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위한 힙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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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가을쯤이었던 것 같다. 힙합그룹 에픽하이의 정규 9집 앨범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이 나왔는데 정작 타이틀곡보다 ‘노땡큐’라는 곡이 더 유명해졌다. 피처링에 참여한 가수 사이먼 도미닉의 랩 가사가 장애 비하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최고의 인기 힙합 가수 중 한 명인 그는 “틈만 나면 한눈팔아 나는 5급 장애죠 / 나의 불행은 너의 행복 그래 맘껏 즐겨줘 / 망막 기증까진 오버야 날 그만 걱정해줘”라고 노래했고 곧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됐다.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의 신체적 특성이나 활동 모습을 조롱하는 듯한 표현을 문제삼았다.
힙합 속 만연한 장애인 혐오
한국 힙합은 마치 지금의 혐오 사회를 대표하는 음악 장르처럼 됐다. 여성은 물론,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창작자들의 인식과 태도는 여전히 성숙하지 못하며 온갖 편견과 차별을 드러내고 있다. 랩 가사에서 장애는 개인적 차원에서 완전하지 않은 현재의 상태를 빗대어 표현하거나, 자기비하와 멸시, 타인을 모독하는 뜻을 담은 증오 표현으로 주로 생산되고 소비된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조에 대한 비판이나 저항을 목적으로 한 비유적 도구로 등장하는가 하면, 기존 대중(문화)에 대한 부정적 평가나 비난을 함축한 상징물로도 나타난다. 또 때로는 힙합 랩의 독특한 시적 운율이나 주제 의식을 보다 인상 깊게 전하기 위한 보조 장치로 등장하기도 한다.
라비는 곡 ‘끄덕끄덕’에서 끝없이 성장할 본인의 미래를 빗대어 “저 멀리 봐 / 난쟁이들 따위는 / 잘 뵈지도 않고 싸그리 밟아 / 버리는 폼이 걸리버 life”라 비유했다. 이센스의 곡 ‘Tick Tock'에 참여한 김심야는 이유도 모른 채 성공을 위해 서두르는 본인을 두고 “머리는 돈 세고 가슴은 큰 가슴 돌기 수를 세지 / 난 정신분열증 내 안에 변태를 패지”라며 경멸한다. 2018년 한국 힙합 어워즈에서 ‘올해의 아티스트’상을 수상한 박재범은 ‘병신’이라는 곡에서 “병신들은 언급하기 싫어 / 병신한텐 대꾸하기 싫어 / 병신들은 생각하기 싫어 / 내 사람들과 행복하고 싶어”를 반복하며 본인의 ‘헤이러(hater)’들을 모독하고 공격한다.
또한 개리의 곡 ‘둥둥’에서 딥플로우는 힙합에 대한 진정성 없이 유명해지기만을 원하는 언더그라운드 세태를 두고 “그냥 한탕 하고픈 홍대는 이미 변기 / 언더그라운드 판 심봉사들의 내면 연기”라며 인기를 구걸하는 상징으로써 심봉사를 형상화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키비는 ‘화가, 나’라는 곡을 통해 “I love u Money 달콤한 허니 / 내 욕망을 싹 풀어주는 착한 벙어리”라며 지폐를 아무 말 없이 본인의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라며 언어장애를 빗대어 묘사한다. 에픽하이는 ‘낙화’라는 곡에서 가질 수 없는 꿈을 갈구한다는 주제를 표현 하며 장애 비하 표현을 대조적으로 일일이 배열한다. "내 꿈은 하늘을 걷는 난장이의 꿈 / 무지개를 손에 거머쥔 장님의 꿈 / ... 내 꿈은 크게 노래 부르는 벙어리의 꿈 / 내 꿈은 사랑 하는 사람의 작은 속삭임에 미소를 짓는 귀머거리의 꿈”
획일화된 장애인 속성 반영된 결과
‘장애(인)’가 없었다면 이 빈약하고 무비판적이며 불성실한 창작자들이 어떻게 음악을 하려고 했을까. 힙합 씬의 장애 혐오 표현은 집요하고, 공격적이며, 공개적이고, 거리낌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빈번하며 가볍다. 애초 ‘병신’과 같이 장애 비하 용어나 표현 그 자체가 가사 속에 들어있다는 점도 부적절하지만, 장애‘인’이라는 인격이 아니라 가사에 등장 하는 대다수는 어떤 미지의 존재가 지닌 열등한 속성만을 표현하고 있다. 솔직함을 빙자한 이 문화의 장애 혐오는 너무나 뿌리가 깊고 만연해 오히려 혐오라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이미 힙합과 동의어인 어떤 장르의 본질을 부인하는 것만 같을 정도다.
영국의 장애인 혐오 범죄에 관한 보고서(Disabled people's experiences of hate crime in the UK, 2008)에는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다르게 여기고 대하는 것이 너무나 만연하고 당연시되는 사회에서는 그것이 심지어 정당한 것이기 때문에 “장애차별주의가 혐오 범죄로 발전해도 그것이 혐오 범죄인지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대구대학교 손홍일 교수는 ‘2011 신영어영문학회 학술발표회 자료집’에서 “이런 불평등한 사회문화적 조건에서 비장애인들에 의해 생산되는 장애(인)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 적이거나 제한적이어서 실재하는 장애인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 심각한 오류를 수반하며, 상징적인 목적으로 장애를 소비하는 것이 장애를 지니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복합성을 지워버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힙합의 존재 방식은 유의미한가
다행히도 힙합 씬의 내재적 비판 가능성이 제로인 것은 아니다. “할 말 하지 말란 게 힙합 아니지만 / 너 막말할 때 잘 봐 어린 애들이 뭘 배우나?”, “너 진짜 멋있네 겁이나 다른 말은 못 해 / 약자만 후려 패는 게 리얼? 너 사상 진짜 멋있네” 국내 힙합 1세대인 MC메타와 언더그라운드 래퍼 최삼은 ‘쇼미더힙합’이라는 곡을 통해 힙합의 대중화와 함께 찾아온 무비판적인 상업화와 자극적 혐오 표현, 이익에 쫓겨 정치적 순치의 길을 택하는 래퍼들의 경향을 꼬집는다. 또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 래퍼로 규정하는 래퍼 슬릭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힙합 씬이 존재한다고 하면 나는 거기에 속해 있진 않은 것 같다”며 여성 차별과 혐오로 가득한 기존 힙합 문화의 남성 중심 서사를 규탄한다.
한국 사회에 장애인을 위한 힙합은 없다. 급속히 상업화되고 있는 한국 힙합 속에서 장애인은 철저히 비인격적이고 대상화된 상징이자 시적 보조 장치로써 기능해 왔을 뿐이다. 주류 문화로서의 힙합 음악 가사 속에 나타난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결국 지금 현실의 장애인을 둘러싼 사회적 권력관계의 반영이며, 동시에 차별적 문화를 확대재생산 하고 있는 혐오 사회 첨병이 된 힙합 래퍼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쯤에서 물어보자. 현대 대중문화에서 힙합이 가지는 영향력만큼이나 힙합 음악의 존재 방식은 얼마나 유의미해 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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