했으면 하잖아요. 이제 신체적 장애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걸림돌과 벽에 가로막힌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해결책도 쉽게 눈에 보이는 것 같지 않아요. 그래도 누구라도 직면할 수 있는 문제고, 더 이상 외면만 해서는 안 되는 문제 같아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은 고민거리지만, 문득 우러러 본 하늘이 참 곱더라고 뜬금없이 건네는 한마디, 소박한 소통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야말로 작은 시작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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