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없는 방송, 장애우 참여가 핵심 > 문화


차별없는 방송, 장애우 참여가 핵심

기고 - 장애우방송모니터 5년을 돌아보며

본문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장애우, 왜 모두 가난한 거야?
“텔레비전을 보면 장애우들은 왜 다 가난한 걸까요? 부유한 장애우도 많은데 (방송에 등장하는) 장애우들 보면 대개 힘들게 살잖아요”
“방송이 유도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부잣집 장애우가 나온다면 누가 도와주고 싶겠습니까? 불쌍하다고는 느끼지만 그런 집은 돈으로 극복이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방송은 가난하고 타인 도움 없이는 살기 힘든 장애우만 나오는 겁니다”

   
 
   
 

위 글들은 모 장애우 인터넷신문 게시판에 있는 대화들로 장애우든 비장애우든 한번쯤은 생각해봤을 법한 의문들이다.

방송이 대상을 재현하는 방식에는 특정한 관습과 규칙이 있는데, 장애우를 재현할 때도 우리 사회 편견은 그대로 드러난다. 때문에 방송 제작자에 대한 비판이나 의견을 하지 않으면 이 같은 관습은 무의식적으로 재생산되고 견고해진다.

드라마에 나오는 장애우 가정은 빈번히 발생하는 문제로 힘들어하고, 갈등의 주요 원인이 장애우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장애를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연출하며 연약하고 수동적인 장애우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장애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과장해 연출하는 경우가 많고 장애우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방송도 흔하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모니터단은 방송제작진이 비장애우 입장에서 장애우를 바라보고 제작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판단하고, 이를 장애우 관점으로 바꾸기 위해 2001년부터 방송모니터링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14일, 모니터단은 서울 마포구 방송회관에서 그동안의 활동을 바탕으로 ‘방송이 하는 장애차별사례와 대안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장애관련 뉴스 0.8%, 그나마도 미담뉴스가 대부분

이 토론회에서 장애우방송모니터단 심승보 씨는 “지난 2001년과 올해를 비교해 본 결과, 지난 5년간 방송에서 나타나는 장애우 모습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유는 장애우를 보는 인식이 여전히 부정적이기 때문. 아직도 사회는 장애우들을 의존집단으로 여겼고 방송제작진들도 이런 시각을 벗어나지 못했다.

5년 동안 방송한 뉴스 중에서 장애우 관련 보도가 0.8%라는 점도 어이없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장애우를 여전히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미담뉴스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드라마에서는 독립적인 장애우 캐릭터가 가끔 등장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장애를 불행의 씨앗으로 그리거나, 수술을 통해 장애를 고쳐야만 행복해진다고 표현한 것이 많았다.

교양 프로그램들은 장애우를 가족의 애물단지로 비추거나 장애를 극복해야만 하는 것으로 비추고 있다. 또 장애우 이미지에 가장 나쁜 영향을 끼치는 모금 프로그램은 주말 황금시간을 차지하며 동정론만 더욱 부각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 소외계층인 장애우의 문제에 관심을 보여야 할 공영방송이 진행하는 대표적 시사프로그램들도 장애 문제에 관심 없기는 마찬가지다. KBS <추적60분>은 5년간 장애 관련 내용을 겨우 4건 방송했으며, MBC <PD수첩>은 3년 동안 장애 문제를 다룬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나마 이런 공영방송을 대신해 장애문제에 관심을 보인 것은 SBS <긴급출동 SOS 24시>였다.

그리고 소수지만 일반 방송 프로그램을 대신해서 장애우 의견을 제대로 다뤄야 할 장애우 대상 프로그램도 장애를 부각한 정보만 보여주고 있는 것이 2006년 현재 방송의 자화상이다.

이 같은 현상이 계속되는 것은 제작진들이 비장애우의 관점에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애우를 보는 제작진들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장애우 입장에서 사회를 평가하는 진보적인 ꡐ다양성 모델ꡑ로 전환하고, 이를 프로그램 제작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

이렇게 방송 제작진 인식을 바꾸면 ꡐ방송ꡑ이라는 강력한 매체를 통해 장애우를 바라보는 사회인식을 바꿀 수 있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장애 정책까지 변하게 하는 토대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권 확보를 위한 방송지표 개발 필요해

이번 토론회에서 상명대 영상학부 김금녀 교수는 이러한 변화를 위해 ‘장애인권방송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권방송지표는 방송이 하는 장애차별을 양적 데이터화해 모니터 하는 것으로, 장애관련 방송 정책의 근거를 마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데 이용할 수 있는 지표다. 그리고 나아가 장애우 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적 소수자의 권익옹호와 관련한 방송심의, 방송 콘텐츠 평가, 방송접근도 등을 파악하는 지표나 방송심의 규정, 방송사 강령 등의 지침에 기초 자료로 이용할 수 있다.

장애인권방송지표에는 장애우 관련 방송 프로그램의 모니터, 방송 구조 차원에서의 가이드라인 및 장애 전문 인력 또는 장애우 참여시스템에 관련한 지표, 그리고 장애우 방송접근권 등 방송정책 및 시스템에 관한 지표 등이 포함된다.

이번 2차 지표 개발에 참여한 김 교수는 “그동안 개발한 1, 2차 장애인권방송지표는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양적,질적 평가에 국한됐기 때문에 다음에 개발할 3차 장애인권방송지표 개발에서는 그 개념과 평가 범주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방송조직의 장애우 고용비율이나 제작 참여구조 등과 같은 방송 산업과 조직에 대한 평가 항목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방송법, 방송접근권 정책, 방송심의제도 정책과 정책결정 과정에 장애우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정책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는 항목 등도 필요하며, 더 나아가 장애우 수용자분석에 필요한 항목과 장애 관련 모니터 운동 등에 관한 평가 항목까지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었다.

영국에서는 장애우 앵커나 MC 고용

이영주 연구원(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 책임연구원)과 박웅진 연구원(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은 토론회에서 외국 사례를 통해 방송에서 장애 인권을 확대 하기 위한 정책과 방안을 제안했다.

이영주 연구원에 따르면 영국의 ‘방송창작산업 장애인네트워크(BCIDN; Broadcasting and Creative Industries Disability Network)ꡑ’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듣고 보는 4명 중의 1명은 장애우거나 장애우와 관계있는 사람인데도 870만에 달하는 영국의 장애우들이 방송과 영화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방송영화산업에 고용되지 못하는 현실을, 방송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서 장애우 참여 확대시키는 방안을 통해 개선하려 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의 독립텔레비전위원회(ITC;Independent Television Commission) 역시 자체적인 계획을 마련하여 장애우를 더 쉽게 고용하게 하고, 미디어가 하는 장애우들에 대한 보도를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BCIDN을 지원하는 한편, 2002년 9월에는 BCIDN과 함께 프로그램 제작자들을 위한 워크숍을 시작하기도 했단다.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는 장애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노력 중 하나로 방송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 장애우 참여 확대를 유도하는 정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영국에서는 장애우 앵커나 MC를 찾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BBC의 한 시각장애우 기자는 국내 방송의 대표적 라디오 뉴스 프로그램인 <투데이>의 진행자로 발탁돼 영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매일 아침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 동안 진행되는 <투데이>는 총리에서 일반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고정 청취자를 1천만 명 이상이나 확보한 영국 최고 보도 프로그램이다. 특히 BBC측은 진행을 맡을 그를 위해 점자정보판과 고감도 전자장치 및 유리판이 없는 시계 등을 설치한 특수 방송실도 꾸몄다고 하니 장애우를 위해 방송사 스스로 어느 정도 노력하고 있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사실 비장애우가 장애우 입장에서 방송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장애를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송이 하는 장애차별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애우가 방송에 진출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 방안을 시행해야 한다.

장애우 시청자 주권 보장하는 법 제도 필요

우리나라 역시 현재 장애인복지법과 방송법에서 장애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선언적인 의미에 머물 뿐 처벌을 수반한 강제력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방송에서의 장애차별 문제가 방송접근권에 대한 사항으로 한정돼 있어 내용적인 측면에서 장애 차별을 부추기는 방송 프로그램 등에 대한 규제방안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따라서 장애인권방송지표 개발을 통해 장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자료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방송이 저지르는 장애인권 침해사례를 면밀히 분석하여 이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법을 제정해야 한다.

서울 YMCA 어린이영상문화연구회 백수정 팀장은 “방송은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하며, 소외되는 대상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시점에서 우리의 방송을 돌아보면, 원할한 소통 수단이어야할 방송이 사회적 강자에게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부인하진 못 할 것이다. 그런데도 방송법조계는, ‘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위의 장애차별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유명무실한 조항임을 알 수 있다.

방송에서 시청자는 주인이다. 따라서 시청자의 권리는 단지 보호를 요구하는 소극적 권리가 아니라 시청자 주권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을 이렇게 해 달라’는 시청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에 부응하는 적극적 권리로 해석해야 한다. 물론 사회적 의식수준도 무시할 수 없지만, 다양한 계층과 맺는 이해관계 속에서 이를 보장받을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고 실천할 때, 비로소 인격을 존중하는 방송, 소통과 정보에서 누구에게나 평등한 방송이 된다. 이를 실천하는 것이 바로 올바른 사회를 구현하는데 중요한 바탕이 된다는 점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역할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야 할일이자 동시에 우리 모두의 권리다.

방송에서 시청자는 주인이다. 따라서 시청자의 권리는 단지 보호를 요구하는 소극적 권리가 아니라 시청자 주권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을 이렇게 해 달라’는 시청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에 부응하는 적극적 권리로 해석해야 한다. 물론 사회적 의식수준도 무시할 수 없지만, 다양한 계층과 맺는 이해관계 속에서 이를 보장받을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고 실천할 때, 비로소 인격을 존중하는 방송, 소통과 정보에서 누구에게나 평등한 방송이 된다.
작성자김현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문화센터 간사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5364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치훈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