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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귓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턱과 뺨에 닿는 물은 뜨거운데 귓속으로 들어오는 물은 이상하게 미적지근했다. 체온을 잴 때 온도계를 귓속에 넣는 걸로 봐서 귀로 느끼는 온도가 실제에 가까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누운 채 수도꼭지를 왼쪽으로 더 돌렸다. 이윽고 한결 더 데워진 물이 욕조를 채워 나갔다.
강한 물살과 약해진 중력 때문에 몸뚱이가 물속에서 가만히 있지 못했다. 이번에는 귓속으로 들어오는 물 역시 그럭저럭 쓸만했다. 공기를 죄다 토해내 버린 폐가 빠르게 쪼그라드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고동치는 심장 소리로 귀가 멀 것 같았다.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더디게 숫자를 셌다. 눈알이 타 들어가 듯 쓰라려 올 때쯤 얼굴을 욕조 밖으로 빼 올렸다. 얼굴이 칼에 베인 듯 화끈거렸다.
후- 하- 후- 하-
도로 폐가 부풀어 올랐다. 심장도 평소와 다름없이 뛰었다. 그제서야 음악 소리가 들렸다. 욕조 속으로 입수하기 한참 전부터 틀어 놓았던 일본 애니메이션 OST들이었다. ‘강철의 연금술사’, ‘바람의 검심’,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같은 비교적 예전 애니 곡들도 있었고 ‘드래곤볼 슈퍼’, ‘원피스’와 같은 최근 곡들도 있었다.
폐를 빵빵하게 부풀린다. 또 한 번의 입수. 하수구를 찾는 지렁이처럼 욕조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코와 귀가 물로 가득 찬다. 감은 눈을 뜬다. 물파스를 뿌린 듯 눈이 아리다. 찢기고 조각난 빛의 파편이 동공을 찔러 들어온다. 천장의 형광등이 나를 내려다본다. 조소한다. 낄낄댄다. ‘우리 회사? 대체 언제부터?’, 귀를 틀어막는다. 운동장만한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모니터에 비친다. 눈을 질끈 감아 버린다. 수도꼭지를 조금 더 왼쪽으로 돌린다.
“쟤, 몇 반 애에요? 착하네요!”
“우리 반 놈입니다. 인성이 무척 좋아요.”
학창 시절,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나를 칭찬했다. 다리가 불편한 친구의 휠체어를 밀어줄 때면 어김없이 칭찬이 들려 왔다. 당시 나는 담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멘토 멘티로 맺어진 어떤 녀석을 도왔다. 족히 15년은 지난 일이므로 단언할 순 없지만, 놈의 이름은 아마 성준인가 성진인가 그랬다. 2년 가까이 녀석과 나는 그야말로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녔다. 수업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하굣길에도 나는 녀석을 도왔다. 휠체어를 밀어 주었고, 녀석을 업은 채 계단을 오르내렸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으므로 힘든 줄도 몰랐다. 녀석과 내가 2학년 때도 같은 반이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올해도 네가 많이 도와줘야 한다. 선생님은 너만 믿을 거야. 알겠니?” 선생님들은 단속하듯 내게 당부하곤 했다.
“민호야, 어려운 일 아니야. 2년 동안 네가 쟤를 어떻게 도와줬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발표하면 돼. 장학사님 앞이라고 긴장할 거 하나도 없어.”
2학년 말 즈음에 나는 강당에서 어떤 발표를 했다. 어찌 보면 그건 장학사 앞에서 뭔가 보여 주어야 했던 학교가 급조해낸 일종의 쇼였다. 그 쇼에서 내가 어떤 말을 나불댔는지 따위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리허설 때보다 훨씬 길게 발표했다는 것만 기억한다. 그리고 그 때의 느낌, 강단 위에 섰을 때의 떨림, 수많은 눈동자를 마주했을 때의 흥분, 구름을 밟고 선 것 같던 그 황홀함만 기억한다.
결과적으로 그 쇼 덕분에 나는 선생님들로부터 더 큰 칭찬을 받았고, 그 쇼 때문에 녀석과 멀어졌다.
“아직도 모르겠어? 넌 친구도 아니야.”
녀석이 내게 화를 냈던가. 나를 힐난했던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가. 모르겠다.
“비겁한 새끼, 이럴 거면 차라리 나한테 신경 꺼!”
놈의 말대로 하는 건 쉬웠다.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건 영단어를 외우는 것보다 단순했고 수학 정석을 푸는 것보다 간단했다. 짐을 덜어 낸 듯 편하기까지 했다. 수조 안을 잠망경으로 관찰하던 과학 시간, 틈만 나면 녀석을 괴롭히기 바빴던 패거리가 녀석의 머리통을 수조 속에 처넣던 순간에도,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녀석의 입이 열릴 때마다 공기방울들이 봉화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손짓해 부르듯 수초들이 흔들렸다. 그럴수록 패거리는 야비하게 웃어댔다.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뿌옇게 변한 교실 창문에 빗방울이 툭툭 튀었다. 점점 숨이 막혀 왔다. 앙다문 입이 열린다. 물이 입 안으로 강간하듯 밀려들어온다.
콜록! 콜록! 우웩! 후- 하- 후- 하-
나는 욕조 밖으로 기어 나와 한참을 토악질했다. 위액이 섞여 있는 토사물은 식초처럼 시큼하고 소주처럼 썼다. 토사물 위에 주저앉아 있는 내 모습이 욕실 거울에 비쳤다. 발갛게 익은 게, 흡사 정육점 벽에 걸린 고기 같았다.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보았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는데도 열은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올라서 이제는 미열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 그때였다.
‘김수현님으로부터 도움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애니메이션 OST가 뚝 끊기며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늦은 시간에 웬일이지? 나는 집에서는 이례적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수현 씨는 편의점 안에 있었다. 안마를 받으러 온 직원들에게 줄 먹거리를 고르는 중이라고 했다. 그녀는 무얼 사면 좋을지 내게 물었다. 그러면서 겸연쩍은 목소리로 “업무와 무관한 일은 아니죠? 대리님한테 이런 걸 물어도 되나 한참 고민했어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너무 팍팍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하고 대답하며 나는 ‘영상 보기’ 버튼을 눌렀다.
휴대전화 액정을 통해 고래밥, 빼빼로, 다이제 들이 보였다.
“지금처럼 카메라를 매대 쪽으로 하고, 오른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볼래요? 네, 그렇게요.”
수현 씨는 내 의견을 참고해서 몇 개의 과자를 골랐다.
“세 시 방향으로 다섯 걸음쯤 가면 카운터가 나와요.”
“저기... 맥주를 좀 사고 싶은데요.”
수현 씨를 주류들이 가득 찬 냉장고 앞으로 안내한 후, 나는 진열돼 있는 맥주들의 이름이며 크기 따위를 알려 주었다. 그녀는 의외로 맥주를 좋아하는지, 손끝으로 캔들을 스쳐 만지기만 할 뿐 쉽게 고르지 못했다. 그 인간적인 모습을 기념으로 남기고 싶어서 나는 ‘녹화’ 버튼을 얼른 눌렀다. 만약 이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린다면? 다들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한정판으로 출시된 피규어를 발견했을 때처럼 짜릿했다. 암막을 쳐 놓은 듯 거리는 어두웠다. 10월 말의 쌀쌀해진 날씨 때문인지 편의점 파라솔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현 씨는 파라솔 의자에 앉아 맥주 캔을 땄다.
“그런데 계속 통화하실 건가요?”
“글쎄요... 일단 카메라를 수현 씨 쪽으로 돌려 봐요.”
한 바퀴 회전한 카메라에 그녀의 모습이 잡혔다. 은색 귀고리가 잘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과자를 씹는 이가 모난 데 없이 고르고 희었다. 저작근이 움직일 때마다 보조개가 얕게 드러나곤 했다. 한 마리의 달토끼를 보는 듯했다. 시각장애인용 흰지팡이는 가지런히 접힌 채 한쪽에 놓여 있었다.
그녀와 나는 가벼운 얘기를 주고받았다. 날씨에 관한, 비싼 물가에 관한, 붐비는 지하철에 관한 그런 얘기들이었다. 보다 중요한 것들, 그러니까 급여나 업무 내용에 대해서 또는 그녀의 눈에 관해서, 아니면 연애나 결혼 따위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왠지 그래선 안 될 것 같았다 .
“근데 우리 회사 분위기가 원래 이래요?”
맥주를 한 모금 한 그녀가 말했다.
“다단계 회사 같다고 생각했죠?”
욕조 귀퉁이에 걸터앉으며 내가 말했다. 앱의 특성상 이쪽의 영상이 저쪽으로 전송되진 않지만, 알몸인 채로 여자와 영상 통화를 하고 있자니 기분이 적잖게 야릇했다.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나도 처음에 그랬거든요. 여러 층을 사무실로 쓰고 있긴 한데, 막상 어느 층의 어느 사무실에 들어가 봐도 텅텅 비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상사한테 물었죠. 사람들이 다 어디 갔냐고. 그랬더니 다 영업하러 나갔다더라구요. 그래서 생각했죠. 이거 다단계 회사가 틀림없구나.”
그녀가 짤랑거리며 웃었다.
“안마 받으러 오는 사람도 없는데 휴게실을 지키고 앉아 있으려니... 죽어 가는 기분이더라구요.”
“잘 알아요. 그런 기분.”
토끼 같은 그녀에게 나는 ‘애초에 안마사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어요. 사장은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지켜야 했을 뿐이에요.’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손바닥만한 액정을 통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따금씩 손을 뻗어 맥주 캔을 들어 올렸다. 그때마다 파도처럼 하얀 거품이 입가에 남곤 했다. 후- 하고 깊은 숨을 내쉴 때면 바람을 맞아 부푼 돛처럼 가슴이 꿈틀 움직였다.
“나야 월급 받아 좋고, 사장님은 장애인을 고용했으니 장려금을 받아 흡족하겠지만 직원들은... 하나도 좋을 게 없네요.”
그녀가 무연히 말했다. “아! 그런가요...” 나는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등 뒤에서 칼침을맞은 무사가 된 듯했다. 액정 속의 그녀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상사요. 곽 부장님이죠?”
“네?”
“직원들이 다 어디로 간 거냐고 물었다면서요. 그거 곽 부장님한테 물어 본 거죠?”
나는 욕조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마터면 바닥에 고인 물을 밟고 넘어질 뻔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가 곽 부장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점심시간에 부장님이 잠깐 오셨거든요. 좋은 말씀 많이 들려 주셨어요. 대리님에 대해서도 재밌는 얘기 해주셨구요. 오늘은 그냥 가셨지만 안마 받으러 조만간 오시겠다고 했어요.”
그 인간이 나에 대해 무슨 말을...
숨이 가빠왔다. 명치께를 얻어맞은 것처럼 답답했다.
“그러고 보니 공 과장님, 대리님, 오 언니, 한 번씩 다 오셨다 갔네요.”
“아니! 미스 오까지 갔어요?”
“네. 모두 상냥하고 좋은 분들 같았어요. 대리님에 대해서도 한 마디씩 하던 걸요!”
대충 물기만 닦고 전화 받은 탓에 몹시 찝찝했다. 욕실 안은 수증기로 가득 차 습했다. 겨드랑이에서 암내가 풍겼다. 바닥에는 토사물이 흥건했다. 그들이 나에 대해 좋게 얘기했을 리 없었다. 열이, 한층 더 났다.
“네. 모두 좋은 동료들이에요. 수현 씨는 부장님이 얼마나 재밌는 분인지 모르죠? 글쎄, 저번에 한 번은...”
거울 속에 벌거벗은 사내가 서 있었다. 발갛게 달아 오른 사내는 광대처럼 보였다. 그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입 모양으로 욕하고 있었다.
“그런데 과장님은 언제부터 뜨개질을 하셨대요? 나도 배우고 싶어요.”
그녀가 빈 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대답할 말이 궁했던 나는 “그러게요!” 하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맙소사! 그 아줌마가 뜨개질을?
“그만 일어나야겠어요. 오늘 여러모로 고마웠어요.”
의자에서 일어서며 그녀가 말했다.
차르르르! 어린 시절, 손에 꼭 쥐고 있던 구슬을 주먹 밖으로 자주 놓쳤었다. 쏴아! 애써 만들어 놓은 모래성을 힘센 파도가 단숨에 휩쓸어 갈 때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내일은 내가 마중 나갈게요. 친해지고 싶어요. 커피도 한잔하구요.”
여태껏 손 대본 적 없던 십만 피스짜리 퍼즐을 탐하는 심정으로 내가 말했다.
“듣던 대로 민호 씨는 참 젠틀하세요. 우리, 화분에 물을 주듯 그렇게 지내보면 어떨까요?”
“...”
그릇에 밥을 꾹꾹 눌러 담듯 수현 씨가 말했다. 발음 기호를 보며 외국어를 발음하듯, 나는 수현 씨가 한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러는 동안 내 마음속에는 어느새 화초 하나가 뿌리 내리고 있었다.
전화를 끊었다. 물을 틀고 욕실 바닥을 구석구석 청소했다. 그리고 다시 욕조에 들어갔다. 물은 미지근하면 족했다. 물 아래로 앙금이 가라앉듯, 부유물이 침잠하듯, 나는 욕조 바닥에 몸을 붙인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어제부터 나를 괴롭히던 열이 내리는 듯도 했고, 뭉쳐 있던 체증이 풀리는 듯도 했다.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곽 부장의 페이스북 대문에는 십 수 년 전에 찍었을 게 분명한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두 아이, 젊은 부장, 부장의 아내가 사진 속에서 활짝 웃었다.
공 과장의 페이스북 대문에는 반쯤 뜨다 만 목도리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이보리 색 목도리 뒤로 파란색 서류 파일들이 가지런하게 꽂혀 있었다. 미스 오의 페이스북 대문에는 귀엽게 생긴 아프리카 꼬마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녀가 후원 중인 꼬마 같았다. 달에 첫 발을 내딛듯, 나는 ‘좋아요’를 눌렀다. 첫사랑을 고백하던 순간처럼 닭살이 돋았다. 괜스레 요의가 느껴졌다.
욕실은 여전히 수증기로 가득했다. 거울 속에서 사람들이 흰지팡이를 발끝으로 밀며 바쁘게 걸었다. 수초가 떠밀린 흰지팡이를 따라 힘없이 흔들렸다. 그 옆에서 한 사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설렁탕을 들이켰다. 페이스북을 닫고, 엔젤아이즈를 실행했다. 수현 씨뿐 아니라, 다른 시각장애인도 내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설정을 바꾸었다. 거짓말처럼, 몸 깊숙한 곳에서부터 온기가 흘러 나왔다.
익명의 발신자로부터 도움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글을 쓴 제삼열 씨는 시각장애인이다.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가작(2010), 전국장애인근로자문화제 금상(2011), 고양시장애인종합복지관 장애인문학제 최우수상(2012),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산문부 대상(2016)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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