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라셨죠? 괜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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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들어온 말이지만, 막상 닥치니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겠더라고요. 아마 한국에서도 보도가 됐을 텐데, 지난 6월 18일 아침 7시 58분 오사카에서 매그니튜드(지진규모) 6.1의 지진이 있었어요. 진원이 오사카 북부라는데 오사카 남부에 위치한 우리 동네의 진도는 ‘5약’이라고 발표되었어요.
크고 작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갑자기 방바닥이 흔들리니 처음에는 착각인가 싶고, 다음 순간에는 이제 어떻게 되려나 눈앞이 캄캄하고, 어찌해야 좋을지 갈팡질팡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요. 약 30초 정도 지속되었다고 하는데 참으로 길고 길게 느껴졌어요. 지진이 멈춘 뒤에도 이제 다 지나간 건지, 다음 지진이 또 오는 건지 얼떨떨하고요.
둘러보니 다행히도 주변에는 물건이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더군요. 2층에 있던 둘째 아이가 ”엄마 괜찮아?”하며 내려오더라고요. 1920년대 이후 지진 관측제도가 생긴 후 오사카에서 가장 큰 지진이라고 해요. 역사적으로는 약 400년 전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사카에서 천하를 잡고 있던 때 지진규모 7.5의 대형지진이 있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400년 전 일이니 아침 출근, 등교 시간에 닥친 진원지 오사카라는 뉴스가전 채널에서 방송됐습니다. 지진 이틀이 지난 오늘의 상황으로는 진도에 비해서 피해의 규모가 크지는 않은 듯하지만, 등굣길의 초등학생이 학교 수영장 담벼락이 무너져 희생을 당하는 등 가슴 아픈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제가 일본에 와서 벌써 21년을 살았고, 6년 전에는 동북대지진도 있었기에 지진이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지만,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안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이번에는 오사카가 직접적인 피해 지역이니까 느낌이 더 생생하네요.
이야기가 바뀌지만 지진이 일어나기 바로 전주 6월 10일에는 이쿠노구라는, 저희 동네에서 주최하는 ‘제30회 이쿠노 아지사이 마츠리’가 열렸어요. ‘아지사이’라는 건, 장마철 흐린 날씨에도 활짝 피는 자양화(수국)를 일컫는데 이 동네의 꽃이라고 하네요. 각 구마다 그 동네를 상징하는 마스코트를 만들고 있는데 ‘이쿠민’이라고 하는 마스코트는 머리에 자양화 꽃 장식을 달고 있어요. 이쿠노구에서는 재일동포를 비롯한 외국인 주민이 많다는 구의 특징을 살린다는 뜻에서 ‘다문화 공생’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구민 정책을 펴고 있다고 해요.
이번에는 ‘다문화 공생’이라는 주제를 살려서, 이쿠노에서 살고 있는 한국 사람은 물론이고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간담회를 준비했고, 무대 공연 시 사회를 진행할 때 물론 전부터 수화 통역자는 있었지만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진행 상황을 한국어로도 전달하고자 한국어 통역도 넣기로 했다고 해요. 어찌어찌해서 제게 그 통역 이야기가 왔고 모두 봉사로 하는 거고 사례는 없다지만 기쁘게 참여했어요.
당일, 오사카는 장마철이 시작됐어요. 자양화가 비와 어울리는 꽃이라더니 전날부터 많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고, 아침부터 하늘은 찌뿌둥 흐린 날씨더라고요. 지역 주민들의 장기자랑 수준인 무대이기는 하지만, ‘어머니학교’라고 한국에서 오신 분들을 위해 일본어를 봉사로 가르쳐 주시는 분들이 아리랑 노래도 선보이고 최선을 다해서 꾸미는 무대들이 이어졌어요. 그리고 그때 무대 옆에서 수화 통역을 하시는 분이 바로 저희 집세 채 건너 옆에 사시는 니시야마 미에 씨와 친구인 신경자 씨였어요. 니시야마 미에 씨는 일본 분, 신경자 씨는 부모님이 제주도에서 오신 재일동포이신데 수화라는 고리로 묶인 친한 친구이신 것 같았어요. 사이사이 시간 우리는 서로 이야기도 주고받고 그날 행사는 무사히 끝났습니다.
지진이 일어난 아침. 저는 한참을 멍하니 텔레비전 뉴스만 쳐다보고 있는데 밖에서 이웃집 니시야마 미에 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목소리가 밝고 톤이 높아 바로 알 수 있었어요. 저희 바로 앞집에는 아흔 정도 되시는 재일동포 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데 귀가 아주 안 좋으신 것 같더라고요. 주위에 지진으로 인한 눈에 띄는 문제는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혼자 계시고 몸도 불편하신 어르신이니까 안부를 여쭤보는 것 같았어요. 뜻밖의 지진으로 불안하고 멍멍한 머릿속이 밝고 환한 목소리로 “깜짝 놀라셨죠? 괜찮으세요?”라고 안부를 묻는 그 평범한 인사말이 참으로 다정하게 들려왔어요. 그리고 다들 참으로 빠르게 일상의 생활을 추스르더라고요.
초・중・고등학교는 건물 점검 등을 위해 하루 임시 휴교가 되고, 전철이나 지하철도 안전점검을 위해 운행이 정지되어 철길에는 전철에서 내린 사람들이 묵묵히 줄을 서서 걸어 빠져나오고, 몇 시간씩이나 버스나 택시를 기다린 사람들은 너무나 지쳤을 텐데 불평 한마디 없고! 지진이라는 자연의 재해 앞에서 땅은 흔들렸지만 사람들은 그 가운데에서도 중심을 잡으려고 묵묵히 애쓰는 것 같았어요. 태어났을 때부터 지진이라는 자연환경을 수용하며 훈련되어서일까요? 그 조용한 차분함, 거기에 “괜찮으세요?”라는 따뜻한 한마디가 곁들여지면 정말 안심이 되는 것 같아요. 불안하고 두려움이 밀려오는 순간 누군가가 나를 걱정하며 지켜봐 준다는 아는 척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요, 더욱 더 간절히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의 확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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