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라 다 고기박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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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닷컴]
▲ 말린 장대, 민어, 아귀 사이에 차나무 한 그루의 초록이 싱그럽다. “좋아 보인가? 좋아 뵈라고 해놨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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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린 장대, 민어, 아귀 사이에 차나무 한 그루가 페트병에 자라고 있다. “좋아 보인가? 좋아 뵈라고 해놨어” 건어물 좌판 할머니의 여유다.
회를 뜨는 젊은 남자는 그 모습이 ‘율동’이다. 회 한 점 떠 접시에 놓고, 한 점 떠 접시에 놓고… 착, 착, 착. “오래하다 보믄 저절로 돼요.” 이 남자 옆에도 꽃병에 흰 국화 만발했다. 홍어 뜨는 아줌마 앞에도 국화 한 다발. 생닭집 좌판에도 붉은 장미와 노란 국화가 어울려 활짝. 고등어 파는 손수레 위에는 나리꽃이 방긋. 여기저기 꽃송이에 좌판들이 환하다.
김상덕(76·여수 오촌동) 할머니가 매일 장에 꽃을 가져온다. 국화 장미 나리 달리아…. 할아버지가 집에서 키운 것을 새벽 버스 타고 가져온다. 값이 싸다. 할머니에게 꽃 사들고 장보는 이들이 여럿이다. 상인들은 할머니의 단골이다. “국화 가져가믄 담에는 장미 가져가고 그려.” 상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꽃은 국화. 오래 피어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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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촌동 사는 김상덕 할머니는 매일 장에 꽃을 가져온다. 할아버지가 집에서 키운 것을 새벽 버스 타고 가져온다. 값이 싸다. 생닭집 좌판에도, 고등어 손수레 위에도 여기저기 꽃송이에 좌판들이 환하다. ⓒ 전라도닷컴
▲ 어물전 디스플레이. 싱싱하게 보이라고. ⓒ 전라도닷컴
서시장은 종합시장, 교동시장은 어시장
여수 서시장과 교동시장은 나란히 있다. 연등천 따라 교동시장이 서고 서시장이 선다.
서시장은 ‘여수읍장’으로 불리던 오랜 전통을 지닌 여수의 대표 정기시장. 4·9일이 장날이지만 도시가 커지며 매일시장으로 바뀌었다. 장날에는 거리난장에도 장이 생기며 조금 더 활기를 띄는 정도.
교동시장은 1965년 개설된 시장. 배에서 들어온 물건들을 판매하는 조그만 어시장이 크게 활성화됐다. 지금은 점포 74개, 노점 380여 개가 늘어선 큰 규모의 시장이 됐다. 일년 매출액이 350억∼400억 정도. 여수에서 최대의 상설시장이다.
서시장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옷전 채소전 과일전 등 다양한 품목이 집중돼 있는 종합시장. 교동시장은 작은 어물전에서 시작한 장인만큼 주로 생선과 해산물이 거래된다. 서시장에도 어물전이 있지만 교동시장에 밀려 세를 과시하지 못하고 있다.
농산물 좌판이 본격적으로 들어선 곳은 서시장 남문 건너편 거리. 아침에만 열리는 도깨비 시장이다. 갓 옥수수 살구 깻잎 등 시골에서 온 할머니들이 작은 좌판을 편다. 재미난 것은 저녁때쯤 길 건너편에 다시 채소전이 선다는 것.
▲ 교동시장 상인들은 아침 손님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가고 나면 늦은 아침을 먹는다. 시장 상인들에게는 2천 원, 3천 원만 받는 시장 밥집은 반찬이 걸다. ⓒ 전라도닷컴
▲ 반지락 알만 빼내어 엮은 반지락꽂이. 잔치날 먹는 귀한 음식이다. ⓒ 전라도닷컴
▲ 장꾼들의 돈통엔 어김없이 만 원짜리 한 장이 들어 있다. 돈 많이 물어들이라는 주술이 담긴 시퍼런 지전. ⓒ 전라도닷컴
▲ 먹기 아까울 정도로 색이 고운 까치복. ⓒ 전라도닷컴
기골 장대한 돗병어는 ‘된장방아’랑 궁합 맞아
아침 7시께 손님들이 교동시장으로 몰린다. 어물상인들이 어항단지와 중앙동 구판장에서 물건을 해 와 좌판을 차리면 장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생선 좌판 중간 중간에는 농산물 상인들도 마늘 열무 고사리 소불(부추) 등을 놓고 판다.
아침, 교동시장은 생선 구경만으로도 신난다. 싱싱한 해산물부터 바닷바람에 말린 쫄깃한 생선까지 갖가지 바닷고기들이 없는 게 없다.
놀란 것이 ‘큰 병어’로 알려진 ‘덕대’. 이곳에서는 ‘돗병어’ 또는 ‘독병어’라 한다. 기골이 장대하다. 생선 상자 위에 딱 두 마리만 놓아도 꽉 찬다. 값은 15만 원. 어물상인은 “물고기로 따지믄 상품 중에서도 상품이요. 일본 사람들이 더 좋아라 하는 고기제” 한다. 한 마리 사면 4명이 먹고도 남는단다. 맛으로 따지면 결코 비싸지 않다고 한다.
돗병어는 활어회보다 선어회. 7시간 정도 냉장 숙성시킨 후 썰어 먹는 것이 좋다. 육질이 부드러워 한번 맛을 들이면 떼기 어렵다.
돗병어는 여수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고기. 먹는 방법이 다른 지역과 다르다. ‘된장방아’라는 것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다. “다른 데는 회 먹을 때 겨자나 초장에 먹지만 여수는 달라라. 된장방아에 먹제. 특히 돗병어는 된장방아 아니면 그 맛을 알 수 없어. 둘이 궁합이 맞거든.” ‘된장방아’는 된장에 마늘 양파 깨 참기름 등 온갖 양념을 한 것.
여수 음식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된장으로 요리를 많이 한다는 것. “반지락국도 된장으로 끓이고 나물도 다 된장무침으로 하고 미역국도 된장 넣고 해먹는 집이 많애.”
▲ “저것은 꽃게, 이것은 멍게, 요것은 내 강아지!” ⓒ 전라도닷컴
▲ 어물전에 가장 흔한 생선이 서대. 그 너머로 민어 참돔 병어도 보인다. “여수 사람들은 서대 없으면 못 살아. 회로 먹고 찜으로 먹고 말려 먹고. 여수 별미제. ” ⓒ 전라도닷컴
“각시서대는 하지감자에 지져야 최고로 맛나”
선명한 색체로 한참이나 들여다보게 하는 것은 까치복과 각시서대.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쁜 색을 지니고 있다. 까치복을 찾는 사람들이 꽤 있다. 탕으로 많이 해먹지만 요새는 튀김으로 해서 간식으로 하는 집도 많다고 한다.
“막내 아들이 마흔 둘이여. 세월이 그리 갔어.” 임금례(72) 할머니는 장사보다 각시서대 다듬기에 여념이 없다. 사람들 지나가도 붙잡지 않는다. 손님이 “얼마요” 물어보면 “손목댕이가 바빠” 한다. 각시서대 손질하며 계속해서 되뇌는 말이 있다.
“오메 이것 잔 보소. 이라고 통통하네.” 알이 꽉 찬 서대다. 할머니는 “요것은 사라고 안 졸라도 (손님이) 알아서 가져가. 여수가 바닷가라 다 고기박사여. 가만 있어도 다 알고 ‘주쇼’ 하고 가져가.” 각시서대는 하지감자 썰어넣고 지지면 최고로 맛나다고 한다.
“꾀장어 말린 놈 양념해 갖고 볶으믄 그놈에만 손이 가”
어느 생선가게나 참장어(갯장어)와 꾀장어(붕장어)가 잘 나간다. 손질하기에 바쁘다.
참장어와 꾀장어는 여름철 보양식. 특히 참장어는 충무 고성만에서 서해 안마도 해역까지 남해안 일원에서만 어획된다. 또한 여름 한철에 잡히기 때문에 이맘때 최고의 인기를 끈다. 꾀장어는 시기와 상관없이 1년 내내 잡히는 어종. 그러나 산락 직전인 여름철에 지방분이 가장 많고 영양소가 풍부해 여름에 가장 즐겨 먹는 음식. 다른 생선에 비해 값이 싸 여수에서는 서민 고기의 대표격이다.
직장인 김미영(42)씨는 “아침에 장어탕으로 해장하고 점심으로 장어소금구이 먹으러 가고 저녁 회식 때 장어 샤브샤브 먹으러 가는 사람들이 여수 남자들이다”라고 말한다.
어떤 것이 싱싱한지 손님들이 다 안다. 알아서 골라 챙겨든다. “참장어가 많이 잡힐라믄 태풍이 한번 와 갖고 바다를 한번 뒤집어야 한디.” “비온게 장어가 잘 안 나가겄소. 몰리기(말리기) 힘든게 잘 안 사가지라.” 저마다 아는 척을 한다.
말린 꾀장어가 별미라 한다. “꾀장어 말린 놈 양념해 갖고 볶아 묵으믄 그놈에만 손이 가제 딴 반찬은 있으나 마나여.”
장어를 팔며 상인들이 빠트리지 않고 손님에게 물어보는 말은 “만들어 줄까?” 손질해 줄 것인지 물어보는 것이다. 장어는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손질 방법도 여러 가지. ‘뼈를 발라주라’ ‘머리는 따로 해줘’ 등 주문 사항이 많다.
처음 보는 생선이 많다. 학꽁치처럼 긴 입을 가진 것이 ‘꼬시’. 많은 양인데 값은 3천 원. 그러나 사가는 사람이 없다. “전 부쳐 묵으믄 맛있어. 비린내도 안 나고. 옛날 어매들은 많이 해 묵었는디….” 물메기처럼 생겼으나 뱀장어처럼 긴 ‘장갱이’는 무 넣고 매운탕으로 많이 해먹는 물고기. ‘밀쟁이’는 흔히 보리멸 또는 모래무지라 하는 고기로 회로 먹는다. “소주 안주로 묵으믄 달디 달제.”
▲ 요즘은 장에서 손저울 보기가 쉽지 않다. 더덕향을 달고 있는 할매. ⓒ 전라도닷컴
▲ 요즘 채소전에 흔한 벌똥(보리수열매). 작은 대야에, 양푼에 담아 팔고 있다. ⓒ 전라도닷컴
“여수 사람들은 서대 없으면 못 살아”
“섬 고기! 사시미감!”우럭 벙에돔을 가져온 상인은 ‘섬에서 잡아 온 고기’라는 것을 강조한다. 한 손님이 “양식 아니요” 하자, “허!” 웃는다. 한마디 한다. “고기 볼 줄 모르는 사람한테 고기 팔기 힘드네.” 우럭 한 마리를 집어 내보인다. “양식은 색이 시꺼멓잖아요. 이건 안 그러잖아요. 가져가 해먹어 보믄 더 잘 알지라.” 참고로 일러주는 게 있다. 자연산 광어를 찾는 방법. 양식 광어는 배에 얼룩무늬가 있고 자연산 광어는 깨끗하다.
그런데도 손님이 그냥 가버렸다. 열이 좀 받았나보다. “오징어 사믄서 양식 아니냐고 물어보쇼.” 오징어는 양식이 없다.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선이 서대. 어물전에도 서대 다듬기 바쁘고 건어물전에도 서대가 큰 비중을 차지하며 널려 있다. 아내와 함께 장보러 나온 김종국씨는 “여수 사람들은 서대 없으면 못 살아. 회로 먹고 찜으로 먹고 말려 먹고. 여수 별미제. 여수에서 서대 없으면 제사 못 지내” 한다.
손님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간 뒤 상인들은 늦은 아침을 먹는다. 밥집에서 시켜 먹는 사람이 많다. 반찬이 걸다. 밥집들 간의 경쟁일 수도 있겠지만 밥집마다 상인들에게는 더 저렴하게 식사를 제공한다. 밥집에서 4천 원, 5천 원하는 백반을 상인들에겐 2천 원, 3천 원만 받는다. 식사 끝나고 빈 밥그릇 아래 꽂아둔 천 원짜리가 정겹다.
교동시장은 매월 첫째 셋째 일요일에는 나오는 물건도 줄고 손님도 준다. 어항단지와 중앙동구판장의 경매가 없는 날이어서 고기 나오는 것도 그만큼 적다.
▲ 찹찹하니 묶어내온 깻잎. “만원짜리로 돈다발이믄 얼마까? 너머 큰돈이겄제?” ⓒ 전라도닷컴
▲ 따뜻한 남쪽 해안에서만 자라는 황금빛 비파 열매. ⓒ 전라도닷컴
“달고, 쓰고, 돌산갓!”
교동시장이 끝나는 인도는 푸릇하다. 오전에만 열리는 도깨비 시장으로 시골 할머니들이 물건을 깔고 장사를 하고 있다. 옥수수를 삶아 파는 할머니가 꽤 있다. 물건을 성곽처럼 쟁여놓고 파는 이들은 갓장사. 한 아주머니는 “달고, 쓰고, 돌산갓!” 하고 판다.
채소전이 상큼하게 느껴지는 것은 조금씩 가져온 붉고 푸른 열매들. 벌똥(보리수열매) 산딸기 살구 오디 매실까지 작은 대야에, 양푼에 담아 팔고 있다. 화양면에서 온 할머니는 가져온 살구가 잘 안 팔렸다. “잡솨 봐” 하며 하나씩 돌린다. 살구를 먹은 사람들은 고마움을 말로 치하한다. “사람들이 눈이 없구만. 이 맛난 것을 왜 안 가져갔을까”.
다른 시장에서 보기 힘든 열매가 있다. 황금색 비파 열매. 따뜻한 남쪽 해안에서만 자라는 비파나무다. 먹어 봤다. 달큼하고 상큼하다. 그런데 할머니는 “술 담그는 건디….”
야유회에도 집들이에도 빠지지 않는 서시장 족발
서시장은 교동시장에 비해 한가한 편이다. 김치장사는 불만이 있다. “거리에서 다 폴아분디 누가 여기까지 들어오가니.” 빈 점포가 눈에 띈다.
서시장을 대부분 메우고 있는 장사는 옷장사다. 옷장사 가운데는 작업복만 파는 가게도 있다. 여천공단이 크게 있기 때문. 서시장에서 사람이 붐비는 곳은 음식 골목이다. 특히 족발골목은 널리 알려졌다.
창신식당 한영수(66)·김정난(63) 부부가 족밥집 원조다. 김정난씨는 “서울에서 장충동 족발이 유명할 때제. 여수 사람들은 족발이란 걸 잘 몰랐어. 우리집도 원래는 돼지머리 눌린 것, 곱창, 순대를 했는데 옆에서 해보라고 하더라고. 그러다가 저질러 불었는디 대박이 났제.”
그때는 큰 솥에 사골국물 끓여 그냥 족발을 삶아냈기만 했다. 그런데 소문이 났다. 순천에서도 주문이 들어오고 특히 거문도 등 섬사람들이 족발을 많이 찾았다. 그러는 사이 골목에 족발집이 하나씩 늘어났고 각자 노하우로 족발골목을 키웠다. 지금은 야유회든 집들이를 하든 이곳 서시장 족발이 빠지지 않는 음식이 됐다.
▲ 바다에서 지금 막 뭍으로 올라온 것들. ⓒ 전라도닷컴
▲ 우리나라 산과 우리나라 바다가 합작으로 만든 좌판. ⓒ 전라도닷컴
“여수에 논이 없잖애. 긍께 싸전에 사람이 바글바글했제”
화양면 장수리에 사는 김서익(73) 할아버지는 지금의 시내버스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크로버스’가 다닐 적의 장 얘기를 한다. 전어 한 대야 팔면 일한 삯으로 오십 원이 손에 쥐어질 때다.
“옛날에는 이런 건물이 아니라 ‘루삥집’이었제. 기름종이로 만든 판자집이여. 지붕에 모래 뿌려갖고 ‘골탄(콜타르)’을 칠하고 그 아래서 장사를 했어. 골탄을 칠해 놓믄 오래가거든. 여름에 뜨거워도 흘러내리지 않고. 그때 장사꾼들은 밥도 못 묵고 장사를 했어. 국수 찐빵 돼지국밥이 있긴 있었는디 돈 있는 사람들이나 사먹는 음식이제 장사꾼들은 그것도 못 사 먹고 집에 가제.”
장 한복판에 소전이 섰다. 성냥간(대장간)이 많았다. 지금처럼 과일이 흔하지 않았다. “과일이란 게 없었어. 맨 시골에서 나는 채소뿐이제.”
서시장은 싸전이 컸다고 한다. “여수에 논이 없잖애. 긍께 싸전이 상대적으로 큰 거제. 열차로 해남 고흥에서 쌀이 왔어. 없는 살림에 묵고는 살아야 한게 싸전에 사람이 바글바글했제.”
소금은 신안에서 뱃길을 통해 왔다. 여수에는 염전이 없었다. “소금 못 사먹는 사람들은 재래염이라고 갱물을 끓여서 이녁 먹을 것 하고 그랬제.”
▲ 짱짱한 볕을 놀리기 아까웠나 보다. 졸지에 즉석 수건 건조대가 된 자전거. ⓒ 전라도닷컴
▲ “인자 여름 준비는 끝이여.” ⓒ 전라도닷컴
‘쥐고기’ 때문에 커진 서시장
서시장에 장사꾼이 늘어난 것은 ‘쥐고기’ 때문이라 한다. 여수는 한때 쥐고기가 많이 잡혀 쥐고기 가공공장이 여기저기 생기는 등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일하며 살림을 꾸려갔다. 그러다 쥐고기가 나지 않자 쥐고기로 먹고 살던 사람 상당수가 상업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육상교통이 발전하지 못할 때 여수 지역에는 ‘장배’라는 게 있었다. “해방 되고 나서도 여객선이라는 게 없었어. 가까운 사람들은 걸어서 오지만 장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은 거즘 배타고 오제. 서시장 장날만 다니는 배가 ‘장배’여. 돗단배제. 그러다 미군정시절에 덕영호 질자호 여진호 같은 여객선이 생겨 갖고 그것 타고 장에 댕겼제.”
‘서시장’이라는 명칭은 일제강점기 지명인 서정(西町)이 해방 후 행정구역 개편시 서교동으로 되면서 자연적으로 서시장으로 불려졌다.
예전에 비해 서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크게 줄었지만 떡집 죽집 국밥집 곱창집 등 오래 전부터 서민들이 즐겨 찾는 저렴한 음식점들은 여전히 사람을 모으고 있고 항아리집 한복집 등 오랜 가게들은 꾸준히 장사를 하고 있다. 그동안 이어온 정이라는 게 쉬이 없어지지 않는 까닭이다.
글·사진=김창헌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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