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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민의 테마에세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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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나라가 있다. 정말 이해하려고 애를 쓰고 또 써 봐도 마지막 결론은 똑같이 내려지는 나라이자 그 민족이다. 요즘 들어서 갑자기 생겨난 생각이 아니기에 그럴까? 어린 시절부터 지니고 있던 선입관이 너무 컸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좀 심하다"는 느낌까지 드는 어떤 국가가 우리 나라 인근에 자리잡고 있다.

섬나라 근성 때문인지 뭔지는 따지고 싶지 않다. 멀쩡한 역사를 뒤바꿔 놓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철저히 감추며 딴전을 벌이는 나라 - 때로는 갑탄사가 튀어나올 만큼 자기들의 이익에 대해선 철저하게 옹호하면서도, 역사의 과오에 대해서는 거꾸로 생각하며 따지기를 좋아하는 나라가 바로 그 나라이다.

과연 어느 나라일까?

그들의 민족성과 이율배반적인 교육 정책 때문에, 지금도 우리는 마음 편안해야 할 술자리에서 소주 몇 잔을 더 마셔야 하는 공분을 삭히곤 하는 게 일상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한 핏줄인 우리의 할머니들을 자신들의 성적 배설구로 만들어 놓고도, 자진해서 상행위를 한 것이라고 허망하게 우겨대는 나라.

멀쩡한 남의 땅덩어리를 자신들의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놓고도, 근대화의 기초를 만들어 준 걸 고맙게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고 고개를 똑바로 치켜들며 시끄럽게 떠드는 나라.

숱한 약탈을 일삼으면서도, 반성은 커녕 헛된 국수주의 논리로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를 어린 학생들에게 태연히 나누어 주는 나라.

우리의 옛 조상들에게 고대 문명을 전파시켜 주었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뭇내기 장난처럼 억지 주장을 펴는 나라.

아시아 전체를 피눈물로 만들어 넣고도, 슬금슬금 군대를 키우면서 옛 영광을 재현하고자 꿈꾸고 또 꿈을 꾸며 사는 나라...

 

그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는 구태여 밝히고 싶지 않다. 글을 잘못 썼다가 후환이라도 생기면 어떡한단 말인가. 차라리 나는 내 앞에 놓여 있는 술잔을 "입빠이"들이키며, 쓸데없는 "곤조"를 "무데뽀"로 부리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우리는 지금도 하찮은 일에 "땡깡"을 부리며 너와 내가 "삐까삐까" 아니냐고 우기곤 한다. 괜한 일에 "쿠사리"를 맞으면서도 "꼬봉"과 "오야"의 현실적 위치 때문에 "앗싸리" "와이로" 해결하는 게 낫지 않을까 급급하며 지내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사꾸라"가 "후까시"를 잡고, "신삥"은 무조건 무시하며 지내는 게 우리네 생활이 아니었던가. "와리바시"로 "짬뽕"을 먹으며 "다꽝"을 더 달라고 "가다"잡으며 소리를 치다가도, 계산대 앞에 서기만 하면 요금을 "분빠이" 하자고 서로가 눈치를 보다가 "쇼부"를 내곤 한다. 자기 인생에 대해 "뎃기리!" 가고 외치고 싶지만, "겜빠이"에 익숙해진 인생이기에 그저 "똔똔"이 현실이 아니냐고 애써 위로하기도 한다.

"엥꼬"가 난 차를 몰고 주유소에 가서 "만땅"을 주문하지만, "소데나시"와 "츄리닝" 차림의 불친절한 직원들을 만나면 자기도 모르게 "시네루"의 시선을 던지게 된다. "도리우찌"를 쓴 이들이 "가께우동"과 "아나고"가 맛있는 데가 어디냐고 길을 가는 행인에게 묻곤 한다. "야끼만두"와 "오뎅" 먹을 형편밖에 안되는 외모이지만 "요지"를 입술에 물며 떠드는 모습들이 한심스러워서 "스끼다시"가 잘 나오기로 유명한 집으로 가는 길을 대강 가르쳐 준 뒤 서둘러 발길을 돌린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떠들어대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릴 분들이 계실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리련다. 위에 적어 놓은 말들 중에서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표현이 어느 것일까?

이 글을 적기 전에 가까운 이들에게 미리 물어보았더니, 개중에 "겜빠이"를 잘 모르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겜빠이"는 편을 가르는 걸 의미하는 말로, 보통 "다마"를 치는 당구장 같은 곳에서 몇 명씩 짝을 지어 한 팀씩 만드는 걸 그렇게 부르곤 한다.

그 이외엔 이미 우리 생활 속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언어들이 대부분이다. 교과서 왜곡을 시정하라고 허구한 날 떠들어 봤자 고쳐질 리가 없는 까닭과 원인이 무엇인지를 이쯤에서 한번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우리 내부의 언어조차 순화시키지 못하는 현실을 내보이면서, 어떻게 그들에게 소리 높여 잘잘못을 가리자고 할 수 있겠는지 반성해 보자는 의미이다.

이 대목에선 누구나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 글을 적고 있는 본인 스르로도 얼떨결에 튀어나오는 그런 말들을 고치려고 애를 쓰지만, 그게 쉽게 교정될 작업이 아님을 날마다 확인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마음을 다잡고 노력하는 모습을 서로에게 보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더 아름답고 고운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발음도 좋지 않은 언어들을 우리 입에 달고 지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말들이 우리 안에 독버섯처럼 자리잡고 있는 걸까? 그 실례를 풀어 보기 위해 여러 서적을 참고하면서 대표적인 용어들을 추려 보았다. 한번 읽어보면 대부분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흔하게 듣고 말하는 생활언어임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다 (어깨)/ 가라 (가짜)/ 겜빠이 (편가르기)/ 곤색 (감청색)/ 곤조 (근성, 본성)/ 구루마 (손수레)/ 기스 (홈. 상처)/ 꼬봉 (부하)/ 나가리 (무효, 허사)/ 네다바리 (사기, 날치기)/ 노가다 (노동자, 노무자) / 다꽝 (단무지) / 다대기 (다진양념)/ 다라이 (큰 대야)/ 다마 (구슬, 전구)/ 다마네기 (양파)/ 뎃가리 (적중했다, 바로 그것이다)/ 도리우찌 (사냥모자)/ 땡깡 (생떼, 어거지)/ 똔똔 (본전)/ 마호병 (보온병)/ 무데뽀 (막무가내, 무모한 사람)/ 벤또 (도시락)/ 분빠이 (분배, 나눔)/ 삐까삐까 (번쩍번쩍)/ 사라 (접시)/ 사바사바 (속닥속닥, 뒷거래)/ 사시미 (생선회)/ 사꾸라 (벚꽃, 사기꾼)/ 쇼부 (흥정, 승부)/ 시네루 (틀어치기)/ 시다 (보조원, 조수)/ 신삥 (새것, 신품)/ 쓰끼다시 (기본 안주)/ 쓰리 (소매치기)/ 쓰메끼리 (손톱깎기)/ 아나고 (붕장어)/ 앗싸리 (산뜻하게, 깨끗하게)/ 야끼만두 (군만두)/ 야미 (뒷거래)/ 에리 (옷깃)/ 엥꼬 (바닥남, 떨어짐)/ 오뎅 (어묵, 생선묵)/ 오야 (우두머리. 두목)/ 와리바시 (나무젓가락)/ 와이로 (뇌물)/ 요깡 (단팥묵)/ 요지 (이쑤시개)/ 우와기 (윗저고리, 상의)/ 입빠이 (가득, 많이)/ 짜라시 (광고지)/ 쿠사리 (핀잔, 꾸중)/ 하꼬방 (판잣집)/ 후까시 (부풀이, 부풀인 머리)/ 뎀뿌라 (튀김요리)/ 도란스 (변압기)/ 만땅 (가득 채움)/ 빠께스 (양동이)/ 빠꾸 (뒤로, 후진)/ 빵꾸 (구멍)/ 뻬빠 (사포, 센드페이퍼)/ 뺑끼 (페인트)/ 삐라 (전단)/ 사라다 (샐러드)/ 엑기스 (농축액)/ 오바 (외투)/ 자꾸 (지퍼)/ 조끼 (잔)/ 츄리닝 (운동복)

 

물론 공사 현장 같은 곳의 작업 용어와 법조계, 관공서 등지에서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들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할 만큼 많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우리의 의식주 모든 부분에 스며들어 있는 이러한 용어의 혼란은 가장 기본적인 정신 생활마저 그 기준을 잡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하긴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줄기차게 외쳤던 어르신들, 고귀하신 그 분들의 작품이 우리 교과서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현실이 지금의 모습인데 더 말할 게 무엇이 있을까.

총칼을 맞댄 외부의 접보다 더 무섭고 지명적인 것은 우리 안에 자리 잡은 "내부의 적"들이다. 아무리 "국제화" "세계화" "인터넷" 이라고 떠들어도, 내부의 도사린 문제들을 바라볼 줄 모르면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누가 잘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서로에게 하지 말기로 하자. 나라와 민족이 어떻게 되든 간에 골프체를 들고 희희낙락하는 어르신들은 이예 무시해 버리자. "윗물이 맑아야......"라는 말도 이젠 하기에 지쳐 버린 우리들이 아니었던가.

"나"부터 바꾸자. "나"부터 조심하고 "나"부터 "나"를 개조하자. 서로의 발목잡기는 그만하고, 이제부터라도 작은 "우리들"이 힘을 모으자. 버릇처럼 쓰던 그릇된 언어들을 버리고, 그렇게 흘려보내던 시간을 붙잡아서 "나" "우리" 를 위해 사용하자.

그렇게 작고 작은 힘을 모아 내일을 위해 투자하는 거다.

가진 게 많다고 서민들을 얕보며 거드름 피우는 이간들, 높은 자리에 있다고 병역의 의무를 우습게 앞며 우리의 혈세(세금)을 흥청망청 쓰는 존재들, 이젠 그들에게 확실한 우리의 힘을 보여 주자. 말 그대로 뼈아프게 "쿠사리"를 던져 주는 것이다.

더 이상 "사쿠라"가 "후까시"를 잡는 모습은 이젠 그만 봤으면 좋겠다.

 

글/ 채지민

작성자채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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