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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민의 테마에세이] 재회의 그 날이 남아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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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를 정리할 때마다 버릇처럼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게임 이론(Game Theory)’의 핵심인 ‘제로섬(Zero Sum)’에 관한 것이죠.

  ‘제로섬 게임 이론’이란, 간단하게 말해서 수의 증감이 없이 항상 합계가 같다는 이론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필기구가 열 개 있는데, 오래된 것 하나를 버리고 새 것을 구입했다면 합계는 똑같이 열 개가 되죠. 좋은 만년필 두 개를 산 뒤에 불필요한 볼펜 두 개를 버렸다 해도 합계는 같아집니다. 물론 질적인 문제는 잠시 접어둔 상태로 말입니다.

  책꽂이 정리를 할 때마다 그 이론을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차피 한정된 공간이기에 넣을 수 있는 책의 수량은 늘 엇비슷하게 고정되어 있죠. 언젠가 헤아려 보니까 저의 책꽂이엔 900권 정도 되는 책들이 꽂혀 있더군요. 새로운 책들을 구입하면 어쩔 수 없이 몇 권의 책은 책꽂이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새 책을 꽂을 수 있으니까요. 바로 그것이 제로섬 게임 이론입니다. 책꽂이의 존재는 항상 같은데, 그 내용물이 바뀌어도 전체의 규모는 똑같아진다는 것.

  정리를 하면서 어떤 책들이 제게 있는가를 새삼스레 살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철학과 종교서적의 비중이 컸던 것 같은데, 지금은 문학서적의 양이 무척 늘어났습니다. 그건 그 동안 저의 생활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는지를 말해 주는 본보기가 되기도 합니다. 늘 똑같은 책꽂이를 바라보며 살았던 것 같은데, 실상 저의 삶은 일정한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는 의미가 되겠죠. 제 정신의 책꽂이에는 어떤 책들이 추가된 걸까? 어느 작가의 책이고 어떤 가치가 있기에 구입한 것일까…?

  곰곰이 따져 보면 저의 눈높이가 어디를 지향하는지도 알 수 있게 됩니다. 만약에 싸구려 만화책으로 500권이 채워졌다면, 철학과 문학은 그 만큼의 분량으로 제게서 지워졌겠죠. 엉뚱한 월간지가 700권이 들어찼다면, 그 만큼의 무언가가 제게서 대체(代替)되며 사라졌다는 의미일 겁니다.

  살아가는 개개인 삶의 값어치를 말해 주는 건 책꽂이에 소유하고 있는 책들입니다. 수량의 많고 적음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단 10권이 있을 때 무슨 책이 나를 움직이고 있을까? - 그것을 생각한다면 어느 누구라도 생각 없이 외설잡지나 3류 통속소설을 그 자리에 채워두지는 않겠죠. 단 한 권이라도 ‘나’라는 인간을 대변해 줄 만한 그런 책을 찾게 될 것입니다.

  인간 관계라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주고받은 명함이 분류하기도 힘들 만큼 가득 간직되고 있는데, 그 어마어마한 이들이 모두 저의 절친한 사람이 아님은 자명한 일입니다. 제가 꺼내 들고 바라보는 어느 명함의 주인공이 누군지를 떠올리지 못하듯이, 어딘가의 누구도 제 명함을 꺼내보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겠죠.

  만약에 인간 관계에도 제로섬 이론이 확고하게 적용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어떤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요? 제가 요즘 아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문제입니다.

  난데없는 인위적인 규제와 제약이 우리에게 강요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한 인간이 진심으로 사귈 수 있는 사람이 10명으로 제한된다면, 가족과 친지를 포함해서 30명으로 한정된다면, 수첩 안에는 어떤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져 있어야 할까요?

  대답은 너무나 당연한 내용이겠죠. 진정으로 중요한 이들을 찾아 나서게 될 겁니다. 꼭 있어야 할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넣게 될 것입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은 당연히 제외되겠죠. 쓸데없이 소일거리나 찾으면서 함께 어울리던 이름들은 단호하게 지워질 것입니다. 판에 박은 농담이나 주고받던 얼굴들은 순식간에 멀리하게 될 겁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이젠 저의 마음속에다가 인위적인 제로섬 이론을 강제(强制)시켜서 새로운 수첩으로 재정리하고 싶습니다. 스쳐지나가도 그만인 이름들을 미련 없이 하나씩 지워야겠습니다. 만남의 기쁨보다는 의무적인 술자리에 부담이 가던 이름들은 털어 버려야겠습니다. 대신에 텅 비어진 그 자리에다가 1년 내내 만나지 못해도 늘 궁금하기만 했던 이들의 이름을 앞자리에 적을 생각입니다. 몇 년 동안 소식을 듣지 못해도 소중하기만 한 몇몇 이름을 맨 앞에 적을 작정입니다.

  잘나고 못하고, 가지고 못 가지고, 잘 생기고 못 생긴 건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존재 그 자체’로 제 인생을 밝게 비춰 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생각만으로도 따스해지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많은 숫자가 아니더라도 아쉽지 않을 소중함이 그들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젠 제 마음속에 제한된 규정을 만들어서, 제로섬 게임 이론을 혼자만의 작업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많을수록 좋겠죠. 하지만 그것 역시도 인간이기에 반복해야 할 함정이 될지도 모릅니다. 많은 걸 찾다가 진정한 하나를 잃어버리는 전철(前轍)과 같은… 소중한 모든 건 그 숫자가 극히 적기 때문에 아름답고 의미가 있는 것이겠죠.

  계절 탓인지 모르겠지만, 자꾸만 진지한 것 또한 따스한 것을 찾게 됩니다. 서로의 일이 바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연락이 멀어졌던 벗들에게 오늘은 편지 아닌 이메일이라도 적어 보내야겠습니다.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은 늘 곁에서 함께 움직인다는 진심을 보여 주어야겠죠.

  요약해서 적으려다가 길어졌네요. 책꽂이를 정리했다는 내용과 떠오르는 감상을 짧게 적으려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요즘 제 마음속엔 이런 생각들이 가득 담겨 있었나 봅니다.

  어쩌면 마지막 인사말을 적는 게 쉽지 않아서 빙빙 둘러대며 돌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국가의 경제가 완전히 파탄났을 때, 길거리에 떠도는 실업자와 노숙자들의 행렬을 일상처럼 접해야 했던 그 시간부터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죠. 불편부당(不偏不黨)한 글을 적어서 독자님들의 쉼터로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어떻게 읽으셨는지, 혹시라도 힘겨운 느낌만 안겨드린 건 아닌지 염려되기도 합니다.

  만 3년 동안 이 자리에서 함께 했던 저의 <테마에세이>는 이 글을 끝으로 잠시 동안 마침표를 찍으려 합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처럼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만드는 한자 성어는 없는 것 같습니다. 거꾸로 얘기한다면 ‘헤어진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다.’가 되겠죠.

  아주 우연한 기회가 우리를 마주 대게 이끌었습니다. 거기에는 ‘우연’이 얼마간 작용했을 테고, 보이지 않는 ‘필연’도 포함되었겠죠. 하지만 이런 말도 떠오르는군요. ‘우연’은 신(神)이라는 분이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주는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마음의 옷으로 갈아입고 곧 재회의 인사를 나누게 되겠죠. 글은 떠나 있어도 늘 마음으로 함께 하는, ‘함께 걷는’ 우리가 되었음 좋겠습니다. 그런 우리의 사귐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저의 작품집을 선물드릴 때마다 인사말로 적는 한 줄의 문장으로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자 합니다.

  ‘언제나 꿈과 희망과 사랑이 가득한 나날이 함께 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 동안 저의 졸고(拙稿)에 따스한 격려와 의견 나눔을 전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게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다시 한번 올립니다.


글/채지민 (소설가)


 

작성자채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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