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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에서 피어난 노래

[서기자의 변죽 때리는 소리] 가수 연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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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건국대 새천년기념관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특별상에… 연. 영. 석.” 무대 위 외침이 울려 퍼진다. 선뜻 무대 위로 뛰쳐나가는 사람이 없다. 어색한 침묵. “혹시 연영석씨 이 자리에 안 오셨나요?”

객석 저 뒷자리에서 무대를 향해 황급히 내달리는 그림자가 보인다. 청바지와 수수한 점퍼 차림의 그가 무대 위에 오르자 환한 조명이 얼굴을 쫓는다. 당황해하는 낯빛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트로피를 건네받은 뒤에도 얼떨떨한 기운이 가시지 않은 듯한 얼굴로 마이크 앞에 선다.

“끊임없이 창작 욕구를 만들어주는 억울하고 어두운 사회에 감사합니다. 사회가 어두울수록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처음 표정과 달리 또렷하고 힘 있는 목소리다. 고개를 꾸벅 하고는 황급히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향해 박수가 쏟아진다. 손뼉 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의 노래만큼이나 묵직한 소리다.

            1989년 3월 홍익대 교정
조소과에 입학했다.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다. 세살 땐가, 네살 땐가, 다 타고 남은 성냥으로 방 벽지에 그림을 그리다 혼나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생 땐 그림 잘 그린다고 상도 받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자식이 미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잘하는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시골서 소판 돈을 훔쳐 상경, 근근이 세탁소를 꾸리며 먹고 살기도 빠듯했다. 미술학원 다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고등학교 2학년이 돼서야 학원에 등록할 수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4수’만에 꿈을 이뤘다. 대학에선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이 한창이었다. ‘깎으면 좋지, 뭐’ 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동참했다. ‘학생운동’이란 것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가 됐다. 그러고 보니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다.

뼈 빠지도록 죽어라 일만 하신 부모님, 여전히 셋방살이를 못 면하고 계셨다. 일한 만큼 돌려받는 세상이 이치에 맞는 거 아닌가? ‘세상의 중심은 노동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대학교를 마친 뒤 노동현장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뜻 맞는 그림쟁이, 글쟁이, 음악쟁이, 영화쟁이들과 단체를 만들어 노동문화활동을 시작했다. 록밴드 ‘메이데이’에게 가사를 써주다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다. 몇 년 뒤엔 남들 앞에서 자작곡을 부를 정도로까지 발전했다. 속상하고 괴로울 때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 힘이 났다.

그래, 음악을 통해 세상과 교감하자! 1인 음반사 ‘맘대로 레이블’을 만들고 1집 ‘돼지다이어트’(1999) 2집 ‘공장’(2001) 3집 ‘숨’(2005)을 발표했다. 주위에선 내 노래를 민중가요라 한다. 하지만 누가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제 몸뚱아리 하나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웃음, 눈물, 분노 따위를 담아내고 싶을 뿐.

2006년 12월 홍대앞 커피숍
“연영석씨 음악은 민중가요 하면 떠오르는 정형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단결, 투쟁을 외치는 노래들이 많잖아요. 저까지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집회나 행사가 아닌, 일상에서도 쉽게 부르고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노랫말로 백수니 이주노동자니 카드빚에 내몰린 아주머니니 시급 3천원에 착취당하는 알바생이니 그들의 삶과 정서를 담아내는 거죠.”

“다음 앨범은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가요?” “최근엔 작업을 거의 못하고 있어요. 그래도 2007년 말이나 2008년 초에는 4집을 내야죠. 이번엔 장애우에 대한 노래도 하고 싶어요.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장애우 동지들을 보면 배울 점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사실 저 한쪽 눈이 안보여요. 어릴 때 열병을 앓았거든요.”

“세상이 너무 밝아지면 창작 욕구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요?” “소수자들도 아무 어려움 없이 사는 세상이 오면 편안한 음악을 하게 되겠죠. 하늘에 구름 떠가네, 술 한잔 나눕시다, 뭐 이런…. 그렇게 되길 간절히, 간절히 원해요. 쉽진 않겠지만요.”

-'코리안 드림'(3집 숨)

작성자서정민 (한겨레 신문사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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