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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민의 테마에세이] 반복되는 인생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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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스운 일이다. 언제 어느 곳에 있든 간에 똑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놀라울 뿐이다. 세상 어디로 가든지 비슷한 면면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은.

 우리는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며 세상의 법칙을 배워 가는 것 같다. 인류는 유구한 역사 속에서 똑같은 모습의 반복으로 그 존재를 지켜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오늘’이라는 현실이 돋보기처럼 보인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은 정확하게 맞는 표현이다. 늘 같은 모습의 반복이 인류의 역사라는 생각 또한 떨쳐버릴 수 없다. 어떻게 똑같은 면면들로 가득한 건지 한편으론 신비롭기까지 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100년 전에도, 500년 전에도 벌어졌다는 점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가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100년 전의 모습을 거울삼아, 100년 후의 세상을 예측하는 것도 시도해 볼 만한 일이 아닐까? 과학 기술의 발전이라는 게 어느 정도나 세상을 뒤집어 놓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속에 존재하는 인간관계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똑같은 모습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통일신라 후반기에 왕위 쟁탈전이 벌어졌었다. 지방에선 반란이 일어나고, 호족 세력들이 득세하며 그 권세를 떨쳤다. 민중들의 저항이 시작되었고, 지배 세력은 잘잘못을 지적하던 지식인들을 탄압하였다. 고려 후기에도 무신들이 난을 일으켜 문신들을 학살한 뒤 집권한 바 있다. 거기에 대항하는 항거가 민중의 봉기 형식으로 전국에서 일어났지만, 무력에 의한 집권에는 항상 정권 유지를 위한 필요 이상의 무력(공권력) 사용이 기본이었다.

 국가 수입의 감소와 부족은 공납과 군역 및 부역을 증가시킴으로써 충당되었고, 백성들은 모든 부분에서 약자의 설움을 벗어날 수 없었다. 신분 구조의 변동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삶을 숙명인 양 갈라놓았다. 자손대대(子孫代代)로 극복하지 못할 바벨탑을 쌓듯이 말이다. 양반측이 득세할수록 힘없는 농민들이 소작농이나 노비로 전락하는 악순환은 시대와 상관없이 언제나 반복되었다.

 당쟁 또한 그치지 않았음을 빼놓을 순 없다. 출신 성분 및 출신 지역 문제로 인해, 문(文)과 무(武)의 대립으로 인해, 지배 이념의 차이로 인해, 수구와 변혁 세력간의 아귀다툼으로 인해,  국정 책임자의 눈과 귀를 가리려는 세력들의 반목으로 인해 조정은 시끄러움을 그치지 않았고, 그러한 다툼 속에 소외되는 건 늘 힘없는 일반 백성들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부분에서 특이한 점을 한 가지 발견하게 된다. 오래 전도 아닌 최근 30여 년의 역사만 돌이켜봐도, 위에 적었던 그 모든 부분들이 똑같지 않은가. 문무(文武)의 대립으로 점철된 정권의 변화와 국가 재정 감소를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려는 것, 소모적인 당쟁으로 인해 전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빈부의 격차와 계급화로 인하여 힘없는 서민들의 삶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모습 또한 어찌 그리 똑같단 말인가.

 구태여 역사적인 사건이나 사실들을 거론해야만 얘기가 되는 건 아니다. 사소한 부분을 살펴보아도, 모든 것이 같은 모습의 반복임은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사람’을 예로 들어 보자. 언제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이 세상에는 똑같은 사회가 존재해 왔음이 드러난다. 그 동안 우리의 경험 역시도 그러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중학교 고등학교 3년씩, 그 이후의 모든 생활을 되돌아봐도, 모든 세상에는 언제나 똑같은 모습들이 변함없이 그 자리마다 존재했었다는 답은 어렵지 않게 우리 앞으로 제시되어 온다.

 어느 학급에서나 공부벌레인 애가 있었다. 말도 안 하는 샌님이 있었고, 여자 같은 남자애, 남자 같은 여자애가 있었다. 세상을 삐딱하게만 바라보는 애가 있었고, 웃긴 얘기를 잘하는 아이, 인생을 혼자서만 살아온 듯이 무게를 잡는 아이, 행동보다 말만 앞세우던 아이, 항상 어영부영 노는 것 같은데 공부는 언제 하는 지 성적은 늘 우수한 아이가 있었다.

 체육 시간에만 신이 나는 아이, 국어 시간에 수학책 보는 아이, 영어 시간에 성인잡지 몰래 보는 아이, 그 어느 시간이든 잠만 자는 아이····.

 음담패설을 즐기는 아이, 이성(異姓) 사귀는 데엔 정말 귀신인 아이, 학급 분위기를 도맡아서 이끌어 가는 아이, 그런 분위기를 도맡아서 망쳐 놓는 아이, 노래 잘 부르고 악기(특히 통기타나 피아노)를 잘 다루는 아이, 레크리에이션 시간이 되면 전체 분위기를 휘어잡는 아이, 유치한 개똥철학에 푹 빠져 있는 아이 등등이 누구였는지 독자 여러분들도 각자의 경험에 따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말 못할 사정 때문에 늘 뒤에 물러서 조용히 존재하는 아이, 툭하면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 주먹 싸움이 났다 하면 빠지지 않는 아이, 학내 문제가 발생하면 꼭 주인공이 되는 아이,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는 아이, 선생님한테 잘 보이려고 주변 친구들을 역겹게 만드는 아이·····.

 같은 남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너무 멋있는 아이, 같은 여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정말 예쁘고 호감이 가는 아이, 나중에 크면 법관이나 의사 같은 사람이 될 것 같던 아이, 무엇을 하든 멋진 인생을 살 것이라 믿어지던 아이, 늘 모든 게 불안하고 위태로웠던 아이.

 이름 석 자만 떠올려도 짜증이 나던 아이, 정말 꼴도 보기 싫었던 아이, 늘 아이들 사이에서 이간질만 일삼던 아이, 손버릇이 나빴던 아이, 파출소 출입을 자랑인 줄 알던 아이, 속칭 ‘왕자병·공주병’이 불치의 환자보다 더 심했던 아이, 자기 집이 잘 산다는 걸 너무 의식하며 행동하던 아이, 늘 비싼 몸치장에 정신이 없던 아이 또한 실제로 우리 곁에 머무르고 있었다.

 막연히 말 한번 건네 봤으면 했던 아이, ‘친하게 지낼 것’ 하고 아쉬움만 남겨지는 아이,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늘 마음 한구석에 궁금증과 그리움을 남겨 놓은 아이·····.

 우리가 살아온 사회 생활에서도 그러한 면면들을 항상 우리 주변에 존재해 왔었다. 친해지고 싶은 동료나 상관, 후배가 있었지만 ,-정말 편하게 얘기해서-때로는 때려죽이고 싶었던 부류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늑대 같은 X'와 ’여우 같은 X'도 우리의 지난 생활 속에선 늘 주변에 맴돌았던 게 사실이다.

 그렇게 역사는 반복이 된다. 그 속에 우리가 있고, 우리의 모습 또한 이전의 누군가와 똑같은 삶의 방식으로 현재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본받을 만한 부분인지. 아니면 경멸스러운 인물의 모습인지는 각 개인의 생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는 누군가를 평가할 때 ‘OO 같은 사람’이라고 비교하곤 한다. 본인이 원하든 거부하든, 모든 게 타의에 이루어지고 결정지어지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나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진정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일까?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진정 내 인생에서 인연으로 이루어진 만남들일까?

 다양한 부류의 어린 시절 모습들을 윗부분에 적어놓았지만, 누군가가 나를 기억할 때는 그 중의 어떠한 존재로 나를 떠올리고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어쩌면 우리는 반복되는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그냥 그렇게 나 자신을 흘려버리며 하루하루를 지내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정말 소중한 무언가가 그 자리에 있는데도, 그 사람에게 있는데도, 그 시간에 있었는데도 그 자체를 잊어버린 채로 지내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시간이다.

 앞으로 십 년 이십 년이 흘러간 뒤에 누군가가 나를 얘기하게 된다면, 나의 어떤 면을 가지고 어떻게 평가 내리며 간직하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만큼 주저되기도 한다. 적극적으로 나를 홍보하며 돌아다니는 게 아닐 바에는, 지금의 모습 중 어느 일면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될 텐데, 글쎄·····.

 백 년 전에 나하고 똑같은 사람이 이 땅 어딘가에 존재했었다면, 백 년 후에도 나와 똑같은 누군가가 이 땅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어느 나라이든, 어떤 인종이든 그건 상관없다. 그렇게 반복되는 나날이 쌓이고 쌓여 세월이 되고, 그렇게 역사로 남겨지며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게 인생이리라.

 나는 무엇이었고 무엇으로 존재하며 무엇이 될까? 우리는 무엇이 되기 위해 오늘을 생존하고 있는 걸까? 똑같은 물음표만 남기며 사라져 버리는 하나의 점으로써 끝나는 일일까?

 오늘의 한숨이 내일의 한숨이 될까 두려워 몇 글자 적는다는 게 넋두리가 되어 돌아옴이 아쉬울 뿐이다.

 

글/ 최지민(소설가)

작성자채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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