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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예술 활동, 우리 사회 시선은?

댄스 뮤지컬 <낙원을 꿈꾸다> 관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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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예술인으로 활동하는 장애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피아니스트, 성악가, 화가, 댄서, 배우, 심지어는 뮤지컬 배우까지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그들의 예술영역을 구축하며 끼와 열정을 발산하고 있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 사회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할까?

가장 가깝게는 우리사회의 시선이 어느 정도 투영될 수밖에 없는 TV나 언론의 시선들일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중매체가 조명하는 장애인의 예술 활동은 장애특성에 초점을 맞출 뿐, 그들의 예술적인 끼나 열정에 주목하지 않는다. 장애인에게 예술은 그저 재활의 한 방법으로 소개되거나 장애극복의 의미를 극대화하는 매개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특히 주변사람들(가족, 친구, 이웃 등)의 도움만을 강조하는, 그래서 정작 예술가로서 본능적인 열정과 자신의 노력의 결과에서 느끼는 희열, 그로인해 표출되는 예술가적 자질은 잘 드러나지 않은 채 장애극복이란 희망 전도사의 이미지만을 남기며, 시청자나 독자들의 잘못된 시선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오랜 시간동안 견고하게 다져진 이런 이미지들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도 매번 기대를 하게 되고 제자리임을 확인하며 실망감을 맛보고 있다. 그 위력 또한 대단하여 장애인의 문제를 주제로, 당사자가 만들고, 출연하는 작품들 속에서도 고스란히 담기게 되고, 예술인으로 활동하는 장애인들의 인터뷰 속에서도 드러난다. 이는 본인들에 관점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관점은 오랜 시간 여러 매체를 통해 학습되어진 측면이 더 크게 작용했을 수 있다.

    ▲ 뮤지컬 '낙원을 꿈꾸다' 포스터 ⓒ루멘 판토마임댄스씨어터 장애인의 꿈, 현실로 이뤄지기는 힘들다 스스로 외치는 <낙원을 꿈꾸다>

댄스 뮤지컬 <낙원을 꿈꾸다>는 자살기도에 여러 번 실패한 배우 길별은씨의 자전적 이야기를 블랙코미디로 각색한 작품이다. 그가 사후의 낙원을 꿈꾸며, 드라큘라가 운영하는 의상실에 취직하게 된다. 이 의상실의 마네킹들이 장애 때문에 이룰 수 없었던 그의 꿈들을 하나씩 재연해주며 마법처럼 이뤄준다는 이야기다.
처음 이 뮤지컬의 홈페이지에서 줄거리를 읽었을 때 솔직히 작품에 대한 기대보다는 실망이 앞섰다. 주인공을 맡은 길별은씨는 본인이 장애인이고,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임에도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나 관점들을 작품에서 고스란히 담아낼 것 같은 느낌이 왔기 때문이었다.

배우가 꿈이었던 주인공이 왜 현실이 아닌 사후라는 또 다른 세계에서 꿈을 이룬다는 설정일까? 그것도 마네킹들에 의해...
이런 설정이 관객의 공감을 얼마나 끌어낼 수 있으며, 설사 공감을 얻는다 해도 인식의 변화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혹시 잘못된 편견과 시선에 오히려 기름을 붓는 것은 아닐까. 여러 우려들이 밀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스토리에서의 우려스러움은 뮤지컬이 진행되면 될수록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극 구성의 치밀함도, 반전도 없었다. 꿈이 있음에도 그 꿈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현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외치며 좌절하는 주인공으로 그려져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었다.

특히 거의 마지막에 관중들에게 던지는 길별은씨의 대사는 그야말로 우리가 TV에서 흔히 보는 장애인 성공담의 인터뷰 가사나 영상을 Replay 시킨 듯했다.

‘저와 같은 장애인에게 희망을 주고,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배우가 되려 한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이 무대에 설 수 있었고, 갑자기 어머니가 그립다.’고 외친다. 그 장면을 통해 다시금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세월 여러 가지 경로로 다져진 우리의 인식들이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

분명 길별은씨는 그저 연기가 좋고, 무대에 섰을 때 설렘, 희열. 연기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희망의 전도사, 혹은 공익광고의 카피 같은 이런 대사를 날리며 배우로서 자신의 연기세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나 끼, 그리고 열정을 표현해내지 못한다.

결국 배우 길별은이 아닌 장애인 길별은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열거하며 현실에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쉬움을 넘어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장애인으로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기엔 정말 힘이 들고 거의 매일 투쟁에 가까운 삶을 살아내야 한다. 이 작품은 우리의 잘못된 편견에서 비롯된 차별은 차별을 받는 대상에겐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고, 그래서 현실 속 장애인들은 아직까지도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음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의도는 흐릿하게나마 드러나지만, 작품 속에서 좀 더 강하게 드러나는 온정적이고 시혜적인 시선을 보면서 현실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에는 무리였다는 생각이 줄곧 들었다.

사회의 문제를 제대로 풍자하려면 그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사회의 시선보다 훨씬 앞서 있어야 하고 직시하는 날카로움과 본질에의 접근, 그것을 바탕으로 극 구성에서 유머와 반전의 조화를 이루는 치밀함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어설픔 메시지만 허공에 둥둥 떠다닐 뿐, 제작진의 의도와는 다르게 관객들이 자신에게 익숙한 것들만 주어 담아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니면 별 감흥 없이 돌아가거나.

    ▲ 뮤지컬 '낙원을 꿈꾸다'의 한 장면 ⓒ루멘 판토마임댄스씨어터 내용은 글쎄, 하지만 연기력과 발산하려는 끼 열정 한껏 느낄 수 있던 공연

사실 배우 길별은과 20명의 지적장애가 있는 배우들의 연기가 보고 싶었고, 록음악과 조화를 이룬 댄스뮤지컬이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라는 점, 관람하고 나오면서도 이 부분들은 비교적 만족스러웠다(약간 지적장애가 있는 배우들의 역할이 애매모해 들러리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을 빼면......)

배우 길별은씨의 연기는 데뷔작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열연을 보여 줬다.
발성연습만 좀 더 하면 좋은 배우로 성장 할 수 있겠다는 끼와 재능을 볼 수 있어 반가웠다. 특히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여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감정전달력이 뛰어난 배우였다.

그리고 20명의 배우들의 춤사위는 관객들도 덩달아 몸을 들썩들썩 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느껴졌다. 록음악과 댄서들이 어우러져 한바탕 춤판을 벌이는 장면에서 20명의 댄서들의 에너지와 자유로움, 그리고 끼와 열정을 맘껏 발산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천부적인 춤꾼들의 모습이었다.

얼마 전, <빌리 엘리어트> 라는 영국영화를 다시 보게 됐다.
11살의 빌리는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 꿈을 위해 노력하고, 소년의 발레에 대한 끼와 열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감독 스티븐 달드리의 시선 때문이다. 가난해 다 해진 발레슈즈를 신고 춤을 추지만 행복한 빌리. 이 소년의 춤에 대한 열정과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예술적 가치카메라에 담아내며, 한 인간의 예술세계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메시지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발레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춤을 출 땐 어떤 느낌이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자신은 사라지고, 몸에서 불꽃이 일어나서 새처럼 날아갈 것 같은, 내 몸 전체가 변하는 것이 느껴져요. 그리고 전기가 오는 것 같아요”라고 .

지적장애가 있는 배우들의 춤사위를 통해서나 빌리의 답변처럼 예술 행위란 바로 본능에 가까운 열정을 뿜어내는 에너지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 뮤지컬 '낙원을 꿈꾸다' 중 은평천사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지적장애인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다 ⓒ김태현 기자
<낙원을 꿈꾸다>가 장애인, 비장애인을 떠나, 한 배우의 본질적인 끼나 열정에 좀 더 초점을 맞추었더라면, 배우 길별은씨 자신 역시 배우로서 예술가로서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극 속에서 느껴졌더라면 이 뮤지컬은 지금보다는 훨씬 빛이 났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장애인의 문화 활동의 시선은 편견으로 똘똘 뭉쳐 문화와의 소통을 가로막고, 장애인들이 바라보는 장애인들의 문화 활동 역시 이런 시선의 틀 속에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젠 장애인도 문화를 이끄는 활동의 한 주체로서 설수 있도록 보다 많은 기회와 장애인의 예술가적 끼를 발굴해내고, 알리는 문화운동이 좀 더 일상적으로 전개되었으면 한다.
그래야 오랜 세월 겹겹이 쌓여진 사회의 잘못된 인식들도 차근차근 허물어지고, 우리 사회에서도 휠체어를 탄 비보이들의 춤을 보며 환호하고, 장애를 가진 배우나 예술가가 특별한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사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누구나 문화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공연이나 영상문화를 즐길 수 있는, 언젠가 찾아올 그날을 꿈꿔본다.
작성자백수정 서울YMCA어린이영상문화연구회미디어교육팀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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