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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동화] 하느님도 실수를 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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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정확하게, 고루고루 공평하게. 바로 하느님이 세상을 경영하시는 방침이지. 하느님은 이 방침대로 행하려고 무척 애를 쓰셨어.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가 바뀌지 않았고 낮고 밤이 차례차례 돌아왔으며 꽃이 지고 열매가 맺혔고 어른이 되면 새끼를 낳아 기르며 세상이 질서 정연하게 돌아간 거야. 모두들 하느님의 뜻에 순종했으니까. 사람만 빼고. 그래, 늘 사람이 문제였어. 불만과 요구로 날이면 날마다 보채는 사람 땜에 하느님은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지. 골치가 지끈지끈하고 정신까지 산란했거든.

"아유, 귀가 따가워 못 견디겠군. 좋은 수가 없을까?"

 생각 끝에 하느님은 보드랍고 포근한 흰 구름을 조금 떼어서 귀를 꼭 막으셨단다.

"됐어! 이제 좀 조용하군."

 그제야 하느님은 방해받지 않고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지. 때는 바야흐로 겨울이 끝나고 봄의 차례였거든.

"우선 차가운 겨울 바람을 불러들이고 다음엔 네 차례가 되겠구나."

 하느님은 아래 세상에 나가 있는 것들을 다시 부를 때 쓰는 나팔을 크게 불어 찬바람을 불러들이고 병아리 솜털처럼 보드랍고 연한 햇살을 골라 내보내셨단다. 세상은 금방 밝고 따스한 기운으로 채워졌지. 아래 세상뿐 아니라 하느님이 계신 하늘 위까지도.

"아 - 흠."

 햇살이 따스하게 비추자 하느님은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하품이 나오는 것이었어. 그 동안 통 잠을 이루지 못했었는데 귀를 틀어막고 시끄러운 소리를 듣지 않으니까 저절로 잠이 오지 뭐야.

"내가 이른 대로 차례를 지켜서…알겠지?"

 어린 시종에게 당신의 일을 대신 시키고 하느님은 스르르 잠이 드셨어. 눈치 빠른 흰 구름이 소리 없이 달려와 푹신한 침대가 되어 드렸지. 하느님은 모처럼 푹신한 구름 침대에 몸을 맡기고 기분 좋게 주무셨어. 손에 힘이 풀리고 늘 들고 있던 나팔이 떨어져 구름 속에 파묻히는 것도 모르고서 말이야. 아무도 하느님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았어. 바람도 하느님이 깰세라 조심조심 지나갔으니까.

처음 얼마 동안은 모든 게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어. 봄 햇살 아래로는 아지랑이가 피었고 보드라운 바람이 언 땅을 녹이면 가끔씩 가랑비가 촉촉이 저셔 주었지. 다음엔 얼레지며 노루귀, 복수초, 현호색, 꿩의 바람꽃이 보석 같은 꽃을 피웠고.

 그런데 하느님은 거기까지밖에 준비를 해 놓지 않으셨던 거야. 그것을 알 리 없는 어린 시종은 한껏 하느님 흉내를 내며 말했지.

"자, 다음!"

 하지만 아무도 앞으로 나서지 않았어.

"도대체 자기 차례도 모르는 게 누구야! 너니? 너야?"

 기분이 상해 시종은 종주먹을 댔지만 모두 머리를 내젓는 게 아니야. 뭐가 잘못된 게 분명했지.

"하느님! 다음 차례는 누구지요?"

 조심스레 시종이 물었지만 잠에 취한 하느님은 아주 귀찮아하셨어.

"거기 순서대로 다 정해 놨거늘 왜 이리 성가시게 하느냐?"

 시종은 하느님을 더 깨울 수 없었지. 그렇다고 언제까지 하느님이 깨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고.

"에이, 할 수 없다. 너희들이 나가라!"

어린 시종은 한꺼번에 매화랑 산수유랑 개나리 진달래의 등을 떠밀어 내보냈어. 그런데 말이야, 그 꽃들이 세상에 닿자 여기 저기서 야단이 났단다. 글쎄 꽃들이 잎을 달지 않았지 뭐니.

"아유, 난 몰라! 발가벗은 채 세상에 나왔으니 어쩌면 좋아!"

 꽃들은 부끄러워서 옹기종기 다닥다닥 한데 엉겨 붙었지. 그리고 위를 향해 말했어.

"문제가 생겼어요. 어떻게 좀 해줘요!"

"쉿 - 조용. 하느님 주무시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시종은 아래를 향해 근엄하게 꾸짖었어. 그렇다고 꽃들은 가만있을 형편이 아니었지. 그래서 한꺼번에 목소리를 합해 큰소리로 외쳤어.

"이대로 있을 순 없다구요!"

 느긋하게 손 차양을 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던 시종은 그때까지도 쿨쿨 단잠에 빠져 있는 하느님을 다급하게 흔들어 깨웠어.

"하느님! 좀 일어나 보세요. 지금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조금만, 조금만 더 나를 내버려두렴. 아, 꿀맛이야. 음냐 음냐…"

 하지만 하느님은 몸을 돌려 누우며 손을 내젓지 뭐야.

"지금 이렇게 태평하게 낮잠이나 주무실 때가 아니라니 까요!"

 시종은 하느님 귀를 틀어막고 있는 구름 마개를 빼고 큰소리로 외쳤단다.

"아이쿠! 귀청이야!"

 하느님은 그제야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면서 눈을 뜨셨어.

"보이세요? 저어기…"

 시종이 가리키는 대로 아래를 굽어보던 하느님은 그만 아연실색하여 당신의 이마를 치셨단다.

"아뿔싸! 이 일을 어쩐다? 하도 졸음이 쏟아지는 바람에 잎을 다는 걸 깜박했지 뭐냐. 하느님은 부리나케 겨우내 쓰고 조금 남아 있던 찬바람과 흰눈을 세상으로 내보내셨어.

"멈추라고 해라. 어서 가서 꽃이 피지 못하게 하란 말이다! 빨리! 빨리!"

 명령대로 찬바람과 눈은 벙글어지는 꽃들에게 매서운 꽃샘 추위를 몰아붙였지.

"네 차례는 지났는데 또 왔니? 제발 이러지 마. 추워 죽겠어!"

"나도 어쩔 수 없었어. 하느님의 명령이니까."

 꽃들을 몸을 웅크리며 울상을 지었지만 찬바람과 눈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지.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하느님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씀하셨어.

"저런! 쯧쯧쯧쯔… 다 얼려 죽이겠구나. 도로 불러와 잎을 달아 줘야겠는데 내 나팔. 내 나팔이 어디 갔느냐?"

 하느님은 꽃들과 찬바람을 불러들이려고 정신없이 나팔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어.

"아무래도 안되겠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야, 뭐. 가장 좋은 거라면 직접 가서 해결하는 거겠죠."

"그렇지?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겠지?"

 시큰둥하니 내뱉는 시종의 말을 하느님이 반갑게 되받으시지 뭐니. 그리고는 그윽한 눈길로 시종을 바라 보셨단다.

"제가요? 아이 말도 안돼요!"

 펄쩍 뛰는 시종에게 하느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셨어.

"하느님도 아시잖아요.? 전 날개도 없고 아래 세상에 적합하게 생기지도 않았다는 걸."

"그런 건 걱정할 것 없다. 네게 다 생각이 있으니까."

아무리 발뺌을 해도 하느님은 물러서지 않으셨어. 아주 간단히 어린 시종을 한 마리 새로 만들어 버리셨는 걸.

"이런다고 제가 뭘 어떻게 하겠어요! 오직 하느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인데."

"글쎄 내가 다 알아서 조치를 한다니까 그러는구나. 네 노래 속에다 특별한 신호를 넣을 것이다. 그러니까 넌 그냥 꽃나무 가지에 앉아 노래만 부르면 돼. 그러면 네 노래가 닿은 자리에서 잎이 돋을 테니. 알겠지?"

 시종은 더 버틸 수가 없었어. 하느님의 뜻에 따라 날개를 펄럭이며 땅으로 내려갔지. 그리고는 닥지닥지 꽃들이 웅크리고 있는 나무를 찾아다니며 노래를 불렀단다.

"삐륵 삐륵 삐르르륵…"

새의 노래가 닿은 가지마다 정말로 연둣빛 새잎이 피기 시작했지. 새는 열심히 노래를 불렀어. 그 노래는 하느님의 침대가 되어 주었던 구름에게도 들렸지. 구름은 아래 세상에서 노래를 하는 새가 하느님의 시종인 걸 금방 알아보았어. 구름은 낮게 내려가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넌지시 물어 보았단다.

"네 모습이 왜 그러니? 뭐하고 있는 거야?"

"하느님이 주무시는 바람에 내가 이렇게 됐단 말야! 하여튼 하느님의 그 나팔만 있었어도 내가 이런 짓까지는 안하는 건데…"

구름은 그때야 생각난 듯이 말했어.

"하느님의 나팔? 그거 나한테 있는데."

"그게 어떻게 너한테 있어?"

"응, 침대가 되었을 때 하느님이 떨어뜨린 걸 모르고 그냥 갔지 뭐니. 자꾸 옆구리가 배기고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봤더니 바로 그 나팔이잖니."

"야! 그런 걸 가지고 그렇게 한가하게 돌아다니면 어떻게 해!"

 새는 톡 쏘아붙였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구름이 정말 얄미웠거든.

"그러지 않아도 지금 갖다 드리려던 참이야."

잔뜩 약이 올라 씩씩거리는 새는 아랑곳 않고 구름은 둥실둥실 위로 올라갔어.

"이게 떨어져 있었지 뭐예요. 찾으시는 줄 알았으면 더 빨리 왔을 텐데…"

구름은 하느님에게 나팔을 꺼내 드렸지.

"오, 내 나팔이로구나. 그게 어디 갔나 했더니 너한테 있었구나. 어서 이리 다오."

 나팔을 도로 찾은 하느님은 너무 기쁘셨어.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크게 크게 나팔을 부셨단다.

"뿌우! 뿌우! 뿌우!"

 나팔 소리는 우렁차게 아래 세상으로 울려 퍼졌지. 잎새 없이 핀 꽃들도, 노래로 잎을 피우던 새도 그 소리를 들었어.

"얘들아! 하느님이 부르신다. 빨리 가자!"

 하느님을 거역하지 않는 꽃들은 한꺼번에 하늘로 날아올랐단다. 물론 새도 노래를 멈추고 그 뒤를 바싹 따랐고. 그때 물끄러미 아래를 내려다보던 하느님이 그걸 보고 소리치셨어.

"어어어… 그게 아니야!"

 엉겁결에 하느님은 하늘로 들어가는 문을 쾅 닫으셨단다. 꽃들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아름다운 꽃보라로 흩날렸지. 새는 햇살 오선 위에 연둣빛 선율을 찍고 있고. 하느님의 실수 때문에!


 

 

 

 

 

글 정진숙(동화작가)

작성자정진숙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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