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제 7회 인권영화제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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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영화제의 홍수 속에 더 이상 열리기를 바라지 않는 이상한 영화제가 있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주최하는 인권영화제가 바로 그것. 지난 5월23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소격동 서울아트시네마와 신문로 아트큐브에서 동시에 열렸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주최하는 인권영화제는 올해로 7회 째다. 그간 우여곡절도 많았다. 제2회 인권영화제에서 상영금지작품인 <레드헌트>를 상영했다가 집행위원장이었던 서준식(52)씨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또 인권운동이라는 영화제의 태생적 숙명에 따라 철저히 상업성을 배제하다 보니 매년 부딪히는 제정상의 어려움은 늘 숙제로 남는다. 그리고 영화제 하면 자연스럽게 즐기는 축제의 분위기를 떠올리는 사람들을 상대로 인권을 주제로한 고발과 저항정신이 담긴 영상들을 봐달라고 설득하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
그러나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인권영화제는 성황을 이루었다. 기본적으로 인권문제에 관심이 깊은 사람들과 국내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필름을 상영한다는 것이 영화매니아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영화제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영화제 초기에는 표현의 자유와 심의문제에 집중했지만 7회 째를 맞는 올해엔 △이주노동자의 인권 △미국의 전쟁범죄 △해외 일반 상영작 △한국영화 등의 4개의 섹션을 구성해 다양한 영역의 인권을 담은 영상들이 관객을 맞이했다.
<영화가 이야기하는 "장애우의 인권">
총 33편의 상영작중 함께걸음이 특히 관심을 가진 작품은 역시 장애우의 인권을 다룬 작품인 <거북이 시스터즈>와 <버스를 타자>이다. 주말 상영관답게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던 5월 24일 토요일 오후 이 두 작품이 연이어 상영되었다.
<거북이 시스터즈>와 <버스를 타자>는 둘다 열악한 장애우의 인권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서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영화들이다. 영화 느낌 상 <거북이 시스터즈>가 일기라면 <버스를 타자>는 기록이며, 관객에게 다가가는 방식도 <버스를 타자>가 ‘고발’이라면 <거북이 시스터즈>는 ‘공감’을 매개로 하고 있다. 영화제 총기획을 맡고 있는 김정아씨는 작품 선정 소감에서 “<버스를 타자>는 투쟁의 면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가치가 있으며 <거북이 시즈터즈>는 ‘어둡지 않은 장애인 영화의 미덕’을 보여주어 좋았다”고 밝혔다.
<거북이 시스터즈>는 독립을 선언하고 서울 고덕동 한집에 모여 사는 세명의 장애우의 일상을 그린 영화다. 전동휠체어를 다리 삼아 살고 있는 이들. 영화는 이들의 일상 그 자체가 ‘전쟁’이라고 말한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목숨 걸고’ 지하철 리프트에 오르고, 밥 한끼를 해결하기 위해 턱이 없는 음식점을 찾으러 여름 한낮에 ‘목숨 걸고’ 온 종일 헤맨다. 그렇다고 이들의 모습이 슬픔과 분노에 차 있는 것만은 아니다. 세세한 설명의 나래이션과 이들을 향한 카메라의 밝은 시선은 그네들의 ‘특별하지도, 다르지도’않은 일상을 진솔하게 담아낸다. 그래서 누군가의 일기를 살짝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서로 집안 일에 신경쓰지 않는다며 툴툴거리면서 감정의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여성이며 장애우라는 이중고를 안고 있는 이들은 스스로를 거북이 시스터즈라 칭한다. 거북이는 느리다. 그렇다고 결승점에 도달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거북이는 잘난척 하는 토끼와의 경주에서 당당히 승리하지 않았던가. “내 삶은 내가 선택한다”“내 삶의 중심은 나다”는 영화 속 대사는 이들이 왜 가족의 보살핌이라는 편안함을 거부하고 힘겨운 독립을 선언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바로 이어서 상영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 보고서-버스를 타자>는 앞서 상영된 <거북이 시스터즈>와 사뭇 다른 느낌으로 진행된다.
영화는 장애우가 지하철 리프트를 타다가 추락사 했다는 뉴스의 보도멘트와 함께 시작된다. 이어 비장한 음악과 함께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장애우들의 격렬한 시위의 모습이 화면 가득 채워진다. 이들의 요구는 소박하다. “버스를 타고 싶다”는 것. 남들처럼 버스를 타고 싶다는 이 소박한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이들은 온몸을 쇠사슬로 묶고 자신의 몸을 가해하면서 까지 시위를 감행한다. 그러나 공권력은 이들의 휠체어 바퀴를 번쩍번쩍 들어 올려 사과궤짝 나르듯 이들을 치워 버린다.
카메라는 이들의 고통에 찬 비명을 조금의 감정의 흔들림 없이 너무도 담담하게 담고 있다. 무섭게까지 느껴지는 카메라의 담담한 시선은,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더 생생하게 다가오게 만든다. 장애우들의 절규가 결코 과장이 아닌 ‘현실’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이어서‘장애인이동권연대’가 정부부처와의 면담을 시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정부처의 책임자를 만나기 위해 숱한 곡절을 겪었건만 간신히 책임자를 만나도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부처 책임자들의 모습은 이 사회에서 소수자들이 발언하기 위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말미에서 이러한 정부부처의 행태를 자막을 이용해 절묘하게 꼬집는다. 건설교통부 회신과 보건복지부 회신의 내용을 자막을 통해 보여주고
“장애인복지 관련 예산은 소관부처인 보건복지부가 확보해야 할 것으로 본다”
는 건설교통부 회신 글에서 밑줄 친 곳을 건설교통부로 바꾸면 바로 보건복지부의 회신으로 둔갑하는 상황을 연출한 것. 덧붙일 것도 뺄 것도 없이 부처이름만 맞바꾼 것이다. 감독의 기지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감독, 관객과 만나다>
<거북이 시스터즈>와 <버스를 타자> 상영 이후에는 ‘감독과의 대화’라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되었다. 먼저 <거북이 시스터즈>의 감독 이 영 씨와 영화 속 주인공(?) 정영란 씨가 자리를 함께 했다. 정영란 씨는 영화를 통해“기존의 미디어에 의해 왜곡된 장애여성들의 모습을 바로 잡고 싶었다”면서 “비장애우 집단인 ‘여성영상집단움’과 장애우 집단인‘장애여성공감’이 함께 만든 영화라는 점이 ”고 강조했다. 이 영 감독은 “대부분은 감독이 배우를 캐스팅 하는데 <거북이 시스터즈>는 배우가 감독을 캐스팅했다, 나는 면접보고 통과한 감독이다”고 말해 관객들의 웃음 자아냈다.
이어서 장애우 이동권 투쟁을 다룬 <버스를 타자>의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는 박종필 감독 대신,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 박경석씨가 나와 관객들과 만났다. 상영 장에는 유난히 어린이, 청소년 관객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기존 미디어에 의해 미화된 장애우의 모습에만 길들여져 있다가 다큐멘타리의 ‘진짜’현실을 접하고 퍽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박경석씨는 최근 많은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송내역 시각장애우 참사는 예견된 일이었다면서 장애우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문제가 정부 당국에서 책임지고 관할하는 곳이 없다는 이유로 개선되지 않고 정체된 상태로 있음을 지적했다.
한 관객은 “장애우와 뜻을 함께 하기 위해서 비장애우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이에 박경석씨는 “장애인이동권연대에서 벌이는 지하철 투쟁 등을 ‘일반 시민의 발목을 잡는다’는 식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과 상충되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목숨을 건 생존권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과 평등권과 인권의 문제를 다 같이 쟁취해야 하는 것임을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글 함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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