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장애우 이야기] 한 월남참전 아들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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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일같이 파티와 사교모임을 즐기는 미국의 한 상류층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침실이 여섯 개나 있는 저택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저녁파티에 참석할 준비에 들떠 있었습니다. 막 집을 나가려는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것은 뜻밖에도 월남전에 참가한 아들의 전화였습니다.
“어머니, 저 방금 제대해서 본국에 돌아왔습니다.”
“그것 참 잘됐다. 언제 집에 돌아올 수 있느냐?”
어머니가 기쁨에 넘치는 소리로 물었습니다.
“글쎄요. 그런데 집에 제 전우 한 명을 데리고 가도 괜찮겠습니까?”
“아무렴, 여부가 있나, 며칠 동안이든 머물러도 괜찮으니 네 친구를 데리고 오렴.”
이렇게 주저없이 어머니가 승낙했습니다.
“어머니. 그런데 제 친구는 두 다리가 절단되고 팔 하나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얼굴도 심한 화상을 입었으며 귀 하나와 눈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보기가 매우 흉한데 정양할 집이 없습니다.”
“집이라니? 며칠 동안이라면 우리 집에서 푹 쉬라고 하면 되지 않겠니.”
그 말을 들은 아들이 어머니에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제 말뜻을 못 알아들었어요. 저는 그 친구가 영 우리 집에서 살도록 하고 싶단 말입니다.”
우아하고 교양 있는 그 어머니는 이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녀는 황급히 아들의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그건 말도 안돼. 네 친구의 딱한 사정은 동정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집에 마냥 있게 한다면 내 친구들은 뭐라고 말할 것이며 동네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 것 같으냐. 그리고 또 네 아버지 체면은 어떻게 되고···. 마침 연휴도 다가왔는데 그냥 너만 빨리 집에 돌아와서 우리 함께 오래간만에 휴일을 즐기도록 하자. 얘야, 내 말 들리니?”
그러나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 전에 아들이 수화기를 놓았는지 전화는 끊겼습니다.
그날, 밤늦게 부부가 파티에서 돌아와 보니 캘리포니아의 어느 작은 마을 경찰서에서 온 전화 메시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예감이 든 어머니는 급히 장거리 전화를 걸고 그 마을 경찰서장을 찾았습니다.
“여기 두 다리와 한쪽 팔이 없고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고 눈 하나와 귀 하나가 없는 청년의 시체가 있습니다. 그는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한 듯 합니다. 그런데 그의 신원증명서를 보니 당신의 아드님인 것 같습니다.”
글/ 조선일보<홍사중 문화마당>95년 4월16일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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