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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민의 테마에세이] 그래도 아름다운 건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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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건 바로 다음의 일을 알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건 정말로 사실이다. 어떻게 준비하고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대비를 한다 해도, 단 1초 후에 벌어질 일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법이다. 그래서 신이라는 존재가 있고, 그에게 의지하려는 이들이 많은 걸까? 아니면 "운명"이란 거창한 잣대를 들이대며 안주하려는 것일까?

무겁고 딱딱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얼마 전 내게 찾아들었던 난데없는 반가운 소식에 대한 얘기를 하려다 보니, 시작 얘기가 좀 거창한 듯하게 돌아간 것뿐이다.

 

해야 할 일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뒤로 밀리기만 하고 급하게 전해 줘야 할 원고 작업은 진척되지도 않아서, 방안을 빙빙 돌며 답답해하고 있을 때였다. 전화벨이 울리고 그 안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굵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맞는데요. 누구십니까?"
"그럼 혹시 OO초등학교 9회 맞으신가요?"
"네? 네..... 근데 누구시죠?"
"야! 나 김OO야. 기억나니?"
생각지도 않았던 전화였다. 거의 20년 이상 떠올리지 않고 지내던 이름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 얼굴이 누구인지를 되살려 내는 데에는 불과 1,2초도 걸리지 않았다.

"야! 너, 생머리에 몸집이 말랐던 OO이란 말야?"

정말 이십 년하고도 몇 년만의 회상이었다. 내 기억 속 어딘가에 그 친구의 이미지가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고 박혀 있었다니, 모든 게 놀라울 뿐이었다. 옛 동문들을 찾는 인터넷 사이트가 여기저기에서 활성화되고 있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왔지만, 워낙 통신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탓에 막연한 그리움만으로 궁금해하던 내 생활이 일순간에 뒤집혀지는 순간이었다.

이미 60명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한데 모여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고, 정기적인 모임도 가지면서 옛 우정을 돈독히 이어가고 있다 했다. 또한 모임이 있을 때마다 많은 친구들이 나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얘기를 항상 주고받는다고 했다. 순간 웃음이 내 얼굴에 맴돌았다. 이런, 내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이것 참, 어지간히도 책을 읽지 않고 사는 인간들이군.

 

그래도 감추지 못할 만큼 너무 기뻤다. 개인적인 원고 작업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한숨만 푹푹 내쉬다가, 일순간에 초등학생처럼 기분이 좋아져서 팔짝팔짝 뛰고 있는 내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어린이날이 되자 혼자 거울을 마주보며 히죽거리던 70년대 어느 날이 문득 떠오르기까지 했으니, 오죽 기분이 좋았을까. 친구가 가르쳐 준 방법대로 가입 신청을 했고, 정회원으로 가입됐다는 그 친구의 연락을 한 번 더 받자마자, 이건 또 웬일인가. 내 휴대전화가 그야말로 쉴 틈없이 울려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동창이자 동문이라는 것인 모양이다. 나이 서른여섯이 분명한 그들의 음성은 그 시절 그 언어처럼 "...이니?" "...잖아." "...그렇지 않니?" "...하고 싶어." 등 초등학생의 언어 그대로 내게 전달되었다. 물론 나 역시 그 언어를 쓰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하는 건지 방법도 모르고 다룰 줄도 모르는 화면에다가 여기저기를 꾹꾹 누르다 보니, 느릿느릿 되살아나는 게 바로 초등학교 졸업 앨범이었다. 세상에, 4반까지 있던 졸업 앨범이 그대로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내가 속했던 "6학년 2반"을 클릭하자, 멀뚱멀뚱 시선을 잡지 못하고 있는 나의 졸업 사진이 눈앞에 나타났다.

"기억"이라는 게, 또한 "추억"이라는 것이 참으로 무서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은 떠오르지만 얼굴은 잘 모르던, 또한 얼굴은 떠오르는 것 같은데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고 있던 이들이 하나씩 내 기억의 창고를 뒤흔들어 놓았다.

아, 맞아. 이 친구가 OO이었지. 그래, 얘가 바로 그 유명했던 OO였어. 맞아, 그래.....

내가 다녔던 당시 "OO국민학교"는 대학에 부설된 학교였기에, 한 반에 60명 정원에 4반밖에 없었던, 당시로는 꽤 앞서나간다고 평가를 받던 학교였다. 정말 별의별 추억이 다 떠올랐다. 누가 어느 동네에 살았었는지, 내 짝궁이었던 애가 누구였고, 내가 누구를 좋아했는지, 누가 나를 좋아했는지, 나를 싫어하던 애가 누구였는지, 내가 싫어하던 얼굴이 누구 누구였는지가 당시의 감정 그대로 떠오른 것이었다.

 

"운동을 잘하던 녀석이 바로 이 놈이었지."
"여기 얘는 그때부터 공부벌레였어."
"얘는 이민을 갔었지? 내 기억으로는 그런 것 같은데."
"얘가 바로 그때 그 사건의 주인공이었을 거야."
"야, 내가 얘를 잊고 지냈었구나."
"맞아, 그때 이런 일이 있어서 얘랑 나랑 이러이러한 일을 벌인 적이 있었어."
"야, 얘는 유치원 동창인 줄 알았는데, 초등학교도 같이 다녔네.....?

얼굴 하나 하나마다 감탄사가 이어졌다. 내 기억 속에 이만큼의 추억이 그 동안 잠을 자고 있었구나.... 그래도 이렇게 되찾을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쁘고 반가운 일인가.

아직은 전화를 통해서만 목소리와 추억을 주고받고 있지만, 이 원고가 활자화될 즈음이면 아마도 그 중에 몇 명은 술잔을 부딪치며 서로를 서로의 인생 안으로 불러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답답한 마음에 어둡고 막막해졌던 나의 나날은 그렇게 단숨에 아름다움으로 뒤바뀌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이런 얘기가 이 땅 위에서 나 혼자만 경험하는 일은 아니다. 사회 전체가 비딱하게 기울어지고, 정도가 부조리로 탈바꿈하는 희한한 세상 속에서 이런 소박한 기쁨과 충만이라도 없으면 무엇으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5학년 때 짝궁이었던 여자애는 지금 피부과 전문의가 되어, 어디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 마음 속으로 끙끙 앓으며 좋아하던 꼬마 여자애는 세 자녀의 엄마가 되어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조용함" 그 자체였던 친구는 변호사가 되어서 짜투리 시간도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단다. 얼마 전 TV에서 잠시 보았던 변호사의 얼굴이 내 생각대로 그 친구가 맞았다.

 

이렇게 우리 서로에게 진공 상태였던 이십 년하고 몇 년은 그들만의 노력과 정열으로써 지금 이 자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재회를 하는 것이고,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생의 기쁨과 의미를 되찾을 수 있게 된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들의 연락을 받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에 떠오른 첫 번째 생각은 "정말 열심히 지내야겠구나." 하는 조바심과 함께 하나의 커다란 자극의 울림이었다. 열심히 지낸다면, 누가 뭐라고 하든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가 만날 그들에게 나의 웃는 얼굴을 보여 줄 수 있는 게 아닌가.

나이가 들면서 완성을 위한 꿈을 꾸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렇게 한 번뿐인 생을 마음으로 웃을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이 짙어져만 간다. 문득문득 생각하던 그 생각이 맞았던 것 같다. 그 동안 나는 이만큼 살아왔는데, 왜 그 흔적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 하는 그 의문점과 허탈감 같은 모든 것들. 역시 꾸준히 노력하며 준비해 온 기다림은 그 답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모양이다.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믿음을 갖게 해 주는 건 누구일까? 주변에 어떠한 이들이 존재한다 해도, 결론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같은 사실을 놓고서도 "A"라고 생각하면 그것이고, "B"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결론이 나는 것이다. 물론 "C"라고 생각했다면, 모든 결론이 그렇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일임은 자명한 일이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같은 일이라도 기쁘게 생각하면 기쁜 일인 것이다. 혹시 아는가. "김OO"하는 친구가 내게 난데없는 전화를 했을 때, 내가 난처한 입장으로 맞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과연 그 친구를 반길 수 있었겠는가.

내 마음을 쓴 만큼 내게 돌아오고, 내가 살아온 만큼 세상은 내게 답을 전해 주는 것 같다. 그것이 비록 하찮은 부분일지라도, 그 일로 인해 내가 더욱 열심히 살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되어진다면 그 이상 고마운 일은 없다. 항상 "답"이라는 건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인 것이다.
 

글/ 채지민

작성자채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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