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대를 울린 여자로 다시 우리 곁에 선 최옥란
본문
기억하는가?
작년 이맘때인 3월 26일 장애우 생존권 쟁취와 기초생활보호제도의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해 싸우던 뇌성마비 장애우 최옥란(36세) 씨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끝내 음독 자살했다. 당시 한 신문은 그이의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최옥란이란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1970년 청계천에서 다른 모든 노동자들이 창백한 얼굴로 쓰러져가고 있을 때 "노동기본권을 지켜라"고 외치며 분신 자살하였던 전태일을 기억하듯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슬프고, 외롭고, 소외된 존재였지만 살아보려고 홀로 몸부림쳤던 한 장애 여성이 죽음으로 호소한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는 그 절절한 외침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한겨레신문 2002년 3월 30일자 사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올해 4월 최옥란 씨가 다시 부활해 우리 앞에 섰다. "시대를 울린 여자"라는 제목을 단 한 권의 책으로 살아나 우리 곁에 왔다.
아마 이 책은 빈민 중증장애우로 태어나 장애 운동을 하다가 스러져간 한 장애우의 삶과 죽음을 다룬 최초의 평전으로 기록될 것이다. 흔한 ‘장애를 극복 한’이 아니라 장애를 가지고 ‘장애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다가 한 떨기 꽃으로 진’ 한 장애우의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가 이 책인 것이다.
최옥란 그이는 이 책에서 이 땅에서 장애우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래서 왜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들려주고 있다. 생전의 그이의 삶은 그이가 몸담았던 울림터, 뇌성마비연구회 바롬, 이동권 투쟁, 수급권 투쟁 등에서 보듯 장애 운동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빈민, 거기에다 중증장애우로 태어나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애썼던, 말 그대로 처절했던 삶이기도 했다.
그러면 최옥란 그이는 누구일까?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았길래 열사라고 불리는 걸까?
최옥란 씨를 다시 우리 곁에 서게 한 이는 현직 신문기자인 세계일보 김용출(34세) 기자다. 재작년인 2001년 장애우 참정권 침해실태에 대한 집중적인 보도로 엠네스티 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이는 이번에 최옥란 씨의 삶과 죽음을 다룬 이 책을 펴냄으로써 장애우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작년 6월 어느 날 이었어요. 월드컵 기간이라 매일 밤늦게 집에 들어갔는데 우연히 집에 배달돼온 함께걸음을 읽게 됐습니다. 책에 최옥란 씨의 삶과 죽음을 다룬 기사가 있었는데 읽고 나서 큰 감동을 받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내가 평소에 장애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너무 몰랐구나, 반성을 하면서 생각 끝에 최옥란 씨를 역사에 다시 살려보고 싶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7월말부터 작업을 시작했는데, 평일에는 체육부 기자로 일하면서 틈틈이 자료를 모으고, 휴가나 공휴일 내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가방 메고 나가 취재를 했습니다. 그렇게 8개월간 작업을 해서 책이 나오게 된 거죠.”
- 저자로서 최옥란 씨가 자살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됐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 제도적인 모순과 최옥란 씨가 가지고 있던 인간적인 고민과 외로움 등등, 책을 읽다보면 최옥란 씨가 자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나오는데 기존 설명은 수급권과 양육권의 갈등 때문에 죽음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지만 제가 취재한 결과는 죽음을 앞둔 당시 최옥란 씨는 이미 양육권을 선택했고, 양육권을 주장했지만 쉽지 않아서 자살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궁극적인 원인은 사회제도적으로 장애우가 아이를 가지고도 키울 수 없는 부분에 대한 항의, 그리고 장애우로서 사는 어려움에 절망해 죽음을 선택한 것이죠”
- 생전의 최옥란 씨의 삶은 빈민, 여성 장애우의 전형적인 삶이라고 보여지는데 그 점을 의식했나? 가령 책을 보면 수용시설 얘기도 나오고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노점을 하는 얘기도 나온다. 최옥란 씨 삶의 이야기가 무척 세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말해서 최옥란 씨의 삶이 하나의 전형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책을 쓰면서 견지했던 건 기존 전기는 너무 한쪽으로 미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최옥란 씨 삶을 다루면서 최옥란 씨가 장애우 운동가로만 비쳐지는 부분을 경계를 했습니다. 최옥란 씨는 운동가였을 뿐만 아니라 여성이었고 가정주부였고 한 아이 어머니이기도 했습니다. 또 다양한 이성편력을 가진 여성이었죠. 이렇게 총체적인 면에서 다양한 각도에서 최옥란 씨를 바라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책을 쓰면서 어려움이 있었다면?
“전화 인터뷰까지 합치면 백 명 넘게 만났는데, 대부분은 우호적이었지만, 인터뷰를 거부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최옥란 씨의 전 남편은 인터뷰를 거부했고, 특히 노점을 했던 부분에서 진실에 접근하기가 힘들었는데, 생전의 최옥란 씨는 전태일 씨처럼 일관된 삶을 산 게 아니라 장애우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겠지만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 모습에 대해 어떤 사람은 최옥란 씨는 운동가가 아니다. 왜 열사냐고 부르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붙잡고 토론하고 설득을 해야 했는데, 그 과정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 최옥란 씨의 삶에서 가슴이 아팠던 부분을 꼽는다면?
“몇 군데가 있는데 제일 처음은 최옥란 씨가 장애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을 못합니다. 그때 최옥란 씨가 충격을 받고, 이대로 살 수 없다며 벽을 잡고 일어서고 그러는데 그 모습 보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또 생계비 26만원 얘기가 나오는데, 정부에서 26만원 주면서 생활하라는 부분, 제 용돈이 30만원인데, 한 가정이 26만원으로 생활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최옥란 씨가 마지막으로 죽음을 선택했던 그 순간,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웠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많이 울었습니다”
- 전태일과 최옥란의 삶을 비교한다면?
“전태일 씨는 너무 거대한 인물이죠. 그에 반해 최옥란 씨는 이제 역사에 첫 발을 디뎠고,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최옥란 씨에 대한 평가는 분명히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장애 운동이 1988년 본격화 됐는데,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수급권 이동권 등 운동의 계급적인 성격이 굉장히 강해졌거든요. 그 시대를 가름하는 중심에, 운동적 삶과 진정성 변혁성이 획득되는 지점에 최옥란 씨가 서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평전 저자로서 지금 이 땅의 장애우가 서 있는 자리는 어디라고 생각하는지?
“취재 과정에서 한 분이 학생운동을 하거나 노동운동을 하거나 또 빈민운동을 하거나 비장애우의 경우 운동을 하다가 멈추고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즉 생활인으로 되돌아갔을 때 자연스럽게 사회인으로 융합될 수 있고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받지만 최옥란 씨는 운동에서 멀어져서 생활인으로 갔을 때 장애 때문에 생활 자체가 또 하나의 투쟁이었고, 그 자체가 생존의 문제였다고 얘기하더군요. 이게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이 땅의 장애우가 서 있는 지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글 사진 이태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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