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세월은 흘러가도 아픔은 그 자리 그대로 > 문화


어느새 세월은 흘러가도 아픔은 그 자리 그대로

일본의 지진재해장애인에 대해

본문

일본 사람들의 벚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정말 특별하지요. 꽃 봉우리를 펼치는 벚꽃을 배경으로 새 출발의 마음가짐을 다지고, 일주일 후면 눈발처럼 흩날리며 지는 그 꽃잎의 화려한 퇴장조차 멋지다고 감탄하며 즐깁니다. 제가 대여섯 살 무렵 부모님과 창경원 구경을 가서 벚꽃나무 아래서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좀 머리가 커서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바꿔 조선의 왕권을 비하시키고 일본의 국화인 벚꽃을 왕궁에 심어 무의식적으로 민족의식을 희석시키려 했던 일제강점기의 술수에 통분한 적이 있었는데요. 이제 일본 땅 오사카에 살게 되니 사람의 생각이라는 게 참 입장에 따라 바뀌는구나 싶어요.

지금은 동네 근처 공원이며 신사에 벚꽃이 만발할 때면 지나가다가도 잠시 멈춰 쳐다보게 됩니다. 그저 꽃이 곱구나, 고된 겨울을 보내고 피어난 고운 자태로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구나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며칠 전 본 금방이라도 져버릴 듯 활짝 핀 꽃들은 곱기는 했지만 날씨가 흐려서인지 그 연분홍 빛이 뿌옇게 어려지던데요. 마침 뉴스에서 3년 전 침몰된 ‘세월호’가 인양되는 화면을 보고 난 뒤라서 그런지 왠지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져버린 희생자들의 모습과 엇갈려 진혼의 꽃인 양 느껴졌습니다. 인양되기까지의 긴 시간의 길이를 증명하듯 찌그러지고 녹슨 선채로부터 시간의 길이로는 삭힐 수 없는 상처의 깊은 흔적이 잔인하게 남아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때 희생당한 학생들과 같은 고2였던 큰아이가 이제는 대학교 2학년, 훌쩍 커버린 아이의 키가 보여 주듯 긴 시간을 기다리게 한 무심한 현실에 화사한 꽃을 보면서도 그냥 즐기기에는 미안한 봄이요, 꽃잎처럼 곱던 젊음들이 허무하게 져버린 아픈 계절이 되어 버렸네요. 또한 그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할 깊은 책임을 되묻게 되고요. 한국에서 4월이 ‘세월호’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기라면, 일본에서는 바로 1년 전 4월 14일 구마모토에서 일어난 구마모토 지진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기네요. 한국에서도 자주 보도되어 다들 잘 아시겠지만 지진의 나라라고 불리는 일본에서는 일상적으로 크고 작은 지진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되죠. 그 중에서도 1995년 1월 17일의 한신대지진, 2011년 3월 11일의 동북대지진, 그리고 작년 2016년 4월 14일의 구마모토지진 때는 특히 큰 피해를 남겼고, 희생당한 사람들도 아주 많았는데, 일본 특유의 자연재해인 지진으로 인해 장애를 입은 사람들을 “지진재해장애인”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생사를 가르는 끔찍한 지진 속에서 간신히 생명을 구하기는 했지만 무거운 장애를 입게 된 사람들은 그동안 살아온 삶터를 한순간에 잃고, 재건해 나가려 해도 장애로 인해 이전에 일하던 직장에 복귀할 수 없어 경제적 기반조차 잃게 되는 딱한 사정이지만, 공적인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신문기사에서 어느 지진재해장애인의 인터뷰를 보니까, 지진 후 집이 무너져 내려 남편과 같이 꼼짝없이 파묻혀 생사를 헤매다가 8시간 후 간신히 구출됐었대요, 하지만 같이 구출된 가장인 남편은 사흘 뒤 사망하고, 자신은 왼쪽 다리를 잃는 큰 장애를 입고 말았다고요. 그런데 지진재해로 장애를 입은 사람에게 지급되는 ‘재해장애위로금’(최대 250만 엔)을 재출발 자금으로 기대하고 있었지만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진단서에 장애원인이 ‘지진’이라고 기재되어 있어야 하며, 두 다리나, 두 팔에 장애를 입거나, 두 눈의 시력을 잃은 사람에게만 지급된다”는 아주 까다로운 내용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렇게 규정이 엄격하여 지원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1년 전 구마모토지진 때 2,500명 이상이 중경상을 입었지만 위로금을 받은 사람은 4명에 불과했고, 2010년이 되어서야 실태조사가 이루어진 한신대지진의 중상자 10,000명 중 겨우 349명만 지진재해장애인으로 인정받았다고 하네요. 지진재해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미흡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한신대지진 중증장애인들이 20여 년간 지켜온 침묵을 깨고 올해 2월 정부에 자신들의 주장을 전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지진재해장애인과 가족들이 후생노동부를 방문해 자신들은 힘겨운 세월을 겪어왔지만 최근 지진으로 장애를 입은 사람들을 비롯하여 앞으로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지진으로 인해 장애를 입게 될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는 당사자들의 입장을 정부에 호소하며, 조금이라도 상황이 개선될 수 있도록 장애수첩에 나와 있는 장애원인을 표시하는 항목에 ‘자연재해’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도록 하고, ‘재해장애인위로금’의 지급요건을 완화시켜 달라고 직접 요청했다고요. “구조된 후 살아남을 희망이 3%라고 했지만 딸 아이는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아 돌아와 주었습니다. 하지만 지진 전의 딸의 모습과는 달라졌죠.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만 무거운 장애를 지고 살아가야 하는 딸 아이의 앞날은 너무나 힘겨운 현실이었습니다. 이제는 20여 년이라는 세월과 함께 그 엄청난 피해를 입은 우리들의 이야기는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이 고통과 경험을 다른 분들이 겪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정부와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1995년 지진 당시 고3이었고 지진으로 인해 중증장애인이 된 딸과 동행한 어머니의 눈물 어린 호소였어요. 지금까지 참아왔던 지진재해장애인과 가족들의 비통함을 토로하면서 재해와 사고는 한순간으로 끝나지만 그 상처와 아픔을 장애와 더불어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회에서 잊지 말아 달라는, 그리고 그 아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절실한 바람이었어요. 지진이라는 되풀이되는 자연재해를 막을 수는 없지만 그 피해의 규모를 최대한 줄이고 복구를 위한 지원체계를 강구하고 있는 일본의 자세, 그리고 재해를 당한 당사자들도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며 사회에서의 입장을 확실히 주장하려 하는 태도에서 시사 받을 점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작성자글. 변미양/지체장애인. 오사카에 거주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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