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여러 가지 색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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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힘든 하루를 보내셨는지요. 만일 매일 매일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는 아마도 지독한 우울증에서 최근 해방된 사람이거나 아니면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지나친 편견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세상이 결코 녹록하지 않고 불확실하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지요. 사는게 힘들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고민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저버리는 행동을 합니다. 우리나라는 OECD 자살률 1위가 된 지 오래입니다.
오늘 소개할 일본 애니메이션 주인공도 자살을 시도한 중학교 3학년 학생입니다. 어느 날 세상이 끝장났고 자신의 인생이 엉망으로 뒤엉켜 버렸다고 생각한 ‘마코토’가 다른 사람의 영혼을 빌려 환생하면서 영화는 시작합니다. ‘짱구는 못말려’ 감독이기도 한 하라 케이이치의 ‘컬러풀(Colorful, 2010)’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무표정한 얼굴의 사자들이 저승세계로 가는 길목에 유령이 돼 늘어서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안내자 ‘프라프라’의 도움으로 마코토의 몸에 환생한 주인공은 6개월간의 제한된 시간동안 자신이 저지른 죄를 기억해내야만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생한 주인공은 그다지 신나 보이지 않습니다. 빨리 6개월이 지나 저승에 가고 싶다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는 무심하게 마코토의 집에서 생활합니다. 그러나 왜 마코토가 자살하려고 했는지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제3자의 입장에서 어느 가족을 들여다보면, 평범하고 화목해 보이기 때문일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공은 점차 마코토의 주변이 실타래가 엉켜있듯이 복잡함을 알게 됩니다. 무능력한 아버지, 플라맹고 춤 선생과 바람난 어머니, 자신을 벌레 취급하는 형, 온갖 성희롱과 집단폭력에 시달리는 학교생활, 짝사랑하는 여학생의 원조교제 등으로 마코토의 삶은 얼룩져 있었던 것이지요. 예전의 소심했던 마코토가 활발한 사람으로 바뀌어가면서 마코토의 타고난 재능이 미술임을 알게 된 주인공에게 묘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말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듯이 보이는 마코토의 그림 앞에만 서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이지요. 소심했던 마코토를 유일하게 동경하던 사노 쇼코가 다가옵니다.
“그건 하늘을 향한 것이 아니라 바다 속에서 나가려는 말의 몸부림이야. 나는 네가 변한 것이 이상해. 그건 진정한 네가 아니야.” 쇼코를 무시하고 경멸하는 마코토에게 지극히 평범한 소년 사오토메가 다가옵니다. “비가 오네. 우산같이 쓰지 않을래.” 또래에게 존중받는 첫 경험임을 나중에 알게 된 마코토는 그와 친구가 됩니다. 그러나 의욕에 차 있던 주인공에게도 마코토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습니다. 가족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고 무기력한 인생에 지쳐있을 때, 사오토메가 옛날 기차선로를 따라가는 놀이를 하자고 합니다. 도로와 집으로 포장되어 흔적조차 사라지고 이정표 몇 개만이 놓여 있는 옛 철도길을 따라가면서 주인공의 마음에 동요가 일어납니다. 이 세상에는 쓸모없는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어딘가에 있든, 시간이 어떻게 흐르든 누군가가 그것을 찾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코토는 마음이 밝아집니다. 스스로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짝사랑 소녀에게 주인공이 말하지요.
그래 모두 똑같아. 인간은 한 가지 색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색을 가지고 있어.
미워하던 어머니의 얼굴을 멀리서 지켜보던 주인공은 잊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마코토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깨달았습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어머니의 약을 자신이 먹고 스스로를 죽인 죄를 알게 된 것이지요. 천사를 떠나보내며 6개월간 빌린 육체가 바로 마코토 자신이었다는 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이제 마코토의 삶이 새롭게 시작하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에게 생긴 것은 자존감입니다.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존중하는 마음. 나 안의 여러 가지 다양함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뿐입니다.
내 안의 또 다른 나, 타자를 인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자신의 삶 속에 놓인 컬러풀한 타자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나를 존중하는 만큼 타인을 존중할 수 있고,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상대방도 같이 느끼고 생각한다는 상호주관성이 바로 공감의 시작입니다. 이제 넉넉한 가을바람이 늘 우리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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