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지민의 테마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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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관찰하기 좋아하고, 관심이 가는 모든 분야에 자기 감정을 불어넣곤 했죠. 만화를 보면 만화 주인공이 됐고, 영화를 보면 그 영화 속 세상에 들어가서 살곤 했습니다. 밤하늘 별을 보면 우주비행사가 됐고, 좋은 꿈을 꾸고 나면 깨어난 뒤에도 그 꿈 안에서 하루를 길게 보냈습니다.
소년은 나름대로의 계획이 아주 많았죠. 또래 친구들의 장래희망이 대통령, 과학자, 의사, 장군이라 불려지던 시절에 소년은 항상 자기 감정을 몰아넣고 표현해 낼 직업 분야를 떠올렸습니다. 만화가일 때가 있었고, 영화감독일 때도 있었습니다. 사진작가를 희망하다가 음악가를 갈망하기도 했고, 글을 쓰는 작가 아니면 반드시 화가가 되리라는 희망 모두를 그때마다 일기장에 기록하며 다짐하곤 했었죠.
어떠한 미래를 그려 보든 간에, 소년의 가슴속에선 무언가를 표현하고 발표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열망했습니다. 왜 그런 분야를 고집했는지, 이제야 조금씩 돌아볼 만한 나이가 된 것 같군요. 돌이켜보면 소년을 감싸고 있던 환경들이 모두 다 주어진 틀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소년이 원치 않던 방향의 미래를 미리부터 강요하던 아버지의 틀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허용된 것보다는 금지된 게 더 많음을 깨달아야 하는 상황에서 소년이 안주할 공간은 꿈을 키우는 것밖에 없었죠. 아무도 알지 못하던 그 꿈을 보듬고 마음 깊숙이 간직하며 지내는 게 그 당시 소년에겐 생활의 전부였다고 기억됩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진학하던 무렵, 소년의 가슴에는 하나의 얼굴이 간직되기 시작했습니다. 설익은 풋사랑이었지만, 그래도 그 얼굴로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하루가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죠. 그리움을 간직하게 된 소년의 눈에는 처음으로 시(詩)라는 게 읽혀지고 있었습니다. 아니, 시라는 존재를 그제야 마음으로 느끼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그 짧은 글 속에 담겨 있다는 게 마냥 신기하기만 했던 거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을 겁니다. 중학교 생활을 마무리 짓던 무렵, 소년은 친구로부터 한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지에는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라는 조금 긴 시가 적혀 있었죠. 그 작품을 읽게 된 순간부터, 소년의 눈과 마음은 예정에도 없던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그 시만 붙잡고 읽으며 감탄의 입놀림을 반복했었죠. 한편의 시가 이렇게 깊이 가슴속에 새겨질 수도 있는 것이구나……. 이후로 그 작품은 소년의 삶을 시 내용과 똑같이 살게끔 만들어 버렸습니다.
서점에 출입하는 버릇도 그 무렵에 생겨났을 겁니다. 그 시를 쓴 시인의 작품집을 찾아 읽고 또 읽는 나날이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시인의 또 다른 시집들을 계속 구입하면서, 소년은 그의 작품을 거의 암송할 만큼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암송하던 시들을 일기장에 옮겨 적는 게 당시의 소년에게는 최고로 중요한 작업이자 일과였죠.
모든 작품들이 소년의 마음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적어놓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자기 자신을 투영해 볼 만큼의 대상을 만난다는 건 극히 드문 일이겠죠. 소년에게는 그 시인의 작품 세계가 자신이 꿈꾸어 왔던 삶의 모습이었고, 그런 글을 쓰는 시인이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희망과 위로를 얻게 된 것이었습니다.
남 몰래 간직하던 첫사랑이 영원의 상실감으로 탈바꿈되던 무렵, 소년은 어린이가 아닌 젊은이로 성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입에선 여전히 시인의 작품들이 암송되고 있었고, 개인적인 모든 글쓰기가 그 시인의 작품처럼 짧은 문장으로 길게 이어지기만 했죠. 기쁨보다는 슬픔으로, 회한으로, 절망으로, 미련으로 모든 걸 바라보게 된 젊은이의 눈에는 현실의 세상마저 눈물에 덮인 공간일 뿐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된 젊은이는 강의실을 찾으며 두리번거리던 복도에서 바로 그 시인과 정면으로 마주치는 엄청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인생을 지배하던 언어들의 창조자가 눈앞에 나타나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죠. 예상도 못했던 그 마주침은 말 그대로 "시간이 정지한다"는 느낌 그대로의 순간이었습니다. 여러 사진을 통해 익숙해진 둥근 모자와 파이프, 창밖으로 던져지던 그의 시선은 그 무엇과도 바꿀 방법 없는 절대적인 전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젊은이의 빈 시간은 그 분이 지나치는 길목에서의 서성거림이었습니다. 지나온 과거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은 작별"을 해야 했던 당시의 상황은 그 분의 언어들이 유일한 위안이었죠.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이었고, "우울이 흐린 날처럼 고이면 눈 내리는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는 게 생활의 전부였을 겁니다.
최루탄 내음으로 점철된 대학 생활 속에서, 그 젊은이는 존경하던 시인의 시 작품에 음악의 선율을 덧입히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뒤바꾼 작품들을 노래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죠. 기타의 선율과 건반의 리듬을 통해 하나씩 영글어지던 악보를 보며, 젊은이는 자신의 삶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곤 했습니다.
군 생활을 마치고 사회인으로 살아가면서, 그 젊은이는 시인의 작품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했습니다. 꿈속에서도 외울 만큼 익숙해져 있던 시들을 읽고 또 읽으며, 악보로 만들어진 시인의 노래를 부르며 살아갔던 거죠.
그러는 동안에 정말 많은 생이 흘러갔습니다. 젊은이의 나이는 서른을 훨씬 넘겼고, 현실에 대한 좌절과 일시적 성취의 흥분감, 더불어 돌아가지 못할 "본질적 자아(本質的 自我)"에 대한 가슴앓이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술잔을 비우기만 했습니다. 그러는 과정 중에도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기만 했죠.
시인의 시어(詩語)를 소중히 엮어서 악보로 적고 고치기를 11년, 마침내 그는 시인께 헌정 음반을 만들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육성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에 오셨던 시인의 말씀이 아직까지도 귓가에 선합니다. 예의 그 낙천적인 유머와 인생에 대한 역설적 긍정이 말씀마다 묻어났었죠.
"이젠 내가 내 삶을 제대로 살아왔다는 느낌이 들어. 진짜 제대로 된 삶을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나의 천적이 누군지 알아? 그건 바로 나 자신이야. 최선을 다하는 인생을 살아야 돼. 그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거지. 내 삶을 정리해 주는 제자가 있다는 게 너무 고맙고 기뻐서, 내가 제대로 살았다는 실감이 다시 한번 드는 것 같군."
이미 그 분의 인생 발자취를 좇아 작가로 살아가게 된 젊은이는 오랜 기다림이었던 음반으로 헌정의 의미를 전해드렸죠.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분의 시를 암송하며, 서른 후반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그 분의 삶을 자신의 삶과 비교하며 살아가고 있답니다.
어릴 적 그 소년, 그리고 성장한 이후의 그 젊은이가 지금의 제 모습임을 이 자리를 통해 고백합니다. 그 시인의 작품들은 제 삶을 규정지었고, 제 삶이 어느 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었으며, 그것을 거부하려 남 몰래 애쓰던 제 발걸음을 묶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불혹(不惑)의 나이를 바라보는 이 시점에 그 분이 남겨놓은 언어들이 제 삶의 언어로 점점 더 진하게 스며들고 있음을 이젠 미련 없이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편의 시가 한 인간의 삶을 뒤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그건 진정 가슴 아픈 일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의 의무를 가지고 작가들이 글을 써야 할 당위성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시인 조병화 선생님을 그렇게 만나게 됐고, 그 분의 작품으로 인해서 저의 삶을 살아오게 됐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그것이 삶이었기에, 그것이 제 인생의 운명이리라 믿었기에 이젠 돌아가기에도 너무 늦어진 이 시점에 선생님의 작품들을 또 다시 읽게 됩니다. 혹시라도 단 1퍼센트의 원망이 남겨진다면, 스스로에게 이런 얘기를 전해 주고 싶군요.
삶은 단 한번의 일회성(一回性)이기에 소중한 것이라고. 내 삶에서 그 분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시를 읽을 수 있었던 그 자체가 나의 운명이었다고. 그리하여 그 분과의 첫 만남이었던 한편의 시 작품에 내 삶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인생에서 순간은 영원을 말하는 것이라고…….
채지민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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