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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민의 테마에세이]다시 그 음악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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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말줄임표를 덧붙이고 싶은, 나 자신의 십대와 이십대를 포용하던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내게 있어서 1980년대는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과, "작은 배로는 멀리 떠날 수 없"다는 독백이 맴돌던 나날이었다. "그대를 만나기 위해 많은 이별을 했는지 몰"랐기에 스스로를 애써 위로했지만, "세월이 흘러가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아직 모르"는 절망감 때문에 힘없이 주저앉았다가 일어섬을 반복해야 했던 우울한 시기였다.
  "바보 같은 미소"를 짓는 얼굴도, "나의 옛날이야기"를 넋두리처럼 털어놓던 입놀림도,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들고 서 있던 나의 손길마저도 "홀로 된다는 것"으로 마무리 될 수밖에 없었음이 기억난다. "겨울바다"에 대한 "향기로운 추억"도, "바람에 옷깃이 날리듯" "혼자 걸어가는 거리"도, "정녕 그대를" 잊지 못하던 "도시의 피에로"처럼 "새벽기차"에 또다시 몸을 실어야 하는 나날이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냥 외로워서? 만남과 이별의 여운 때문에?
  굳이 소아(小我)적인 발상으로 당시의 생활을 비하시킬 필요는 없다. 그 당시는 자기 하나를 바라보고 고집하기엔 너무나도 큰 벽이 존재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가 있었고, "억눌린 민중의 해방을 위해" 출정가를 목 놓아 부르던 투쟁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했었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와 "반전 반핵 양키 고 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 회색빛 마음과 그 하늘이기도 했다. "오직 한 가닥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써야 했던 그 목마름으로 우리 모두는 치열하게 생존했었다.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그렇게 광야를 꿈꾸며,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리라"고 선언하던 다짐들이었던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노래들을 찾아서 듣고 싶었다. 내 삶의 적지 않은 기간을 함께 했던 선율이었는데도, 그 제목마저 떠올린 적 없이 긴 세월을 그냥 흘려보냈음이 문득 떠올랐다. 그랬다는 사실이 이제야 실감으로 살아났던 것이다.
  그 노래들을 잊고 지냈다는 것은 그 시절의 나를 잊고 지냈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그 시절의 나를 잊고 지냈다는 것은 지금의 내 삶이 쳇바퀴 도는 현실의 늪에 그대로 매몰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동진, 해바라기, 들국화 그리고 김현식 등의 이름들이 하나둘씩 되살아난다. 여전히 노래와 함께 사는 이들이 있고, 아주 멀리 떠나버린, 또한 그 이후의 소식을 접해 보지 못한 이들도 여럿 떠오른다. 공통분모처럼 눈앞에 피어나는 그들의 이름은 십 년, 아니 이십여 년 전의 내 삶을 아득한 파노라마 영상처럼 관조하게 만든다.
  조동진 노래를 정말 좋아하던 내 젊은 삶이 있었다. <작은 배>, <제비꽃>, <겨울비>, <진눈깨비>, <너의 노래는> 등은 거의 매일처럼 내 방안에 울려 퍼지곤 했다. <갈 수 없는 나라>, <이젠 사랑할 수 있어요>, <내 마음의 보석상자>, <슬픔만은 아니겠죠> 등의 해바라기 노래 또한 내 삶의 적지 않은 부분을 채워 준 바 있었다.
  어쩌면 90년대 초부터 이 땅의 대중음악이라는 게 특정한 어느 장르 일색으로 돌변해버린 이후로, 스스로의 삶을 일구던 예전 노래들마저 함께 접으며 묻어두었는지도 모르겠다. 갈수록 빨라지는 대중가요의 리듬처럼, 나 또한 덩달아서 생활의 가속 패달을 무작정 밟게 된 모양이다. 비유나 은유도 없이 직설법으로 내뱉는 노랫말 때문에, 음악으로 휴식 취할 마음 자체가 사라짐을 한숨처럼 느끼곤 했다. 결국 나만의 음악을 잃어버림으로써, 과거와의 유대감은 허망하게 단절되어버렸던 것이다.

  "어떤 장르의 음악이 대중가요의 주류를 형성하는가?"
  아주 무거운 주제를 논하는 토론장 분위기 같은 질문이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위의 질문은 아주 중요한 문제 제기라고 생각한다. 다른 분야와 달리, 음악은 언제나 그때그때의 시대상을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느낌 없이 따라 부르던 노래의 가사를 찬찬히 음미해 보면, 그 노래가 나왔던 시대의 현실을 간접적이나마 체험할 여지를 만들어 준다. 그게 바로 노랫말인 것이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인 <사의 찬미>는 그 노래가 발표되던 시대의 암울함을 대변하고 있다. "철사 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를 울먹이며 읊조려야 했던 시대 또한 그 느낌을 지우지 못할 것이다.
  <단장의 미아리고개>에서 "단장(斷腸)"이라는 단어의 뜻이 뭔가.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이나 괴로움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의 어머니 세대나 할머니 세대에선 그 단어가 자기 자신의 얘기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분명히 있었다는 의미이다. 가장 사랑하던 그 사람이 철사 줄에 꽁꽁 묶여 끌려가는데, 돌아올 길이나 재회의 기약도 없는 절박한 상황인데, 그걸 어찌할 방법도 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력한 심정을 어찌 일상의 언어만으로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하루에도 수백 곡씩 쏟아져 나오는 오늘날의 음반시장에서, 우리 인생에 진정으로 간직될 노래가 몇 곡이나 존재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물론 "돈이 되고 확실하게 대박 터져서 인생의 팔자를 고치는" 그런 음악이 현실적인 목적에선 최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악은 그 나라의 상황과 국민성, 또한 시대 흐름을 주도하는 언론매체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법이다.
  "립싱크"를 신봉하는 세대는 자기 능력을 실제 실력으로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외면적인 시각으로 확인되는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주목한다. 가수가 노래를 하기 위해 땀 흘리는 게 아니라, 음악에 입 모양만 맞추며 춤을 추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는 가수, 발성 연습보다 안무 연습에 치중하는 가수, 그런 가수가 더 인기 있고 유명해지는 세상이 요즘의 음반시장이라는 곳이다.
  글은 쓰지 않고 술자리에서 거드름만 피우는 소설가가 있다면, 정작 그림은 그리지 않고 미술의 심오함만 입으로 강조하는 화가가 있다면, 피나는 연습 대신 몸매 가꾸기에만 열중하는 무용가가 있다면, 직접 촬영은 하지 않고 남의 작품에 대해 험담만 늘어놓는 사진가가 있다면, 연기력도 없이 화장하는 데에 정신 없는 연기자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은 그들을 무엇이라 평가 내리게 될까.
  가수가 노래 대신 안무 연습에 보다 더 비중을 둬야 하는 세상이 됐다. 사소한 음정의 불안함은 녹음 작업을 통해 기계적으로 완벽한 수정이 가능한 첨단 기술의 세상이다. 통기타 하나만으로도 영혼을 감싸 주던 7,80년대 음악과는 달리, 컴퓨터로 제작되는 음원과 녹음은 듣는 일반 사람들까지도 음악적인 내용보다 형식에 치중하게 만들었다. 즉, 화려하게 치장된 음악을 들으며, 립싱크의 율동만으로 가수의 가치를 평가내리는 현실이 된 것이다.
  이젠 그런 세상이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우선이 됐다. 어느 복권 한 장의 유혹과 같이, 단숨에 "인생 대역전"을 바라는 마음들로 많은 이들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대박"이라는 단어가 모두의 마음 한구석에 허상의 마약을 뿌리내리고 있다. 착실하고 성실하게 정도(正道)를 걸을 필요가 없다. 더 빠르고 더 편하게, 더 확실하면서 단번에 인생을 뒤바꿀 수 있다는 방법이 모두의 눈과 귀를 마비시키는 게 지금의 현실인 것이다.
  우리는 어제를 곧잘 잊어버린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토양을 만들었듯이, 오늘의 내가 미래의 씨앗이라는 진리를 망각하는 분위기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단 한번의 대박이 내 삶과 가족의 운명마저 뒤바꿔놓는다고 이젠 믿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푸르른 꿈과 희망으로 살아야 할 청소년들의 입에서조차 대박의 유혹이 주된 관심사로 거론된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며 무슨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난감해진다.   
  나는 청소년기의 내가, 캠퍼스를 거닐던 내가 왜 그 음악에 열중했던가를 먼저 밝혀내고 싶다. 인생에 대한 스스로의 의지가 가장 강렬했던 그 시절의 꿈과 희망을 지금이라도 되찾고 싶기에, 나는 그 당시의 "나"하고 다시 재회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그 시절의 그 음악을 듣는다. 그때의 감정과 여운을 살려내고, 그렇게 단절됐던 기억을 찾아내기 위해서…….
  이 글을 적는 지금, 내 귓가에는 80년대 중반에 발표된 어느 그룹의 노래가 인생의 절규처럼 들리고 있다. "하지만 후횐 없지. 찾아 헤맨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혼자만의 한숨과 함께, 자꾸만 그 노래를 반복해서 듣게 되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채지민 (시인·소설가)

 


 

작성자채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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