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가 아니라 어린이용 휠체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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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아, 뽑혔네!” 우편물을 받아보니, 얼마 전에 신청했던 영화입장권이 당첨됐다는 편지와 더불어 초대권이 들어 있어요. 장소는 ‘그랑프론트 오사카’, 오사카시의 북쪽에 위치해서 우메다 키타신치라고 불리는 최대의 번화가인데 좀처럼 갈 기회가 없지만 한국문화원에서 주최하는 한국영화제가 그 곳에서 개최된다는 광고를 우연히 보고 제가 신청을 했었죠.
한 사람이 영화 한 편에 입장권 2장씩 신청할 수 있었는데 이왕 하는 거 일요일에 상영하는 3편의 영화를 다 신청했어요. 그런데 웬일! 그 중에 두 편이 뽑혀 4장의 초대권을 받았습니다. 응모가 많지 않았나? 하지만 초대권을 받는다는 건 은근히 기분 좋은 일이에요. 예정이 있다는 것, 그리고 외출을 준비한다는 것,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지라도 약간의 설렘과 기다림으로 재미가 나지요.
첫 번째 영화 상영시간은 10시 30분부터였어요. 대략 한 시간 정도 거리기는 한데 일요일 아침 늦장을 부려 좀 서둘러야 했어요. 저는 휠체어를 타고 남편은 휠체어를 밀고. 전철역에 도착, 한 번만 타고 가면 되지만 승차장이나 개찰구까지 이동할 때 엘리베이터를 몇 번씩 갈아타야 해요. 지금은 대부분의 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어 일단은 접근성에 큰 문제는 없지만, 저라는 사람의 욕구가 조금씩 커져가는 걸까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멀리 돌아가야 하는 것, 그리고 기껏 기다려도 휠체어 한 대가 겨우 들어가는 좁은 엘리베이터이기에 양보해야 한다는 것, 휠체어뿐만 아니라 커다란 여행 가방을 든 사람이며 고령자며 다양한 분들이 이용하니까 순서를 많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게 느껴지고 인내심이 줄어들어요. 그 날도 꽤 천천히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바로 타려고 엘리베이터 문 앞에 바짝 다가가 기다렸는데 문이 열리자 안에는 유모차가 두 대 타고 있었어요. 그런데 좁은 공간이니까 탈 때도 내릴 때도 조작하는 데 시간이 자꾸 흘러가잖아요.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더 서두르다 보면 옆 유모차의 바퀴에도 부딪히고 시간은 점점 지체되고….
기다리는 사이 유모차를 자세히 보니, 한 대의 손잡이 쪽에 동그랗고 귀여운 마크가 달려 있고, 어린이휠체어라고 써 있었어요. ‘그냥 유모차인 줄 알았더니, 장애아의 휠체어였구나’ 외출할 때 휠체어가 눈에 띄면 무의식적으로 주의 깊게 보게 되지만 유모차를 보고 특별히 신경을 쓴 적은 없었는데, 아차 싶었어요.
그 마크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았답니다. ‘사단법인 미나 패밀리(mina family)’라는 단체에서 만들었더군요. 최근에 만들어진 이 단체는 오사카에 살고 있는 지체부자유 정신발달장애아(6세)의 엄마인 혼다 가오리 씨라는 여성이 설립한 곳으로, ‘장애나 병을 가지고 있는 아이와 그 가족에게 행복을’이라는 머리글과 함께 병을 앓거나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가정의 가족들을 위해서 인식계발활동이나 상품개발을 하고 있다고 소개돼 있었어요.
육아란 장애가 있든 없든 그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고 고민하면서 울고 웃으며 같이 자라나는 것이겠지만,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키우기란 그 고충이 몇 배나 훨씬 더 클 거라는 걸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 한편, 장애아의 표정 하나 하나에 어리는 사랑스러움과 소중함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고,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힘든 순간이 찾아와도 스스로를 다독이고 격려하며 힘을 내는 거겠지요. 제도가 나아지고 있다고 해도 아직 멀었고, 공적인 기관에서는 손을 대기 어려운 자잘한 문제들이 그 당사자와 가족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문제가 됩니다.
장애아를 키우기 위해서 이런 것이 있으면 좋은데, 이런 물건이 꼭 필요한데, 이런 배려가 있으면 좋은데…, 눈치 보고 신경 써도 말은 안 통하고, 정부나 행정기관의 제도에 모순이 있어도 아무 소리도 못 하고 참을 수밖에 없는 답답한 심정. 온갖 물건으로 차고 넘치는 세상이지만 정작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절실한 물건들은 안 팔고 있다고요. 그런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 같은 입장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과 문제들을 하나하나 마주보고 풀어나가고자 단체를 만들었고, 그 중심 활동으로 ‘어린이 휠체어’라는 마크를 고안해 알리게 됐다고 합니다. 병원이나 시설 통원할 때 아이를 휠체어에 태우고 외출하지만 유모차와 같은 모습이니까 어린이용 휠체어라는 인식이 낮아 오해를 받기도 하고, 도움을 받고 싶을 때 받지 못하는 일이 많다고 해요.
“유모차에 꼭 묶어놓아 아이가 답답하겠네요”
“다 큰 아이를 왜 유모차에 태우고 다녀요?”
어린이용 휠체어는 얼핏 보기에는 보통 유모차처럼 보이지만 장애아의 장애나 성장에 맞춰 개별적으로 만들어지기에 무거운 것은 90kg까지, 또 호흡기나 정밀기기, 의료기기를 싣고 옮기기도 해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큰데 그럴 때마다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지치고, 무심결에 건네는 한 마디에 마음도 상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은 어린이용 휠체어 마크지만 그것을 통해 사회에 알려지고 이해가 깊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하네요.
“유모차를 접어 달라고 하지 마세요. 알아주세요, 어린이용 휠체어라는 걸!”
장애아 육아에 필요한 물건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바로 알 수 있도록, 같은 입장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끼리 이야기하고 웃으며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도록, 그리고 이상한 것은 이상하다고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한 걸음 내미는 그 용기에 새로운 시작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린이용 휠체어를 타고 있던 아이와 엄마의 외출이 버겁지 않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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