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 괭이부리말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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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만한 사람은 이제 다 알아버린 책. TV 전파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 덕분에 전국민적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이 책.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화려한 봄날은 이렇게 시작됐다.
사실 이 책은 출판사 창작과비평사에서 여는 "좋은 어린이 책" 공모 창작부문 수상작으로 뽑혀 지난 2000년 7월 세상에 나왔다. 그 내공이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출간 당시에는 정작 큰 관심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가 TV 전파의 힘을 빌어 뒤늦게나마 빗발치는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봄날치고는 상당히 늦은 셈이다.
이 책의 배경인 "괭이부리말"은 인천 만석동 달동네의 또 다른 이름이다. 마른 땅보다 갯벌이 더 많았던 이 지역에 "고양이 섬"이라는 이름의 작은 섬이 있었고, 그 갯벌이 죄다 메워진 지금 그 섬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이름을 딴 괭이부리말이란 지명만은 남게 되었던 것.
한번도 세상의 주목을 받아보지 못했던 고달픈 밑바닥 인생들의 터전. 다닥다닥 들어선 집들은 낡았고,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가난했다. 좁은 골목과 그 골목에 늘어선 누런 연탄재들. 어른들은 제 살길을 찾아 절망 속에서 아이들을 버렸고, 버림받은 아이들은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했기에 나이보다 훨씬 앞선 인생을 살아야만 했다.
가난을 견디지 못한 엄마는 집을 나가고 돈 벌러 나간 아빠마저 연락이 끊어진 동수와 동준이 형제에게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사정은 쌍둥이 자매 숙희와 숙자네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빚과 아빠의 술 주정을 견디다 못해 엄마가 친정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남겨진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부모님을 무작정 기다리면서 가슴에 원망과 상처를 쌓거나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온갖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것 뿐이었다.
세상은 이 아이들에게 따스한 애정을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괭이부리말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현실. 싸구려 동정마저도 이 아이들에게는 사치인 동시에 상처였고, 아픔이었다.
이런 아이들 앞에 영호 아저씨가 나타난다. 영호 아저씨 역시 괭이부리말에서 나고 자랐으며 얼마 전에는 고생 끝에 병든 어머니를 떠나보낸 상처를 가진 사람이었다.
영호 아저씨는 누구보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허황된 꿈을 심어주는 것 보다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가장 절실한 도움을 결코 서두르는 법 없이 주려했기 때문이다.
별 볼일 없는 일이라고 사람들이 비웃어도 스스로에게 떳떳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어떤 일보다도 소중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사사건건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아저씨의 애정 어린 간섭과 아이들의 상처는 결국 또 다른 괭이부리말 출신인 김명희 선생님의 도움으로 서서히 아물게 되고 작지만 소중한 꿈으로 영글게 된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힘들게 살아가는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불쌍하게 느껴졌고,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려는 모습에서 자신의 나태해진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고. 과연 작가가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이것이었을까?
TV 덕분에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이 책을 다시 소개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1987년부터 괭이부리말에서 공부방을 열고 그곳 아이들과 함께 살아 온 작가 김중미 씨가 원했던 것은 그런 식의 동정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그들의 기쁨 때문에 웃음을 지을 수 있는 하나된 관계. 엄연히 공존하고 있는 그들의 삶을 나의 입장이 아닌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이해하고 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마음임을 나 스스로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글/ 이우일 (웹진 "부꾸" 기자) www.book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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