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만큼만 더 마음의 품을 넓혀 보면
본문
사진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68147320@N02/ |
지난주에도 대형 태풍이 일본 열도를 남에서 북으로 횡단하고 지나갔지만, 어김없이 가을은 찾아오는지 하늘이 파랗네요. 같이 한글 공부하는 일본여성이 외국에서 살다 잠시 온 친구와 식사 한번 하러 가고 싶은데 어디 잘하는 집 없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맛집이 없을까 인터넷에서 찾아보던 중에 우연히 기사를 읽게 됐습니다.
소개된 내용은 9월 16일, 도쿄 롯본기의 한 멋진 레스토랑에서 ‘주문을 잘못 받는 음식점’이라는 이름의 가게가 3일간 문을 열었다는 건데요. 그 음식점인즉, 음식을 주문 받고, 나르고, 차리고, 치우는 사람들이 모두 ‘치매’가 있는 사람들 20여 명이라는 것입니다. 롯본기라면 일본 수도 도쿄에서도 아주 고급스러운 지역으로 알려져 있고 일류 음식점이며, 최고급 패션의 가게들이 모여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그 곳에서 유명한 레스토랑을 3일간 빌려 짧은 기간이지만 특별하고 새로운 레스토랑을 차렸다는 거예요.
처음 이 가게를 제안한 발기인은 38세의 텔레비전 디렉터 오쿠니 씨로, 치매를 앓고 있는 고령자들을 취재하다가 ‘좀 실패를 하더라고 그대로 받아들이며, 조금 더 이해해주고 포용해줄 줄 아는 관용적인 사회가 된다면 치매가 있더라도 사회 활동을 하며 활기차게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대요. 그 후 그것을 구체화하고자 치매가 있는 사람들의 활동보조 경험이 많은 개호복지사 와다(61세) 씨 등 전문가와 프로 요리사, 봉사자 등이 모여 실행위원회를 꾸리고 계획을 세워 드디어 실행하게 됐다고 합니다.
오픈 당일, 와다 씨가 관계하고 있는 그룹홈에 다니는 분들이 주문을 받는 스태프로 일했는데, 치매가 있는 사람들이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날라다 주니까 큰 실수는 없을까 위험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서지만, 실제로 가게에서는 순간순간 곳곳에서 아주 세심한 배려가 엿보여 이 사람들의 평소 행동을 잘 알고 있는 스태프(복지시설의 직원 등)가 곤란한 일이 생기거나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항상 눈길을 주고 살피고 있었으며, 주문이 잘못되어도 심각한 문제가 없도록 가게 앞에서 손님들에게 미리 알레르기 식품 등에 대해서 확인하고 대처하는 등 꼼꼼한 사전준비가 있었다고 합니다.
요리는 뛰어난 프로 요리사들이 봉사로 실력을 발휘해 함박스테이크나 오무라이스 등 세 가지 요리를 선보였고, 식사 중에는 피아노 연주도 곁들여지는데 이 피아노 연주자 또한 4년 전 청년치매 판정을 받아 치매가 진행되면서 악보를 볼 수 없게 되고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됐습니다. 자신감을 잃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지만 가족들의 지원으로 피아노 건반에 여러 가지 표시를 하는 등 방법을 찾아 조금씩 다시 연주할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물을 몇 차례나 갖다 준다던가, 뜨거운 커피에 빨대를 꽂아서 갖다 준다던가, 주문을 받으러 와서는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하는 등 다른 식당에서는 볼 수 없는 고만고만한 실수가 많이 있었지만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써낸 설문지에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대요. 한 젊은 손님은 ‘손님도, 일하는 사람도 모두 밝게 웃고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고, 자신도 위로 받는 편안한 시간이었다’고 했고, 90%의 손님이 ‘다시 오고 싶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작은 잘못, 조그만 실수’를 그냥 받아들이고 즐겨보려는 마음으로 가게를 찾자는 것이 이 레스토랑의 컨셉트로, 치매의 정도와는 상관없이 사회와의 관계가 점점 멀어져 고립되어 가는 사람들도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실험적이기는 하지만 필요한 지원의 포인트를 잘 정리해 시스템을 만들어 보자는 운영자 측의 의도가 주목할 만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리 간단한 시도는 아니었어요. ‘주문을 잘못 받는 음식점’이라는 이 가게의 문을 열기까지는 아주 세심하고 철저한 노력이 있었더라고요. 사전준비로 6월초 장소를 빌려 두 차례 예비 오픈을 했었고, 페이스북을 통한 홍보, 이벤트 개최,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기 위해 유명한 가게의 요리사들에게 협조를 요청하고 협력을 받아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자금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터넷을 통한 클라우드 펀딩 등으로 800만 엔(약 8,000만 원)의 자금을 모아냈다고 합니다. 유니폼이나 앞치마, 식기 등의 디자인도 새롭게 고안해 만들었는데 어둡고 획일적인 이미지일 수 있는 ‘복지’라는 말을 밝고 예쁜 디자인의 힘을 살려 쓰기 쉽고, 따뜻함이 느껴지고, 뭔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두근거림’까지 신선함으로 곁들여지게 하는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 보려는 ‘주문을 잘못 받는 음식점’, 법률이나 제도를 바꾸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의식 속의 굳어진 기준을 유연하게 풀어 조금 너그러워짐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많지 않을까 하는 다정한 제안이었습니다.
치매뿐만 아니라 지적장애인, 발달장애인들에 대한 강한 선입견에서부터 도와주는 사람, 도움을 받는 사람이라는 관계가 자칫하면 형식적인 틀에 빠지기 쉽죠.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자유를 빼앗긴 관리의 대상이 돼 버리고, 한편 도와주는 사람은 장애인의 가족이나 행정담당자로부터 ‘사고가 벌어지면 안 된다’는 안전의식에만 사로잡혀 사실은 관리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하지만 ‘조금은 틀려도 되잖아’라는 너그러움, 실수를 품어주는 자세가 있다면 그 실수가 예상치 못한 웃음을 자아내는 요소가 된다는 걸 경험한 분들도 많으실 거예요. 그 누구라도 실수할 수 있고 언젠가는 도움을 받는 입장이 된다는 것,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하며 스스로도 너그러운 세상에 살 수 있도록 닫혀진 마음의 품을 한 뼘만 더 넓혀봤으면 합니다.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