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문의 영화이야기] <와호장룡> <화이트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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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상을 받은 무협영화. [와호장룡]이 거둔 또 하나의 성과다. 진정한 프로는 누구든 아름답다. 그가 프로인가 아닌가는 일의 결과가 증명한다. [와호장룡]은 흔한 검술 영화이지만 만드는 사람에 따라 그 색깔과 격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확인시켜 준다. 이 영화의 감독은 이안. [음식남녀], [결혼피로연], [센스 앤 센스빌리티] 등의 영화를 통해 그의 내공이 얼마나 깊고 단단한가를 증명한 인물이다.
[와호장룡]은 대만출신 감독이 주윤발, 양자경, 장자이, 장진 같은 홍콩과 중국(이제는 같은 나라이지만) 배우를 기용해서 미국서 만든 영화다. 결국 미국 자본과 기술로 만든 영화이니까 "원산지"도 미국이다. 그러나 영화의 배경은 청조 말기의 중국이다. 소재는 무림 고수들의 복수와 사랑, 맛은 절제된 침착함과 우아한 기품과 여운이다. 헐리우드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정통 중국요리를 음미하며 먹는 기분이랄까.
청조 말기의 중국. 무당파의 검객으로 명성을 날리던 이모백은 강호를 떠나기로 작정하고 무술의 달인인 수련을 찾아와 자신의 생명처럼 아끼던 보검 청명검을 북경에 있는 패륵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페이러는 무당파와 친분이 있는 가문의 존경받는 지도자. 하지만 청명검은 북경에 도착한 그날 복면을 한 도둑의 손에 사라진다. 칼을 훔친 도둑은 옥교룡. 강호의 패권을 노리는 파란 여우의 제자다. "파란 여우"는 리무바이의 스승을 독살한 원수. 이모백은 스승의 원수를 갚는 한편 옥교룡을 흑도의 길에서 구해내 자신의 무술을 가르쳐 주려한다.
무술영화의 스토리야 어떻게 꾸미든 큰 틀은 달라질 것이 없다. 그만큼 친숙하면서도 일정한 공식같은 것이 있어서 대강의 윤곽은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 복수, 권선징악 같은 것들이 등장한다. [와호장룡]도 그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같은 밭에서 따낸 오이도 유난스럽게 크고 탐스러운 놈이 있는 것처럼 무술영화라고 다 같은 무술영화가 아니다.
첫째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이른바 작가주의 감독이라고 불릴만한 수준의 이안 감독이 대중영화에 선뜻 손을 댔다는 점이다. 영화에는 귀천이 없고 "꿩잡는 게 매"라고는 하지만 평판을 얻은 감독이 대중적 소재로 시선을 옮기기는 쉽지 않다. 영화계 안팎에서의 이안 감독에 대한 평가가 어느 수준인가를 아는 관객이라면 그의 행동이 얼마나 파격적인가를 헤아리기는 어렵지 않다. 어느 대기업의 부회장을 지낸 사람이 식당의 웨이터로 직업을 바꾼 경우처럼 막상 행동으로 옮기는데는 남다른 용기와 철학이 있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감독의 만족이 아니라 관객의 만족을 무엇보다도 앞세울 때 가능한 일이다.
두 번째는, 그러면서도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음식남녀]에서의 가족의 해체와 연대를 예리하게 들여다보았고 [결혼피로연]에서는 이국적 문화와 세대간 단절에 직면한 어느 노부모의 정서적 혼란을, [센스 앤 센스빌리티]에서는 19세기 영국 귀족문화의 우아한 품격을 포팍했던 그의 시선은 전설적 무림의 세계를 통해 무인의 우아함과 무예의 장엄함, 그 모든 것을 파도처럼 쓸어버리는 시간의 엄혹함을 일필휘지로 읊어낸 한수 시처럼 엮어낸다. 한 번 쓰고 버리면 그만인 1회용품과 진짜처럼 보이게만 만든 모조품이 횡행하는 요즈음에 드물게 우아한 품격을 갖춘 진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수의 경지다.
그런 평가때문일까. 이 영화는 미국에서 예상을 넘는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연말 미국의 타임지가 선정한 최우수 영화로 꼽혔고, 영어가 아닌 외국어를 사용한 영화 중에서는 처음으로 미국내 흥행 기록 1억달러를 돌파하는 최고기록을 세웠다. 올해 (제73회)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과 외국어영화상 부문을 포함한 10개부문 후보에 오르며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이 영화는 외국어 영화상과 촬영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하는데 그쳤지만 관객들에게 남긴 강렬한 인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카데미 영화상 덕분에 지난해 흥행을 끝냈던 와호장룡은 다시 극장에서 상영하는 이례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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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저팬" 상품이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경우는 많다. 그중에서도 전자제품은 압도적이다. 미국시장도 그중에 들어있다. 그러나 그런 "메이드 인 저팬"도 쉽게 손대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바로 영화다. 일본의 기술과 자본, 마케팅 능력이면 미국영화와 붙어 볼만도 할 것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화이트 아웃>은 일본제 액션영화. 일본 최대의 오쿠도와 댐이 테러범들에게 점거 당한다. 50억엔을 요구하는 테러범들은 24시간 내에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댐을 폭파하겠다고 위협한다. 댐이 무너지면 하류의 주민 100만명이 목숨을 잃어야 한다.
댐 안전관리 요원 토카시는 단신으로 테러범들과 맞선다. 거대한 규모의 댐을 배경으로, 그곳을 장악한 테러집단과 그들과 용감하게 맞서는 안전관리요원이 벌이는 한바탕 난투극..... 특정한 시설물을 장악한 떼거리 악당과 수퍼맨같은 주인공이 단신으로 맞선다는 구성은 미국영화 <다이하드>를 떠올리게 하며 눈보라 치는 산속을 뛰고 달리는 모습은 <클리프 행어>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어떤 영화의 이미지와 겹친다고 해서 이 영화의 우열을 시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꼼꼼하게 보면 <다이하드>와 <클리프 행어> 조차도 비슷하게 닮은 구석이 있고, 대중적 오락영화라면 대체로 비슷한 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것이 더 원형인가를 가린다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눈길을 끄는 대목은 미국영화의 전매품처럼 통하고 있는 대형 액션을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가 라는 점이다.
총과 폭탄, 첨단장비로 무장한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악당, 위급한 상황과 직면하자 초인적인 의지와 능력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주인공, 바쁘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공권력", 거친 남자들의 세계를 로맨스로 물들이는 여자 주인공, 시각적 스케일을 채워주는 여러가지 장치와 액션.... 일본영화이지만 속을 채우는 요소는 미국영화들에서 보던 요소들이다.
일본제 전자제품이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은 성능은 미국제에 뒤지지 않으면서 짧고, 작고, 가볍고 얇은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적인 개성이나 디자인으로 경쟁제품을 압도한 경우다. 그러나 <화이트 아웃>의 전략은 길고, 크고, 무겁고, 두껍게 일본영화의 파워를 보여주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영화가 스케일과 물량을 키운다면 우린들 못하는겠는가 라는 맞놓기인 셈이다.
하지만 이 지점은 미묘하다. 일본영화만의 특성이나 분위기를 내세우면 너무 작아보이고, 크기를 앞세우면 그것을 간판으로 내세우는 미국영화와 차이를 찾기 어렵다. 이 영화를 보고 있자면 나름대로 애를 쓴 흔적이 보인다.
남자배우는 몸을 아끼지 않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영화를 이끌어간다. 그런데도 보는 쪽에서는 어딘가 느슨하며 허전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특별히 흠잡을 만한 구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두드러지게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닌 모습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최근의 우리 영화가 어쩔수 없이 겹친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라고 하는 영화들은 <화이트 아웃>의 딜레마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점이다.
<싸이렌>이나 <광시곡>, <천사몽> 처럼 규모를 내세운 영화들이 보여준 부실한 성과를 되돌아보면 그같은 우려는 결코 먼 이야기 같지 않다. 한국영화와 일본영화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동병상련의 대목이다.
그나마 <화이트아웃>은 최근 국내에 수입된 일본 영화 중에서는 흥행이 된 편에 속하는 경우이지만 일본 내에서의 선풍에 비하면 빈약하기 이를데 없는 수준이었다.
일본 블록버스터의 폭발력이 별로 세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셈이었다고 할까.
감독 와카마츠 세츠로우 주연 오다 유지, 사토 고이치, 마츠시마 나나코.
글/ 조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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