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에서, 눈으로 보는 전시회 목소리로 듣는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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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서둘러 지나가는 건 아쉬움이 많이 남죠. 별안간 추워져 가을의 자취를 느낄 새도 없이 겨울이 돼버린 것 같은 요즘, 싸늘한 공기에 얇고 파아란 하늘 빛이 금방 깨져버릴 듯한 지난 토요일, 교토로 가을나들이를 갔어요. 교토에는 절이나 신사, 문화유적이 많아 언제 가도 좋다고 입을 모으지요. 하지만 사람들이 많아 여유 있게 보기는 어렵다니까, 항상 생각만 하고 가지는 못했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교토국립박물관에서 개관 120주년 특별 전시회가 열린다고 하길래 꼭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도착해 보니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어요. 그냥 기다리다가는 한참 걸릴 것 같았는데 휠체어를 타고 있는 저를 보고, 경비원이 제쪽으로 오더니 바로 안으로 들어가라고 안내해 주는 거예요. 국립박물관니까 입장료도 무료이고, 입장 시에도 기다리지 않게 안내해 주는 친절, 참 감사하네요. 관내는 사람들도 꽉 차 있어 전시물 앞에 가기까지는 좀 기다려야 했고, 뒤에 서있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생각만큼 천천히 볼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 이 기간에 전시되는 국보 중 가장 눈길을 끈다는 금으로 만들어진 도장, 중국 ‘한나라 때 왜국 왕에게’라는 게 써 있다고 하는 도장이라는데, 이 “금인”이라는 걸 보겠다는 사람들의 줄은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았어요. 진짜다 가짜다 의견이 많았다고 하지만 2천 년도 더 된 도장이라니 정말 대단한 거죠. 저희는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갔어요.
교토국립박물관에서는 지금까지 1969년, 1976년 두 차례 ‘일본 국보전’을 열었는데 이번 41년만에 대망의 세 번째 ‘국보전’을 개최하게 됐대요. 이번 전시회는 국보로 지정된 미술공예품 885점 중 4분의 1에 해당되는 약 200점의 국보를 크게 네 기간으로 나눠 대거 공개하는데, 보통 때라면 몇 십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귀중한 국보를, 한 자리에 이만큼 많이 모아 전시한다는 것이 좀처럼 없는 일이니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것 같았어요. 물론 저도 그 중에 끼어 있고요. 특히 국보라는 명칭을 120년 전인 1897년에 처음 사용하게 됐고, ‘교토국립박물관’도 바로 그 해 개관했기 때문에, ‘국보’ 탄생과 ‘교토국립박물관’ 탄생 120주년을 동시에 기념해 대대적으로 개최하게 됐다고 선전하더군요. 일본은 고대부터 외래의 문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일본 나름의 미의식을 닦아왔고 그것을 일본 고유의 문화로 키워왔다고 하죠. 그 고대 문화의 전래에는 우리나라의 역할도 컸고요.
전시회를 보면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떠나, 문화재를 통해 참으로 유구한 인류의 지혜와 역사를 보는 것 같아 저절로 고개가 설레설레 저어지더라고요. 하나 하나에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이라는 시간을 넘는 드라마가 있음이오, 시간은 멈출 수 없지만 하나하나에 그 때의 시간을 재생하는 타임머신이 있는 것 같았어요.
하나의 문화재를 통해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볼 수 있는 거죠. 일본 고대 죠몽시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의 문화재. 기원전 3천 년 나가노에서 발견된 토우의 원시적이지만 세련된 모습하며, 1,100년대에 만들어진 오사카 금강사의 거대불상 대일여래좌상, 그것은 올해 새로 국보로 지정됐다는데 집 한 채만한 그 불상 앞에 서니 입이 벌어지더라고요.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조각가의 기량이 놀라웠어요. 그밖에도 고고학적인 문건, 자료. 조각, 회화, 서적, 염색, 금공예품, 옻공예품, 도자기 등 12개의 장르로 나뉘어 전시돼 있었는데, 저도 들어본 적이 있거나 텔레비전을 통해 본 적이 있는 유명한 그림,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폐관시간이 됐지만 집으로 돌아가기가 아쉽더라고요.
복잡한 관내에서는 저 말고도 휠체어를 탄 관람객을 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이런 전시회를 접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장애는 시각장애겠죠. 그런데 얼마 전 시각장애인도 함께 관람하는 미술관에 대한 뉴스를 봤어요. 눈으로 볼 수 없는데 어떻게 관람을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교토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관람하는 이벤트를 열었다더군요. 보통은 색으로 그려 눈으로 보는 회화(繪畵)를, 안내하는 사람의 목소리로 그려 회화(會話)하면서 관람한다는 겁니다. 참가한 시각장애인들은 중도에 시력을 잃은 분들이 많아 설명을 들으면서 머리 속으로 이미지를 그려 보나 봐요. 안내하는 사람이 그림을 소개하고 설명해 주면 질문을 하기도 하면서 그림에 대해 이해를 나눈다고요. 참가한 시각장애인은 미술작품도 감상하고 안내해 주시는 분과 교류도 하고 정말 재미있게 관람을 즐기고 있다고 소감을 말하더라고요.
특히 안내해 주시는 분들은 사전에 그림 설명에 대해 학습을 하고,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는 노하우를 연수한다고 하는데, 그런 활동을 하는 모임 중, ‘에블 아트 쟈팬(ABLE ART JAPAN)’이라는 사이트가 있어서 소개된 글을 보니, “시각 장애가 있는 사람과 함께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본다는 걸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냥 같이 따라만 가면 되는 쉬운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설명하고 안내한다는 것은 평소 생활에서는 좀처럼 알아 차릴 수 없는 많은 것들이 포함돼 있답니다. 저희들은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즐겁게 예술을 감상하기 위해서, 어떤 점을 조심하고 어떻게 하면 좋은지, 그 기술에 대해 배우며 새로운 감상의 가능성도 찾아보고 싶습니다.” 예술작품이라는 것이 참으로 심오한 것이니 그것을 감상한다는 것, 전달한다는 것 또한 간단한 일은 아니겠죠. “삶, 생각이나 사고 방식의 설명"이 될 테니까 말로 작품을 표현한다는 것 또한 하나의 예술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구한 역사의 작품을 보는 감동과 감사, 그리고 그런 감동을 더불어 나누려고 하는 사람들의 자세와 노력을 느끼며, 참으로 풍요로운 늦가을을 맛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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