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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여행, 복지 아닌 산업으로 활성화해야

[기획] 중증장애인 여행, 어떻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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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진호 기자
여행,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인생을 살아오며 가장 행복했던 기억들이 언제였을지 반추해 보면, 상당수가 여행지에서의 자유와 해방감에서 오는 추억들이다. 여행을 통해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랑을 얻어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여행을 통해 얻은 에너지로 일상에서 겪는 고통을 아슬아슬하게 지탱하는 이들도 많다. 떠나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하는 감정들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치유의 마법손’인 여행을 즐기고 있는 장애인의 비율이 등록장애인 중 26.8%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유형별로 볼 때는 지적장애인(33.9%)보다 뇌병변장애인(15.3%)의 여행경험이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2005년도의 조사결과이기 때문에 지금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수치만 조금 높아졌을 뿐 큰 차이가 없으리란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2008년 장애인실태조사에서는 장애인의 여행에 대한 조사항목이 없었고, 통계방식에 문제가 있어 정확한 수치라고 확신하기 어려우나, 여가활동으로 여행을 꼽은 이가 전체 장애인 중 1.7%에 불과한 반면 38.3%는 향후 가장 하고 싶은 여가활동으로 여행을 꼽았다.

이를 종합해보면 장애인들의 여행욕구는 상당하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여행을 즐기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뇌병변장애인과 같이 이동하기 힘든 장애유형일수록 여행을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전진호 기자 평생 동안 여행 한 번 못 가본 장애인이 절반 넘어

이에 대해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 문화센터 박성준 팀장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과 금전적인 문제, 정보부족 등이 맞물리며, 떠나는 것 자체를 포기하거나 주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평상 시 이동의 문제로 곤혹을 겪다보니 다른 곳에서 겪게 될 고통을 지레짐작해 여행을 포기하는 장애인이 많은 것 같다. 특히 지체장애인보다 자가운전자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뇌병변장애인은 이동의 문제 때문에 여행을 떠나본 경험이 아예 없는 이들도 많고, 짐짝처럼 다녀온 여행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또 다시 불편함을 감수하고 싶어 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며 “특히 지방에 살고 있는 장애인의 경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에 능숙하거나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이들이 아니면 사실상 여행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지방의 한 장애인종합복지관 관계자는 “지역에서 자신의 돈을 들이지 않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채널은 복지관밖에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기관에서도 외부 자원을 활용해 기관 회원 분들에게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제공하려고 노력하지만, 대상자가 한정되다 보니 수급권자 등 상대적으로 빈곤한 분들을 위주로 선발하게 된다. 하지만 가고자 하는 욕구는 오히려 수급권 층보다 차상위나 수급비를 받지 않는 이들이 더 커 보인다.”며 “또 전체를 대상으로 하더라도 이동상의 문제 등을 고려해 (선정과정에서) 중증보다 경증을 선발한다.”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그나마 복지관이라도 나오는 분은 ‘언제 여행을 떠난다’는 정보라도 알 수 있지만, 안 오시는 분들은 그 정보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고 덧붙였다.

그나마 2001년부터 복지관을 중심으로 시행 중인 복지관광이나 돌봄여행 등을 통해 저소득장애인도 여행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숨통은 틔워놓았다. 그러나 단체여행에서 오는 불만 등으로 인해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몇 달 전 복지관광에 참가한 임모(지체장애 1급, 52)씨는 “돈도 없지만 교통과 숙박, 식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가족이나 활동보조인과 동반해 여행을 떠날 엄두도 못 냈는데, 기회가 주어져 재미있게 놀다왔다.”고 말한 뒤 “공짜로 하는 여행이고, 단체관광인 만큼 여행사 측의 룰을 따라야 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혼자 조용히 잠자리에 들고 싶었고, 더 보고 싶은 곳을 둘러보지 못한 건 영 아쉬웠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족들과 꼭 다시 한 번 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 ⓒ전진호 기자 장애인 관광, 복지가 아니라 산업의 측면으로 바라볼 시기

종합하자면, 여행을 떠난 경험이 있는 장애인의 수도 적지만, 이동과 관광지 편의시설 미비 등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주로 개별관광이 아닌 단체관광 중심으로 여행을 할 수밖에 없으며, 이 때문에 여행의 진정한 맛을 못 느끼는 경우도 상당해 보인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배융호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지난 1월에 열린 ‘장애인 관광 활성화를 위한 국제 세미나’에서 “최근 몇 년 전부터 문화관광체육부와 한국관광공사에서 장애인관광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민간에서의 인프라 구축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차원에서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배융호 총장은 “정부차원에서 관광지의 편의시설 확충, 숙박시설 개선, 웹사이트 등을 통한 정보제공, 장애인 관광안내 책자의 정기적인 발간 등이 이뤄진다면 장애인 여행자의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화관광부 주최로 지난 5월에 열린 ‘2010 장애인 문화·체육·관광을 말하다’ 토론회에서 이훈 한양대학교 관광학부 교수 역시 “이제 장애인 관광은 복지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새로운 관광시작 개척의 일환으로 이해하고,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이 필요한 시기.”라며 “장애인 접근이 가능한 인프라가 구축되면 노인과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여행 등의 새로운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이훈 교수는 ▲관광진흥법 개정 또는 장애인 여행권을 담은 법률 마련 ▲장애인 복지관광 프로그램 확대 ▲저소득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관광바우처 제도 시행 등을 제시했다.

    ▲ ⓒ전진호 기자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 이젠 떨쳐버리자

그렇다면 제도가 마련될 때까지 장애가 있는 이들은 여행이 주는 아드레날린을 외면한 채 살아야 할까, 그렇지 않다.

박성준 팀장은 “장애여부를 떠나 일상에서 벗어나는 행위 자체는 누구에게나 용기가 필요하다.”며 “실제로 삼십대 중반이 돼서야 처음으로 여행을 떠난 이를 비롯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만 여행을 떠나다가 처음으로 자기 스스로 여행을 떠난 이 등의 경험담을 들으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처음 시작은 어려웠지만 막상 (떠나보니)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알게 돼 그 쾌감을 잊을 수 없다’고들 한다.”며 용기 있는 시작을 주문했다.

박 팀장은 “나 역시 소아마비 장애가 있어서 목발을 이용하는데, 여행지에서 더 많은 체험과 비용절감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게 많다. 하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해 보겠냐’는 마음으로 도전하다 보면, 내 의지든 다른 사람의 도움 때문이든 간에 문제 상황을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상에서 얻을 수 없는 새로운 것들을 몸으로 체득하게 되고, 그 결과 조금씩 성장하는 나를 느낀다. 도전하고 용기를 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 ⓒ전진호 기자 돈이 없어서 여행 못 가? 의지만 있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물론 편의시설이 아무리 잘 갖춰지고 떠나고자 하는 용기가 있다 하더라도 여행을 떠나는 것 자체가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에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대다수의 장애인들이 여행을 떠나겠다고 마음먹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 서울의 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한 관계자는 “다른 세상을 보고 싶다는 본인의 욕구가 있고, 쾌적하고 넉넉한 여행을 꿈꾸는 게 아니라면 떠나는 것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지역의 경우 지하철 망이 잘 발달돼 있어 지하철과 저상버스와 연계해 여행지를 찾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만 잘 검색해 계획을 짠다면 식사비용 정도로 충분히 여행의 쾌감을 만끽할 수 있다.”며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 상당수가 사진 찍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이 정보를 활용한 블로그를 운영해 부가수익을 거둔다든가 시민기자에게 원고료를 주는 매체를 찾아 기고하는 방법도 하나의 수입원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블로거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팸 투어도 많이 진행되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 자립생활센터 등에서 활동 중이라면 센터를 활용해 지역자원을 끌어들여 여행을 떠나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현실성 없어 보이는 듯 한 이 이야기가 현실화 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장애인 관광가이드 양성교육이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진행되고 있는 장애인 관광가이드 양성교육은 장애인당사자 입장에서 여행 관광 코스를 개발하고 소개할 수 있는 관광가이드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으로 ▲여행욕구를 충족하고 ▲관광가이드라는 새로운 직업군에 도전한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있다.

이 양성교육을 받고 있는 중증장애인 10명 중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권자이지만 ‘여행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어 이 교육에 참가하게 됐으며, 여행지 탐방·원고작성·사진촬영 등으로 부수입도 거두고 있다고.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피노키오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전윤선 씨는 “장애인관광가이드라는 새로운 직업군을 사회적 기업으로 확대시켜 돈 없는 장애인도 자유롭게 여행을 즐기며, 돈도 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혀 앞으로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작성자전진호 기자  01627296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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