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友] "친구가 생기면 함께 영화보러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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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한 쪽 창 가득히 들어오는 햇살이 부드러운 오후에 전이승씨(뇌병변장애, 32세)를 만나기로 했다. 인사를 나누고 조금은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 이승씨는 대학에서 행정학을 공부하고 싶어 세 번 째 준비한 작년 수학능력시험에서 생각했던 것 보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힘들었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게다가 5월 부산에서 열릴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참여할 서울시 보치아(공을 경기장 안으로 던지거나 굴리거나 발로 차서 보내는 뇌병변장애우들의 경기)대표 선발전도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서 얼마 전까지 속이 많이 상했다고 했다.
특수학교에 다니면서 보치아를 시작했다는 이승씨는 92년 서울시 선수권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했었는데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시합이 없을 때 연습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번 시합을 준비하기 위해 두 달간 하루에 4시간씩 연습을 했었는데 예전 기량을 회복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며 아쉬어했다.
많이 힘들었을텐데 어떻게 용기를 얻었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십 년 후 남들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라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게 있는 자신의 모습에서 이제는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또 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처음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던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니까 4년 전, 이승씨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검정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대입검정고시를 보고 나서 수능을 준비하던 98년에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었다며 그때를 기억하는 이승씨의 눈에 생기가 돈다.
“매일 4시에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준비해서 5시 30분에 집을 나서요. 가리봉동에서 신설동에 있는 학원을 결석 한번 하지 않고 다녔어요. 9시부터 4시까지 수업 듣고 혼자 공부하고 집에 도착하면 항상 10시가 넘었지요. 교육방송까지 보고 자느라 하루에 4-5시간 밖에 자지 못했지만 그때 정말 신났었어요. 같이 공부하던 동생들과도 친하게 지내서 좋았구요”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과 지금도 한 달에 한번 정도 만난다는 이승씨는 지난달에도 친구가 집으로 찾아와 밥도 같이 해서 먹고 오랜만에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지낸 지도 벌써 3년. 장사를 하시느라 바쁘셔서 챙겨주시지 못하는 것을 마음 아파하신다는 부모님의 걱정과는 달리, 이승씨는 음식 만드는 것도 많이 익숙해졌고 집안살림도 즐겁다고 말한다. 밑반찬을 가져다주고 이것저것 꼼꼼하게 챙겨주는 누나들에게 항상 고맙다는 이승씨.
혼자 있을 때 주로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 특별한 취미가 없다고 쑥스럽게 웃었던 이승씨가 헤어질 무렵 극장에 가본 지 너무 오래 되었다며 친구가 생기면 같이 영화를 보러 가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헤어져 돌아오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해 내려고 노력하는 믿음직한 이승씨의 모습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런 이승씨에게 한창 초록을 더하는 봄 나무와 같은 생명력있는 만남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전이승 씨와 친구가 되실 분은 함께걸음 편집부(담당 이수지 기자) 전화 02-521-5364 또는 n2906@hanmail.net으로 메일 주십시오.
글/ 함께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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