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문의 영화이야기] <텔레비전이 만드는 세상>,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 문화


[조희문의 영화이야기] <텔레비전이 만드는 세상>,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본문

<텔레비전이 만드는 세상>

장 면 1.

로마 시대의 원형 경기장.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운다. 창이나 칼을 꼬나 들고 상대방의 빈틈을 파고 든다. 살점이 튀고 피가 치솟을 때마다 관중들은 열광한다. 두려움에 떨다가 뒷걸음 치거나 싸움을 거부하는 검투사가 있다면 관중들의 야유를 받으며 죽임을 당해야 한다. 죽을 힘을 다해서 싸우는 것만이 유일한 임무인 검투사가 제 할 일을 못한다는 것은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기 없기 때문이다. 재미를 얻을 수만 있다면 사람이 죽는 모습까지도 노려 보겠다는 극악스런 열정이 만들어낸 ‘죽음의 게임’이 바로 검투사들의 시합이다. <글레디에이터>나 <스팔타커스>같은 영화들은 검투사들의 인생과 운명을 다루고 있다.


장 면 2.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 비행기를 납치한 테러범들은 승객을 태운 그대로 건물을 향해 돌진했다. 비행기는 폭발하고 건물은 무너졌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알지도 못한 채 비극적인 참사에 묻혀 버렸다. 테러 역사상 가장 큰 비극으로 기록될만한 일이기도 하지만 이 일이 더욱 가공스러운 공포로 비치게 된 것은 참사의 순간이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중계됐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생생하고 자세하게 상황의 전개를 알 수 있는 것은 텔레비전 중계의 위력 덕분이다. 우리나라에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났을 때나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이 이라크와 전쟁을 벌였던 걸프전 때에도 텔레비전 카메라는 현장을 중계했다. 테러 참사 이후 이어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을 때도 카메라는 수시로 현장을 중계하는 일을 계속했다.


장 면 3.

‘적수들’(Contenders)이라는 제목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출연자들끼리 서로 죽이는 게임을 중계하는 프로그램. 방송국 측에서 임의로 선정하는 출연자들 끼리 최후의 한사람이 남을 때 까지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 죽여야 한다. 총을 쏘든 칼을 쓰든 게임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출연자 각자의 결정이다. 지금까지 출연자 중 가장 큰 인기를 얻은 인물은 임신 8개월의 임산부 돈. 그동안 연승을 거두며 시청자들을 놀라게 한 돈은 한 게임만 더 이기면 최고의 챔피언이 된다.

돈과 겨루게 될 새로운 도전자는 병원 응급실의 간호사, 실직과 마약 중독으로 인생이 벼랑 끝에 몰린 남자, 음모이론을 신봉하는 이상한 노인,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18세 소녀, 고환암 말기 증상을 앓고 있는 환자 등 모두 5명. 이


윽고 살인게임이 시작되고, 출연자들은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 온갖 궁리를 다하고, 카메라는 그런 그들을 끈질기게 쫓아다닌다. 죽음의 게임이 그대로 중계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심각하거나 진지한 고민을 하는 것도 아니다. 현란하고 경쾌한 화면은 신나는 쇼프로그램 중의 하나일 뿐이다. 영화 <시리즈 7>에 등장하는 광경이다. 시리즈 7은 <적수들>의 일곱 번째 에피소드라는 뜻.


요즘의 세상을 지배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꼽는다면 텔레비전을 첫번째로 꼽아야 할 것이다. 오늘 날씨가 어떨지에서부터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이 어디인지, 이번 계절에 유행할 옷의 스타일과 색상이 어떤 것인지도 알려주고 아프가니스탄 전쟁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시시각으로 전한다. 텔레비전 만큼 빠르고 정확하고 재미있게 정보를 전해주는 매체는 없다고 할 만큼 영향력은 크다. 텔레비전이 없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무슨 재미로 긴긴 주말을 보낼 것인지 한숨짓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텔레비전이 언제나 천사의 역할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프로그램이든지 시청율이라는 흉악한 그물에 걸리면 생사가 달라진다. ‘뜨는’ 프로그램은 살고, 그렇지 않으면 사라져야 한다. 글데디에이터들이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것처럼 텔레비전 프로그램 역시 생존을 위해 시청율 경쟁을 벌여야 한다. 품격을 지켜야 한다고 근엄한 표정을 짓다가도 연속극의 인기가 좀 있다 싶으면 엿가락처럼 늘이고, 시청자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들을 기를 쓰고 넣으려 하는 것은 시청율 때문이다.


영화 <시리즈 7>은 시청율을 위해서라면 살인게임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방송의 상업주의적 극악성을 풍자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떨까. <시리즈 7>은 텔레비전의 상업주의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흉악하고 난폭한지를 자세하게 보여주는 영화 또한 폭력적이고 선정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누구를 위해서?

바로 관객들이고 시청자들이다. 그래야 더 재미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세상은 21세기 컴퓨터 시대를 달려가고 있지만 극악스런 재미를 쫓는 구경꾼들의 재촉은 로마시대나 다를 바 없다.



<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

마음을 열면 세상이 따뜻하다

 


세상이 험할수록 그리운 것은 따뜻한 사랑이다. 사랑이 요술을 부리면 못할 일이 없다. 외로움을 이겨낼 수도 있고, 삭막한 세상을 포근하게 감쌀 수도 있다. 수십억원 짜리 복권에 당첨된 어느 형제가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면서 형은 동생에게 더 많이 주어야 한다고 보따리를 더 크게 싸려 하고 동생은 고생하는 형님이 더 많이 가져야 한다며 당첨금 대부분을 형에게 주려 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큰 재물을 앞에 두고 서로 양보하는 형제의 행동은 남다른 믿음과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혼자만의 세상에 갖힌 채 까탈을 부리는 별나고 외로운 인간이 사랑의 힘을 받아 따뜻하고 넉넉한 인간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연애소설 작가 멜빈 유달은 까탈스럽기로 따지면 세상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중년의 홀아비. 비누는 한번만 쓰고는 버리고 문은 제대로 잠갔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보도블록 금을 밟으면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듯 한사코 피해 다닌다. 식당에 가서도 꼭 앉던 자리에만 앉으려하고 남이 쓰던 숟가락 젓가락 쓰기 싫어 자기 것을 따로 들고다닌다. 지독한 강박증에다 결벽증이다.


하지만 아무리 까탈스럽고 유별나다 하더라도 이 정도라면 못 참을 일도 아니다. 온갖 사람들 사는 세상에서 제멋대로 한다고 한들 그런가보다 여기면 그만이니까. 문제는 남의 가슴에 못박는 일을 눈도 깜짝 않고 해대는 것이다. 흑인이 건들거리는 꼴을 못보고 동성애자는 사람취급도 않는다. 눈에 띠는 것 마다 마음에 안 들고, 마음에 안 들면 생각나는 그대로 뱉어버린다. 놀부가 오장칠보를 가진 덕분에 온갖 심술을 다 부리지만 멜빈 유달의 삐딱한 심술은 놀부도 울고 갈 정도다. 눈에 안띄는 곳에서 혼자 유난을 떨어도 미운 털 신세를 면하기 어려운 판에 백주 대낮에도 잘난 척은 독판으로 해대며 남의 가슴에 못을 박아대니 누가 좋다고 할까.


하지만 겨울이 길면 봄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고, 외로움이 클수록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도 커지기 마련. 찔러도 피 한방울 흘릴 것 같지 않은 그도 알고 보면 속은 한없이 착하고 따뜻한 아저씨이며 마음을 열고 세상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누군가를 간절하게 그리워하는 외로운 인간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드러내면서 다른 사람에게 마음 속의 자리를 조금씩 내주기 시작한다. 이후의 과정은, 자신의 자리를 내주는 것이 결국은 사람들 사이에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픈 아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는 웨이트리스를 이해하며 희망을 잃어버린 게이 화가의 손을 잡아주는 것은 서로 사랑을 나눌 수만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로 천국’이라는 결론에 이르기 위한 설정이다.

가시는 세울수록 상대를 찌르기 쉽고 그런만큼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무도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각오해야 한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마음 속의 가시를 거두면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고 따뜻하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이야기 하고 있다. 잭 니콜슨의 연기가 돋보이는 이 영화는 벌써 ‘옛날 작품’ 취급을 받고 있지만 사랑의 온기는 여전히 따뜻하다.


글/ 조희문(상명대 교수.영화평론가)

 

작성자조희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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