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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민의 테마에세이] 그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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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년 여름. 청소년을 위한 소설 작품을 청탁받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는 전제와 함께, 우리의 시선으로 우리 청소년의 내면을 활자화시키자는 게 출판사의 취지였다. 실상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책은 대부분 번역물 일색이었고, 책 한 구절만으로도 인생의 좌표가 뒤바뀔 감수성이 그들에게 권장되는 도서 목록은 어른의것도 아닌 아이의 것도 아닌 어중간한 내용이 전부였다. 그야말로 독서에 관한 한 ‘낀세대’라고 나 할까?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3개월 정도를 현장 조사에 나섰다. 대학로와 신촌을 오가며 밤새도록 그들의 눈높이를 관찰했다. 마로니에공원 뒷골목에서, 홍대부근의 어두운 카페에서, 신천동과 신림동의 집합지에서 그들의 내면에 다가서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의미가 나쁘든 좋든 간에 왜 그들이 그 시간까지 거리에 나와 있으며, 그들의 생각이 무엇 때문에 특정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지를 캐내기 위해 꼬박 100여일을 소비했던 것이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이해할 수 없음’이 전부였다는 걸 솔직하게 밝혀둔다. 똑같은 청소년기를 겪었으면서도 ‘80년대의 대학과 시대적 상황, 군 복무, 사회현실에 부딪치면서 동년배와 윗세대만을 상대하며 숨가쁘게 지내오는 동안, 내 시선은 이미 청소년들의 눈높이를 이해하기엔 너무나 현실의 틀에 고정화되어 버린 탓이었다.

  대안은 한 가지, 직접 체험했던 나의 청소년기를 추적하는 일이었다. 친구들과 동료, 선후배들을 만나 ‘당신의 청소년기는 어땠는가’를 묻는 것으로 또 다른 몇 개월이 지나갔다. 오래 전의 내 모든 일기장을 파헤치며 한숨과 향수를 들이마시고 내뱉는 동안 작품은 완성이 됐다. <내 안의 자유>의 주인공 ‘김수빈’은 그렇게 태어났다. 시대적 배경이 작품 속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대학 88학번 정도의 나이로 설정했던 그의 청소년기는 80년대를 배경으로 흘러가게끔 기록한 것이었다.

  출간이 되고 다음 작품을 기획하는 기간 내내, 나는 나의 눈높이를 다시 청소년에서 현재로 되돌려야 하는, 생각보다 힘겨운 싸움을 끙끙거리며 혼자 앓아야 했다. 다른 세대를 이해할 만치의 눈높이를 갖는다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일임을 나는 체험으로 실감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수준 이상 다가설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느낀 진지한 체험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간 지금, 나는 다시 그들의 시선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수빈이가 다하지 못한 절반의 얘기를 보다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새 작품으로 기록하고자, 지난 번과는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세계와 마주대하고 있다. ‘나’의 시선을 아예 배제하고 그들과 동등한 관점에서 무엇에 아파하며, 그들이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해결책이 마련되는지를 그들의 입장으로 정리하는 방법이다.

  중학교 3학년인 어느 친구는 왜 커피숍에 청소년 출입이 금지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친구들과 만나서 갈 곳이 없다.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게임방, 어른들이 만들어 주었다고 생색내는 마로니에공원 등을 제외하면 친구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눌 여건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겉도는 얘기만으로 길거리를 배회할 수밖에 없으며, 자연스레 연예인 등의 화젯거리로 소일하는게 불가피하다고 한다.

  실상 나의 청소년기도 그랬다는 게 불현듯 떠올랐다. 돌이켜 보면 지금과 다를 게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마저 없던 시절, 우리 역시 길거리에서 사춘기를 소비하고 앓으며 정신적인 방황만큼 발걸음의 방황도 거듭하기만 했다. 가끔씩 대학생이나 재수생을 가장해서 구석진 카페나 맥주집에 기어드는 행위 또한 지금의 그들과 같았다.

  시내의 대형서점이나 종교적 행사가 그나마 해방구였다고 할까. 청소년 문제를 소리높여 거론하는 기성세대 역시, 자신의 청소년기에도 똑같은 과정을 겪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망각하고 달려드는 게 현실이다. 자기만큼은 순리대로의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듯이. 어느 날 나는 수업을 마친 청소년들로 북적대는 골목에 들어섰다. 아무리 분장과 변장을 한다 해도 중고생임이 확연한 그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남녀 함께 어울리면서 번화한 거리를 오가다가 소주방으로, 호프집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을 따라 호프집에 들어서니 뜻밖에 주인의 눈치가 따가웠다. 청소년들로 가득 채워진 술집에 너처럼 나이 먹은 놈이 뭣하러 들어왔냐는 식의 눈치..., 어색하게 찾아간 그 옆집도 마찬가지였고, 길가에 가득한 학생들은 자기만의 해방구에 침입한 이방인을 계속 힐끔거리기만 했다.

  ‘98년 11월 1일에 둘러보았던 인천 인현동의 모습이었다. 불과 이틀 전 130여 명의 참담한 사상자를 낸 호프집 화재 현장이 저만치에 있는데도, 그들은 아랑곳없이 자신들의 하루를 이어가고 있었다. 직장인은커녕 대학생마저 찾아보기 힘든 그 골목을 벗어났을 때, 골목 입구에서 나를 반긴 것은 ’청소년 출입금지 지역‘이라는 안내판뿐이었다.

  나는 이사건을 양비론(兩非論)으로 생각한다. 모든 게 금지된 사항이었다. 가서는 안 되는 곳이었고 팔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으며, 그렇게 수리하면 안 되는 공사였고 그렇게 지어서는 안되는 건축물이었다. 그런데도 가고 있고 팔고 있으며,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19세 이하’가 아니라 ‘19세 이상 출입금자’라 표현해야 할 유흥업소가 너무도 많은 그 곳. 단지 ‘재수없게’ 그 건물이 불 타 버렸다는 것 이상의 느낌도 없이. 그 화재 사건은 우리의 기억에서 조만간에 잊혀져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씨랜드 화재가 언제였고 성수대교와 백화점이 붕괴된 게 언제였는지도 가물가물해지는 요즘, 우리는 당사자가 아니면 상관없다는 타성에 젖은 채 오늘 하루를 곡예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 그들의 높이로 맞춰 추리해 보면 의외로 쉽게 답이 나온다. 공부하라는 말은 잔소리일 뿐이고 도서관에 앉아 있기엔 너무도 뜨거운 젊음이다. 아직은 자기 인생을 설계하고 반성할 위치에 이르지 못한 그들에겐 항상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문화, 색다른 환경, 화끈한 친구와 멋진 이성, 수많은 호기심의 해결, 불붙기 시작한 성적(性的) 관심의 해소 등, 그들에게 주어진 현실은 너무도 벅차게 하루하루를 탈바꿈시키고 있다.

  그들의 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기성세대들은 무엇을 했던가. 청소년들은 어디에 있어야 하며 친구들은 어떻게 사귀고 어느 곳에서 만나야 하며, 이성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인생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학교 교실에서만 나누어야 하는가?

  집안에서 공부나 하라는 말은 더 이상 말 자체가 무용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들의 고민과 갈등 모두는 우리 자신이 십여 년, 이십여 년 전에 겪었던 아픔과 동일함을 알 수 있다. 달라진 것은 세상이 보다 화려해지고 다양해지며 가벼워졌다는 것, 그것 뿐이다.

  이젠 그들의 눈높이에서 시작하자. 잔소리 이전에 그들의 입장에서 본질적인 탐구를 시작해야만 한다. 모든 것은 ‘나만의 눈높이 잣대’로 바라보던 과오에서 비롯되었다. 붕괴될 걸 미리 알고 자시니들만 대피한 뒤 백화점 영업을 계속하도록 지시했던 그 인간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다리의 붕괴 조짐을 알면서도 시민들을 오가게 만든 책임자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있었다면, 그 매장의 고객이 나의 가족이 차에 탔던 사람이 우리의 아들 딸이란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었다면, 백화점이 붕괴되더라도 참사는 적었을 것이고 허리 잘린 흉물은 생길 리도 없는 일들이었다.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 보자. ‘1호선 서울역 ․ 시청 ․ 종로3가 ․ 동대문’이라고 당당히 밝혀 놓은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행정당국의 눈높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장애우들은 종각역에 내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종로 5가나 신설역, 제기역 등지에 존재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 사랑하는 나의 아내가, 존경하는 부모님이나 은사님이 휠체어에 의지하고 계시다면 기껏 몇 개 역에만 휠체어 리프트 시설을 설치해 놓고, 그나마 고장이 난다 해도 수수방관하고 있었을까?

  자기만 생각하고 남의 처지 따위는 망각해 버리는 사고방식이 계속된다면, 21세기는커녕 22세기에 이르러도 본질적인 해결책은 생겨 날 수가 없다. 21세기를 준비한다 뭐다 하며 축제 분위리글 만들려는 이 때, 차라리 그 자금을 모아 리프트 시설 확충과 청소년을 위한 열린 공간을 만들어주는게 보다 효과적인 대안책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귀여운 아들 딸들이 몇 년 후 또 다시 호프집에서 참변을 당해야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까. 십 년 후엔 지하철 출입구에 서서 장애우들이 한숨짓는 일 따위는 확실하게 사라질 거라고 누가 감히 주장할 수 있는가.

  눈높이를 사로에게 맞춰 보면 금방 해답이 보인다. 우리 모두는 자기 눈높이만을 따지고 있다가 오히려 자기 먼저 희생자가 되진 않았는지, 이런 흉흉한 시절에는 앞뒤와 주변을 돌아보며 진지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글/ 채지민

시대문학 시부 및 자우문학 소설부 등단. 제 25회 삼성문학상 수상 시집 <아직도 너룰 부르고 있는 것은 Ⅰ ․ Ⅱ>, 장편소설 <그대에게 가는길><이별하기에 슬픈시간><내안의 자유>등이 있음

 

작성자채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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