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는 일터로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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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올해의 빅뉴스, 가장 인상적인 뉴스 등을 되짚어 보는 일이 많잖아요. 생각해 보면 2018년 한국에서는 분단된 조국이 이어지는 내일을 기대해 보게 하는 희망이 그려지고, 그를 위해 여러 가지 상황들을 만들어가는 뉴스들이 분주하게 들려 왔어요. 물론 퍼포먼스 같은 분위기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열심히 자리를 펴 놓고 판을 열어보려는 애씀과 간절함이 더해서 눈을 뗄 수가 없더라고요. 하지만 열심히 판은 깔아놓아도 정작 무대가 열리기까지는 주연급 출연자와의 교섭도 잘 되고 조건도 잘 맞춰줘야 하니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인가 봐요. 달력이 남아있는 사이에 뭔가 좋은 소식이 들려오려나 예측불허지만 남은 날짜를 세보며 기다려지네요.
며칠 전 모처럼 오사카에서 상영하는 한국영화 한편 보러 가고 싶어서 큰아들에게 말을 걸었더니 뜻밖에도 순순하게 동행해 준다고 하는 거예요. 이제만 스물, 새파란 청춘의 아들과 함께 하는 영화 데이트. 뿌듯하기도 한 한편, 좀 신경이 쓰이기도 하면서 아들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오사카시의 번화가 우메다를 찾았답니다. 거리의 가로수 잎은 어느덧 색이 바래 노랗게 물들어 있더라고요. 거기다 아직 크리스마스까지는 한 달도 더 남은 11월 중순이건만 뭐가 그리 바쁜지 산타 복장을 한 곰인형이 선물꾸러미를 옆에 놓고 앉아 있는 거예요. 그 곰인형 산타는 표정도 없이 어쩐지 지쳐서 한숨 돌리고 있는 듯 보였어요. 보자니 산타 곰인형이 앉아 있는 아래 편에는 꽤 높은 계단이 늘어서 있네요.
어쩜 저 곰인형 산타는 계단을 올라오다 지쳐 저 자리에서 쉬고 있는 건가! 한 단 올라가도 또 한 단, 한 단 올라가도 또 한 단. 하긴 저도 거리를 다니다 보면 오래된 건물은 여기저기가 턱이며 계단이고, 경사로가 있다 해도 한참을 돌아가야 하거나, 휠체어를 밀고 올라가기에는 힘깨나 쓰는 장정 아니면 밀고 올라갈 엄두도 안 나는 급경사도 적지 않죠. 그때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애인은 또 얼마나 안절부절못하는지. 형식적으로만 존재할 뿐 그 내용은 부실하기 그지없는 것들이 세상 곳곳에 깔려 있는 사회의 위선적인 일면을 보게 되면 정말 한숨 쉬지 않을 수가 없죠.
전에도 일본 중앙부처에서 말로만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채웠다고 발표하고 실제로는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까지 그 숫자에 가산시켜 부풀렸다는 어처구니없는 실태를 전해드린 적이 있는데요. 그 중앙부처 중 재무성이 또 한심스러운 처사를 벌였더라고요. 10월 15일 자체 홈페이지에 게재된 모집 공고에 나온 응모자격 안에 ‘스스로의 힘으로 통근할 수 있고, 또한 활동보조 없이 업무수행이 가능한 자’라는 문장을 넣었어요. ‘스스로의 힘으로 통근할 수 있는 사람’, 즉 활동보조가 필요한 장애인이나 이동에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은 처음부터 응모할 자격조차 없다는 차별적인 내용인 거잖아요.
장애인고용을 촉진하기는커녕 중증장애인을 처음부터 배제하고 있으니. 그 처사에 대해 장애인단체를 중심으로 ‘특정 장애인을 배제하는 결격 조항이며 장애인 차별’이라는 항의가 빗발치게 되자 10월 24일 이 문장을 삭제했다고 해요. 또 그와 관련해 재무성 대신은 ‘장애인고용에 관한 의식이 낮고, 대응도 엉망이라는 말을 들을 만하다’고 지적하며, ‘직속 부하에게 주의를 주었고 재발 방지를 위하여 잘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뜨뜻미지근한 해명을 했고요.
그런데 그게 재무성뿐만이 아니었어요. 방위성에서도 그것과 비슷한 내용의 모집요강을 실었고, 그것을 철회하는 입장을 10월 26일 밝혔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런 차별적인 응모조건은 올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2012년부터 있었다고 하니 중앙정부에 만연한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거지요.
장애인고용자 수를 부풀렸던 ‘뻥치기’, 장애인고용제도를 소관하고 있는 부처인 후생노동성은 11월 13일 그 조사 결과와 책임자 처벌에 대한 입장을 밝혔는데요. 소관 기관인 당 후생성 직원은 아무도 처벌하지 않는다고 하여 또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행정에 대한 신뢰를 바닥까지 떨어뜨린 일이며 그런 불찰을 방치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관리와 운용에 대한 태만함에 대해 스스로에게는 아무 책임도 묻지 않고 아무도 처분하지 않는다니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처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제3자 위원회’에서 검증한 결과 각 정부 부처에 대해 제도를 철저히 알리지 못했다는 불찰은 지적 받았지만 오랜 기간 벌어져 온 그 책임을 개개인의 직원에게 묻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알아듣기 답답한 말을 했다는군요.
실제로 고용된 장애인 수는 발표된 숫자의 반수였고, 중앙부처의 27개 기관에서 무려 3,460명이나 부풀린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후생성 대신은 기자회견에서 ‘두 번 다시 이러한 사태가 생기지 않도록 장애인 고용을 전력을 다해 추진해 나가도록 차관과 직업안정국장에게 주의를 주고 지도를 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사태의 책임을 누구에게 묻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중요한 점은 책임을 자각하고, 재발방지나 법정고용률의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얼버무렸다고 하니, 실망만 쌓이게 되는 정부와 행정의 실태,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는 작금이네요.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 아들과 같이 식사를 하러 가스토라고 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렀어요. 그런데 주문을 받으러온 여성 점원을 보니 한쪽 다리가 좀 불편한 것 같더라고요. 주문을 받고 주방 쪽으로 걸어가는 그 점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다리가 불편한 저로서는 그 여성 점원, 일하기가 고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그 점원은 가게 안을 쉬지 않고 다니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어요. 다리가 불편하니까 홀에서 서빙을 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제 생각부터가 편견일까요? 나중에 화장실에 가면서 보니 주방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완만한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더군요.
아, 그래 손님들을 위해 설치하는 경사로만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설치해 놓은 낮은 경사로, 어쩌면 장애인과 더불어 일하는 일자리로 가는 길에 놓인 장벽을 없애는 일의 시작은 그런 완만한 경사로를 만들어 가는 것부터가 아닐까, 제도를 만드는 이들이 관리, 감독하는 역할의 우리 모두가 바로 직시해야 하는 것, 보이는 곳만 바꾸고, 보여주기 위한 숫자만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편견 없이 세상으로 디디고 다가갈 수 있도록 작고 완만한 경사로를 놓아가는 그 일부터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한꺼번에 어둠을 다 거두지는 못 하지만 한 등 한 등 등불이 모여 어둠을 밝히고 온기까지 나눠주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면서, 장애인도 더불어 일하는 사회로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로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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