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어프리 관광지로 향하는 오키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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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좌모 |
여행은 누구에게나 설레는 일탈의 기회다. 먼 곳이든, 가까운 곳이든 해외여행을 떠나면 완전히 낯선 곳에서의 색다른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돈과 시간만 있다면 누구든지 잦은 여행을 꾀하겠지만, 장애인에게는 다른 조건이 더 필요하다. 여행을 가는 현지의 장애인 편의시설 상황,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어야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계획할 수 있다. 본지에서는 휴가철과는 거리가 먼 이 겨울, 북적거리지 않는 시즌을 틈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지로 손꼽히는 오키나와를 방문했다.
여행 정보의 허브 ‘NPO’
한국인들에게서 전통적으로 인기를 얻는 여행지는 ‘일본’이다. 한 여행전문 예약 사이트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2016년 한해 동안 한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여행지는 일본 오사카였다. 실제로 오사카 거리를 걸으면 그곳이 일본인지, 한국인지 헷갈린다고 할 정도로 한국인이 많다. 오사카 외에도 일본의 다양한 지역들이 한국인들의 여행지로 사랑받고 있는데, ‘동양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오키나와도 예외는 아니다. 오키나와는 해를 더해갈수록 외국인 관광객 수가 늘어나고 있는 여행지다.
특히, 오키나와는 2007년에 ‘배리어프리 관광지’ 선언을 하고 꾸준히 장애인의 여행 편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열린 관광지를 목표로 달려가고 있는 오키나와는 ‘배리어프리 관광 네트워크(이하 NPO)’라는 단체를 통해 배리어프리 여행정보를 수집, 관리하고 배포한다.
NPO는 오키나와 현과 연계해 오키나와의 배리어프리 관광 환경 조성을 위해 일하고 있는 단체다. 오키나와 내 관광지, 숙박 업소, 식당 등의 장애인 편의시설 정보와 이동수단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NPO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쪽으로 정보 제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정보제공과 사이트의 문의란을 통한 답변은 오키나와 여행을 앞둔 장애인 및 여행약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각각의 정보를 일일이 찾지 않아도 NPO에 문의하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행준비 시간도 절약된다. NPO는 연간 1만5천 건의 문의를 소화하고 있으며, 오프라인에서의 정보 제공을 위해 공항 내 배리어프리 여행안내 데스크도 운영하고 있다.
공항 내에 위치한 배리어프리 여행안내
데스크에서는 휠체어 대여는 물론이고 이동수단, 숙박, 식당, 통역 등 여행을 구성하는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총 망라해 오프라인 여행상담을 진행한다. 정보를 정리한 책자와 팸플릿도 풍부하게 준비돼 있어 공항에서의 즉각적인 정보 습득이 가능하다.
NPO에서 발행하는 배리어프리 관광안내 책자는 지난 10여 년간 오키나와의 배리어프리 관광 산업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준다. 오키나와 내 장애인 화장실 위치까지 상세하게 게재된 책자는 첫 발행본에 비해 2배 이상 두꺼워졌다.
NPO의 오야카와 오사무 대표는 오키나와의 관광 사업자들이 비장애인만큼이나 장애인을 고객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광안내 책자는 열 번째 버전까지 출간됐다. 처음에는 기재할 정보가 많지 않았는데, 오키나와 내 장애인 편의시설을 포함한 관광지, 숙박업체, 식당 등이 늘어나면서 정보가 많이 모여 두 배 이상 책자가 두꺼워졌다. 장애인뿐 아니라 휠체어를 탄 고령의 여행자도 많이 방문하는 오키나와 특성상 배리어프리 시설이 포함된 곳이 그렇지 않은 곳보다 매출이 높아지다보니 자연스럽게 편의시설을 마련하는 곳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제는 오키나와 내에서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사업자들이 장애인 및 고령자를 고객으로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배리어프리 여행 환경이 조성되는 것뿐만 아니라 장애인 및 고령자에 대한 서비스의 질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접근 가능한 오키나와의 관광지들
휠체어 장애인의 동선을 만든 슈리성
오키나와 내 대표적인 관광지들은 한국에 비해 높은 수준의 휠체어 접근성을 가진다. 가장 인상 깊은 휠체어 접근권을 보여주는 곳은 ‘슈리성’이다.
슈리성은 류큐 왕국의 역대 국왕들이 머물던 성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것을 재건한 문화재다. 성 주변으로 공원을 조성해 관광객들이 산책하듯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슈리성은 중국 문화재를 떠올리게 할만큼 붉은색을 중점적으로 사용한 화려한 색감이 이색적이다.
슈리성의 휠체어 접근권은 공원 입구에서부터 빛을 발한다. 단순히 계단을 없앤 것이 아니라 경사가 높은 길과 경사가 낮은 길을 구분해 만들었고, 휠체어 사용자가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표지판을 눈에 띄게 세워뒀다. 공원 내부에 턱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슈리성에 들어선 후에도 비장애인이 들어갈 수 있는 모든 곳에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다. 건물 내부까지 휠체어 접근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것은 특별하게 느껴진다.
정전에서부터 각 전시관 등의 건물 내부까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으며, 내부에서도 구석구석 관람할 수 있도록 자동문, 경사로, 리프트 등이 설치돼 있다. 휠체어가 가는 길을 따라가다보면 단순히 보여주기식 편의시설이 아닌 관람자의 관람동선을 고려한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카세카케라는 고전 무용을 선보이는 공연장도 중앙으로 휠체어 접근이 가능해 정면에서 충분히 관람이 가능하다. 또한 슈리성 공원에는 나하시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이 전망대 역시 경사로가 이어져 있어 비장애인과 나란히 나하시를 조망할 수 있다. 함께 방문했던 휠체어 장애인이자 여행가 전유선 씨는 지나는 곳마다 휠체어 표지판이 세워져 있던 슈리성을 관광지 만족도 1위로 꼽았다.
접근성에 소통을 더한 츄라우미 수족관
오키나와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여행 코스로 꼽히는 츄라우미 수족관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수족관으로, 고래상어가 있는 대형수조를 가지고 있어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지다.
츄라우미 수족관은 해양박람회기념 국립정부공원 내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수족관 외에도 일본 최대 아열대 공원을 즐길 수 있다.
슈리성과 마찬가지로 츄라우미 수족관으로 가는 공원 내부의 길에는 경사로가 병행돼 있다.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지점들이 많은데, 턱이 있는 길마다 일부분 턱이 깎여 있어 모든 길에 접근이 가능하다. 츄라우미 수족관은 화려한 돌고래쇼로도 유명한데, 관람석 내 휠체어 전용석이 충분히 마련됐다. 가장 높은 좌석인 뒤쪽과 가장 가까운 좌석인 앞쪽에 휠체어 전용석이 지정돼 있어 원하는 좌석을 선택해 쇼를 관람할 수 있다.
츄라우미 수족관은 1층에서부터 수족관 입구까지 휠체어 이용자의 손이 닿을 수 있는 위치에 버튼을 설치한 엘리베이터가 있고, 장애인 화장실, 내부 경사로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입구 안내소에서는 음성안내기와 휠체어, 유모차 등을 빌려준다.
특히 점자안내서와 청각장애인과 직원의 소통을 위한 청각장애인용 메모지가 비치돼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완전한 수족관 내부 관람은 물론이고 기념품 매장, 해양생물 체험 등도 모두 휠체어 접근이 가능하다. 방문 당시, 인산인해를 이룬 고래상어가 있는 대형수조 앞에는, 서있는 사람과 더불어 휠체어를 이용하는 일본인이 자연스럽게 수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동등한 체험 경험, 류큐무라
류큐무라는 류큐마을을 재현해 놓은 곳으로, 32개의 공방과 101개의 체험프로그램이 준비돼 있어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풍부한 관광지다.
직원들을 마을 주민으로 부르는 이곳은, 시골스러운 분위기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슈리성, 츄라우미 수족관과 마찬가지로 휠체어 접근성이나 내부 편의시설이 완비돼 있다.
특히, 많은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전통의상을 입어보는 체험에서 휠체어 이용자를 고객으로 여기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기본적인 전통의상은 긴 가운 형태로, 걸쳐 입어야 한다.
휠체어 장애인은 착복이 어려운 형태인데, 이 곳에는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휠체어 이용자용 전통의상을 따로 제작해 구비하고 있다. 이 의상은 앞에서부터 입을 수 있도록 제작돼 등 뒤가 트여 있고 앞모습은 옷을 여민 것으로 디자인됐다.
덮듯이 입고 팔을 넣으면 돼 비장애인과 동일한 체험이 가능하다. 체험과 마을 산책을 모두 끝내면 출구가 나오는데 바가 달린 좁은 형태의 문이라 휠체어 통과가 불가능하다. 대신 출구 왼쪽에 별도의 자동문을 설치해 휠체어 이용 고객과 유모차 동반 고객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오리온 맥주공장과 파인애플 파크
오리온 맥주는 오키나와 맥주로 잘 알려진 지역 맥주다. 오리온 맥주공장은 사전 예약을 하면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이곳 또한 오키나와의 타 관광지와 같이 휠체어 접근성이 좋다. 층을 올라가며 설명이 이어지는데, 휠체어와 유모차가 이용 가능한 개별 엘리베이터가 마련돼 있다. 개별 엘리베이터는 휠체어와 유모차만 이용이 가능하며 오리온 맥주공장의 직원이 별도로 안내를 해준다. 맥주 공장 견학이 모두 끝나면 제한 시간을 걸어두고 바로 내린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오리온 맥주처럼 오키나와 특산품인 파인애플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파인애플 파크’도 방문해 볼만 하다. 전체적으로 계단이나 턱이 아닌 경사로로 이뤄져 있으며, 장애인 화장실도 구비돼 있다. 이곳에는 자동 운전되는 음성 안내 차량이 있어 탑승한 상태로 편안하게 파크를 둘러볼 수 있다. 차체의 높이가 낮지 않아 승하차가 쉽지 않으면, 휠체어 그대로 움직이면 된다. 파인애플의 종류 등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고 파인애플 관련 제품의 구매가 가능하다.
풍경을 즐기는 곳들, 만좌모와 오우라 맹그로브 숲 자연체험시설
오키나와에서 풍경을 즐긴다고 하면 보통 바다를 떠올린다. 그 중에서도 한국 드라마 촬영 장소로 유명한 만좌모가 인기 방문지다. 만좌모는 절벽 위 벌판으로, 투명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주차장에서부터 만좌모를 빙 둘러가며 절벽 아래 바다를 보는 데에 휠체어 이용자도 무리가 없을 만큼 길이 잘 닦여 있고, 청록색 바다와 코끼리 바위가 절경을 이룬다.
만좌모 외에도 오키나와에는 이색적인 풍경이 있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점이자 맹그로브나무로 이뤄진 숲이 울창한 ‘오우라 맹그로브 숲 자연체험시설’이 그곳이다. 잔잔한 강물 위로 다리가 놓여 있는데 미끄러짐 방지 재질로 만들어진 데크로드가 이어져 휠체어가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탄탄한 데크로드를 따라 맹그로브 숲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면, 그 풍경이 정글처럼 느껴진다.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 관광지다
쇼핑 플레이스
오키나와에서 쇼핑을 위해 찾아야 하는 곳은 아메리카무라, 국제거리, 아시비나 아울렛이 있다. 아메리카무라는 대형 쇼핑몰이 모여 있고, 국제거리는 오키나와 내 번화가이자 재래시장이 위치해 아기자기한 쇼핑이 가능하다. 아시비나 아울렛은 공항과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 마지막날 일정에 넣기에 적합하다. 모두 휠체어 접근성이 좋고, 화장실도 구비돼 있다.
이동수단의 아쉬움
앞서 소개한 NPO가 정보의 허브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좀더 완전한 오키나와 배리어프리 관광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역할도 하고 있다.
오야카와 오사무 대표는 “오키나와 배리어프리 관광 환경이 크게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대중교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오랫동안 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는 대중교통의 충분한 확보를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 미흡한 상태”라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오키나와는 렌트카를 이용해야 하는 여행지로 인식돼 있다. 이번 방문 시에도 취재진은 복지택시를 빌려 이동했다. 오키나와 전체를 아우르는 대중교통은 미흡한 상태다. 아침에 출발해 오키나와를 돌아보는 관광버스는 있지만, 이를 대중교통으로 칭하기엔 무리가 있다.
오키나와의 도심인 나하 시내에는 모노레일이 있어 휠체어 이용자도 충분히 이동이 가능하지만, 시내를 벗어나면 택시나 렌트카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저상버스는 전체 버스 중 비율이 높지 않아 미리 예약을 해야 기약 없는 기다림을 방지할 수 있다.
복지택시의 경우, 예약을 하면 시간낭비 없이 탑승이 가능하지만 예약하지 않으면 평균 1시간 정도의 대기시간을 감수해야 한다. NPO에서는 타인의 힘을 빌려 일반택시 탑승이 가능한 경우에는 일반택시의 이용을 권장한다. 일반택시의 기사들 중 상당수가 휠체어 등 장애인 대응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휠체어에서 일반택시 좌석으로 이동하는 것을 지원하는 방법 등을 교육 받은 택시기사들이기 때문에 휠체어 장애인과 마주해도 당황하지 않는다.
취재진이 종일 예약을 해 이용한 복지택시의 경우, 리프트가 설치돼 있으며 다양한 규격이 있어 일행의 수에 따라 부를 수 있다. 복지택시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이 운전할 자격이 주어지는데, 간호사 자격증을 가진 기사도 종종 있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 뛰어나다.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택시들은 오키나와 내에서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의미로, 실제로 취재진이 빌린 복지택시 사업자도 예약이 너무 많아 차량을 추가구매해 운영해야 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오키나와의 복지택시는 블루오션으로 성장하면서 수요자의 욕구에 맞춰나가고 있다.
발전하는 오키나와
전윤선 여행작가는 “다녀본 곳들 중 독일과 일본이 가장 휠체어 여행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일은 비용과 거리의 문제가 있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장애인들의 첫 해외여행지로 일본이 많이 선택된다. 어딜 가도 접근성이 좋다는 일본이지만, 오키나와가 일본 본토와는 다른 강점을 가지는 것은 날씨다. 오키나와는 한 해 최저 기온이 영상 1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취재진이 방문했던 12월 초의 기온은 23도 가량이었다. 볕이 좋은 한낮에는 바다에 들어갈 수도 있겠다 싶은 기온이 유지됐다. 전윤선 여행작가는 “근육병 장애인들은 기온이 떨어지면 증상이 급속도로 진행된다. 겨울을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다. 굳이 근육병 장애인이 아니어도, 한겨울에 추위를 피해 가벼운 복장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은 장애인들에게 큰 이점”이라고 설명했다.
배리어프리 관광에 관심을 놓지 않고 있는 오키나와 관광청은 “아직은 부족한 것들이 많지만 오키나와가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여행할 수 있는 여행지로 발전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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