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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외짝 양말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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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산타할아버지는 아파트 20층에 선물을 넣어 주고 말했습니다.
"이것으로 올해 일도 다 끝났다. 이제 시간만 돌려놓으면 되겠어."
그리고는 커다란 시계를 꺼내어 드르르륵 돌렸어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산타할아버지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 그 많은 일을 하룻밤 새에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크리스마스 전날 밤을 길게 늘여 놓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일을 다 마치면 원래의 시간으로 맞춰 놓는 것이지요.

산타할아버지가 시간을 제대로 맞추자 장식 전구들은 다시 반짝이며 세상을 찬란하게 비추었고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노래들이 들려 왔습니다.
"모든 게 딱 맞춰졌군."
산타할아버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전에 비하면 오늘 일은 반밖에 안됐지만 산타할아버지는 몹시 피곤했습니다.
"자, 우린 어서 돌아가자. 아하함!"
산타할아버지는 하품 섞인 소리로 사슴에게 말했어요.
산타할아버지를 태운 썰매는 하늘로 떠올랐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는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찬란한 불빛들이 하늘의 별을 다 옮겨다 놓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산타할아버지의 마음은 왠지 허전했습니다.
썰매는 눈 깜짝할 새에 불빛이 찬란하던 도시 한가운데를 지나 산동네 위를 날았습니다.

그때였어요.
"할아버지! 산타 할아버지!"
어디선가 다급하게 산타할아버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산타할아버지는 썰매의 속도를 늦추고는 아래를 내려다보았어요. 엉킨 실타래 같은 골목길과 납작한 지붕들이 뒤죽박죽 포개져 있어 도무지 소리가 나는 곳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이래서야 원… 쯧쯧쯧쯧쯔."
집 찾기의 명수인 산타할아버지인데도 고개를 내저으며 혀를 찼어요.
"여기요! 여기! 곧장 왼쪽 밑을 보시라구요. 아직도 안보이세요?"

눈을 비비며 한참이나 내려다 본 다음에야 산타할아버지는 겨우 빨랫줄에 걸린 외짝 양말을 찾아냈습니다. 산동네에서도 제일 낮고 초라한 처마이었으니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지요.

할아버지는 썰매를 돌려 그리로 내려갔습니다.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그래서 그 말이 사실인 줄 알았어요. 산타할아버지도 이런 가난한 동네에는 오시지 않는다는 거 말이에요."
외짝 양말은 꽁꽁 얼어붙은 몸을 덜거덕거리며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그럴 리가 있겠니?"
산타할아버지는 찬찬히 외짝 양말을 쳐다보았습니다.
앞 부리에 구멍이 나도록 낡은 검은 양말은 어른의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정말 날 기다리고 있었다고?"

아무래도 미심쩍은 듯 산타할아버지는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그렇다니 까요."
"가만있어 보자. 그러니까 여기가 하늘바라기 동네 산 70번지라…"
산타할아버지는 혹시라도 깜박하고 실수를 했나 싶어 수첩을 꺼내 꼼꼼히 훑어보았습니다.

"거 참, 이상한 일이구나. 아무리 봐도 여기선 접수된 게 하나도 없었는데…"

"그럴 거예요."
"무어라? 허어! 이런 맹랑한… 공연히 지체했구나. 어서 가자."
산타할아버지는 썰매에 오르며 사슴을 재촉했습니다.
"잠깐만요! 산타할아버지를 화나게 하려고 그런 건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그러니까 제 말 좀 들어주세요. 그런 다음에 저를 벌주시든지 혼내시든지 하세요. 네에? 부탁이에요."

외짝 양말은 허옇게 얼음이 일어나도록 사정을 했습니다.
"허어. 그것 참… 무슨 얘긴지 어디 해 보거라."
산타할아버지는 마지못해 외짝 양말의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산타할아버지! 정말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외짝 양말은 행여 산타할아버지가 떠나기라도 할까 봐 빠르게 말했어요.
"저의 주인은 어린이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할아버지 수첩에 기록이 되지 않은 게 당연하지요."

"그런데 왜 나를 기다렸다는 말이냐? 난 어린이들만 상대한다는 걸 모른 게냐?"
"알아요."

"안다고? 어허! 내 다시 한번 분명히 일러주마. 난 세상의 어린이들하고만 상대한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들만이 산타의 존재를 믿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니?"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외짝 양말은 몸으로만 알아들었다는 표시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린이들조차도 나의 존재를 믿으려 하지 않으니…"
갑자기 산타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한풀 꺾였습니다.
"어른도 믿는 사람은 믿어요."
"그으래?"
그때 산동네를 다 쓸어버릴 듯이 세찬 바람이 한차례 불어왔습니다.

"쿨럭 쿨럭 쿨럭…"
제대로 맞지 않아 비닐을 덧대어 간신히 바람을 막고 있는 문안에서 기침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저 사람이냐?"
산타할아버지는 눈으로 물었어요.
"예. 바로 제 주인아저씨 에요."
외짝 양말이 눈치 빠르게 대답했습니다.

산타할아버지는 한번 더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문 앞에 실밥이 터져 나온 운동화 한 짝이 덩그마니 놓여 있습니다. 그 옆으로 바퀴를 단 판자 쪽과 손잡이가 달린 꼬마 좌판이 덮개에 덮여 있고요. 바람이 덮개를 펄럭이자 수세미니 좀약 같은 잡다한 물건들이 언뜻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산타할아버지가 고갯짓으로 얘기를 재촉했습니다.
외짝 양말은 방안의 아저씨가 깨지 않도록 조용조용 이야기를 하였어요.
"꼭 짝을 맞추어서 쓰는 신발도 양말도 우리 아저씨에게는 한 짝씩만 필요합니다. 아저씬 외다리 시거든요."

 

아저씨 일터는 백화점이 있는 건너편에 큰길입니다.
거기서 아저씨는 온종일 노래를 부릅니다. 한 손에 마이크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좌판을 잡고 그리고 바퀴 달린 판자에 앉아 한발로 밀고 다니면서 장사를 합니다.
아저씨의 외발은 늘 힘에 부칩니다. 힘에 부치기는 아저씨의 손도 아저씨의 목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정성껏 노래를 부르고 웃는 낯으로 사람들을 대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저씨의 겉모습만 보고는 고개를 돌립니다. 건너편 백화점에서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아저씨의 1000원 짜리 물건에는 인색하기만 하지요.
그래서 아저씨의 벌이는 늘 시원치 않습니다.
백화점이 북적댈수록 아저씨의 좌판은 더욱 썰렁합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면서 건너편 백화점엔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정도로 붐볐습니다.

때마침 자선단체에서 나온 마이크도 한껏 소리를 높였어요. 그 소리는 길 건너 아저씨 노래까지 묻어 버렸습니다.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 우리의 이웃이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마침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지나던 아이가 그 소리에 아저씨의 좌판으로 다가왔습니다. 손에는 천원 짜리 한 장이 쥐어 있었지요.

"얘! 여기 아냐."
어머니는 아이의 손을 낚아채 총총히 지하도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조금 후에 자선단체 모금함에 앞에 모습을 나타냈어요.
그걸 보자 노래 소리가 잦아들고 아저씨는 입만 벙긋거렸습니다.

얼른 지하도 입구에서 구걸을 하는 할머니가 말했어요.
"젊은이! 자네 노래가 얼마나 마음을 부르게 하는지 모르지? 자네 참 좋은 일 하고 있는 거야."
"마음만 불러서는 살 수 없어요. 배도 불러야지요."

아저씨는 그날 번 돈을 몽땅 그 할머니께 드렸습니다. 며칠째 할머니의 바구니가 비었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아저씨는 자주 감기에 걸립니다. 그리고 한번 걸리면 좀체 낫지 않습니다. 종일 거리의 찬바람 속에 있어서 그렇다고 하겠지만 아니에요. 각박한 세상 인심에 자꾸 마음이 얼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도 아저씨는 쉬지 않습니다. 지하도 입구의 할머니 말을 듣고 나선 더 열심히 노래를 합니다. 오늘 낮에도 아저씨는 백화점 건너편 일터로 갔습니다.

여느 때처럼 판자 위에 몸을 싣고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감기에 걸렸는데도 여러 날 무리를 한 탓이었어요.
"음! 음음음…"
몇 번이나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억지로 목청을 돋웠지만 노래 소리는 점점 갈라지고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아예 그 소리조차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노래뿐이었어. 그거라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느라고 열심히 불렀는데…. 이젠 노래를 못할 것 같다. 어디로 다 가 버렸어."
아저씨의 말소리는 동굴 속에서 올라오는 것처럼 음울하고 축축했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와 자리에 누워 버렸습니다.

"그래도요, 우리 아저씨는 낮에 신고 있던 저를 빨아 널었어요. 그래서 여기에 이렇게 있는데 어디선가 크리스마스 노래가 들려 오지 뭐예요. 그래서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기로 했던 거예요. 우리 아저씨가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게 해 달라고 떼쓰려고요. 하지만…"
"더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마침 너희 아저씨에게 꼭 맞는 선물이 남아 있을 것도 같은데."
산타할아버지는 선물 자루를 열었습니다. 그리고는 몸을 반쯤 들이밀고 자루 밑바닥까지 샅샅이 뒤졌습니다.

"옳지! 여기 있구나. 이제야 겨우 꼭 맞는 임자를 만났지 뭐냐."
산타할아버지는 몇 년이나 자루 속에 아껴 두었던 마지막 선물을 외짝 양말 속에 넣었습니다.

외짝 양말의 꽁꽁 얼었던 가슴이 스르르 풀렸어요. 금세 환하고 따뜻하고 참 행복해졌습니다.
"어떠냐? 그만하면 되겠지?"
"딱이에요"
"그건 전염성이 강하단다. 잘 간수했다가 아저씨에게 전하거라. 진실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다 잘 될게다. 하여튼 외짝 양말아, 메리 크리스마스다!"

산타할아버지는 썰매에 올라 사슴의 고삐를 살짝 당겼습니다.
"뭐가 빠진 것 같더라니… 이제야 진짜로 일을 다 마쳤구나. 자, 가자!"
외짝 양말이 인사를 할 새도 없이 산타할아버지가 탄 썰매는 구름 위로 올라갔습니다.

"오랜만에 자루가 비었으니 깨끗하게 털어야겠다."
구름 속에서 유쾌한 산타할아버지 말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곧이어 자루를 터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풀썩 풀썩 풀썩…
그때마다 매화꽃 같은 눈송이가 펄펄 쏟아져 내려왔습니다.

 

 

 

 

글/ 정진숙(동화작가)
 * 91년 아동문예를 통하여 문단에 나옴 (등단작 "무지개로 수놓은 봄")
 * 지은 책으로는 창작동화집 「솔바람이 그리는 풍경」과 「풀꽃 반지」가 있고,
「알콩달콩 호기심 이야기」가 있음.
엮은 책으로는 「어린 왕자」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있음
 * "아동문예 작가상"수상
 

작성자정진숙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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