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문의 영화이야기 ] 비디오로 보는 부산깡패와 뉴욕깡패들의 우정·의리 > 문화


[조희문의 영화이야기 ] 비디오로 보는 부산깡패와 뉴욕깡패들의 우정·의리

‘친구’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본문

영화는 서로 닮는다. 의도적인 경우도 있고 우연일 때도 있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그들의 시대를 그리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사람사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다. 기분 좋으면 웃고, 싫으면 인상쓰는 것은 어디나 같고, 남보다 더 많이, 더 쉬운 방법으로 갖기 위해 애를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 모습을 그리는 영화가 때로는 서로 비슷하게 보인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 없다. 영화제작이란 결국,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얼마나 다른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 서울지역 최고관객 기록을 동원하며 선풍을 일으킨 <친구>가 극장흥행을 마치고 비디오로 나왔다. <친구>를 보려고 한다면 미국판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서사적 깡패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감독 세르지오 레오네, 주연 로버트 드 니로, 제임스 우즈, 엘리자베드 맥거번, 1984)를 함께 보기를 권한다.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두 영화를 보면서 한세상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가 옛날 옛적의 부산 시절을 그리고 있다면 <원스 어폰 어 타임--->은 옛날 옛적의 미국 뉴욕 뒷골목을 그리고 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다른 시대에 다른 감독이 만든 영화지만 두 영화는 많이 닮았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깡패들이란 사실이 그렇고, 그들 나름의 우정과 배신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도 그런 느낌을 더하는 요소다. 어린시절부터 어른이 되기까지의 긴 세월을 그리고 있는 것이나 영화가 끝났을 때 여운으로 남는 허망한 노스탤지어까지도 별로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친구>가 <원스 어폰 어 타임-->을 베끼거나 흉내낸 것이라고 할 만한 흔적은 없다. 많은 부분에서 느낌을 공유하기는 하지만 영화가 그리고 있는 대상이나 방법은 분명히 다르니까.      

 

곽경택 감독의 <친구>는 1970년대 중반에서부터 199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절의 한국사회 한구석의 풍경과 사연에 눈길을 집중시킨다. 유신정치의 그늘에 갇힌 어른들의 세상이 어지럽게 흐르고 있는 사이, 준석과 동수, 상택, 중호 네명의 친구는 그들의 시간과 추억을 서로 나눈다. 어른들이 없는 집에서 포르노 테입 보면서 ‘저 사람들은 왜 저러고 있나’하며 침을 삼키던 어린 시절하며 굵은 점박이 무늬의 교련복을 외출복으로 입고 다니고, 책가방은 빵집이나 단골 가게집에 맡겨 두고 수업 땡땡이치며 영화보러 다니고, 껄렁껄렁한 여학생 꼬시느라 열 올리던 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세상의 쓴 맛을 조금씩 맛보던 사회초년병 시절에 이르기까지 ‘친구들의’ 시간은 어른들과 다르게 흘러간다. 지금 40대 중반을 지나고 있을 나이의 사람들이 겪었던 옛날 사진첩같은 세월의 풍경이다.

 

그래도 고등학교 시절까지의 풍경은 여유롭다. 저마다 처지가 다르기는 하더라도 극단으로 내몰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찾아 서로의 길을 가고 때로는 그 때문에 부딪쳐야 하는 대목에 이르러서 여유롭던 풍경은 살벌한 현실로 바뀐다. 좋은 일도, 싫은 일도 ‘우리는 친구아이가?’ 한마디 말로 추스릴 수 있던 시절은 가물가물 흘러가 버리고, 미친 개처럼 물고 뜯어야 하는 생존의 한 가운데에서는 필요하다면, 자신의 일에 방해가 된다면 누구든 밀어버려야 한다. 옛날의 친구였다 하더라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뉴욕의 빈민가.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삶의 뿌리를 옮겨 심으려 아둥바둥하는 사이, 건들거리는 양아치 누들스와 맥스 일당은 그들대로 생존의 기반을 잡으려 몸부림친다. 좀도둑질에서부터 시작한 ‘사업’은 밀수와 살인, 밀주로 이어지며 그 규모를 키워나간다. 친구들간의 우정도 더욱 두터워지고---. 사업이 번창할수록 그들의 차림새는 번쩍거리지만 비단옷을 걸친다고 건달 인생이 달라질까. 그들의 사업이란 밝은 세상에 당당하게 나가기에는 어림없는 것이고, 공갈과 폭력, 살인으로 밥벌이를 하는 것은 여전하다.

 

부산의 깡패와 뉴욕의 깡패가 서로 비슷하게 보이는 것은 아무리 건들거리고 번쩍거리는 치장을 해도 결국 깡패 인생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 때문이다. 건달의 아들인 준석은 보고 들은 게 건달세계의 생존방식이어서 자연스럽게 건달의 길을 밟고, 장의사집 아들 동수는 건달로 사는 게 그래도 멋진 일 아니겠느냐며 건달세계에 발을 담근다. 그러나 시시콜콜 바둥거리기보다 한탕 크게 설치는 것이 남자답게 사는 것이라고 믿는 그들의 꿈은 시간이 지날수록 처참하게 망가진다.

 

맨주먹, 빈몸으로 뉴욕의 뒷골목에서 살아남으려는 누들스와 맥스 패거리들 역시 손쉬운 생존 수단으로 깡패 세계에 몸을 담는다. 하지만 그들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더 깊이 빠져들 뿐이다. 생존의 배경이 돼주었던 금주법이 끝나면서 뉴욕 깡패들의 삶은 갑자기 혼란스러워진다. 맥스가 실행하려는 연방준비은행 탈취 계획은 누들스에게 다른 길을 선택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준석과 동수가 서로에게 칼을 겨눴던 것처럼 누들스와 맥스 역시 서로가 등을 돌리기 때문이다.

더욱 비슷한 것은 그들이 우정을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라고 믿는 것이다. 준석이나 동수는 서로 우정을 배신했다고 믿는 순간 그들의 삶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누들스는 맥스를 배신했다는 죄책감에 평생 시달린다. 진정한 우정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치있는 일이라고 믿었던 자신의 신념을 스스로 배신한 것에 대한 자책이다. 우정이 살아있을 때 그들의 삶은 전성기를 누리고, 그렇지 않을 때 그들의 인생도 무너지는 모습은 ‘읠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는 ‘사나이’들의 신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부산깡패와 뉴욕의 깡패가 똑같이 건달의 길을 걸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친구>는 답답한 현실, 그 현실을 누르고 있는 빗나간 힘에 대해 소리를 지르고 주먹을 휘두른다. 준석이 열 받는 것은 세상이 개떡같은데도 어떻게 해볼 수 없다는 답답함이 가장 큰 이유고, 동수가 깡패가 되어야겠다고 작정하는 것도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친구의 험악한 갈등을 지켜보던 또 다른 친구 상택 역시 무력감에 빠지는 것도 누군가를 향해 분노하는 것처럼 보인다.

 

관객들이 영화에 빠져드는 것도 ‘친구’들이 겪는 절망과 분노, 막다른 골목인줄 알면서도 어쩔수 없이 달려가야 하는 절박함에 공감하기 때문은 아닐까. 꿈? 미래? 준석이나 동수에게 그말은 답답한 현실을 더욱 희롱하는 ‘개소리’처럼 들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관객들 역시 준석이 패거리들이 어쩔수 없이 멱살잡혀 끌려가던 그때의 현실과 다름없다고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음에 드는 대학에 가는 일은 죽기살기로 덤벼도 승부를 장담하기 어렵고, 겨우 들어간 대학을 힘들게 졸업해봐야 취업자리 찾느라 또 허둥거려야 한다. 번듯한 직장에 다닌다며 어깨를 세우던 샐러리맨들조차 언제 자기 자리가 없어질지 눈치 보며 전전긍긍하는 일이 다반사다. 기 펴고 큰소리 칠 만한 처지가 아니다. 처참하게 바둥거리는 영화속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바로 오늘의 내 모습 그대로를 보는 것이다.

 

이에 비해 <원스 어폰 어 타임--->은 서사적 비장함에 더 가까이 다가선다. 열 너댓살 소년 시절에서부터 검은 머리가 희끗한 백발로 바뀔 때까지의 수십 년 세월을 따라가는 삶의 파노라마는 그 속에 녹아있는 우정과 사랑, 배신 그리고 세월의 덧없음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3시간 47분(미국판 상영시간, 국내 개봉 때는 2시간)의 상영시간은 영화 속 세월만큼이나 길다. <원스 어폰 어 타임--->은 출시된 지가 꽤 지났지만 비디오를 찾을 수 있다면 두 영화가 얼마나 닮았는가를 들여다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이고, 비슷한 소재를 어떻게 다르게 그리고 있는가를 비교해 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글 조희문 (상명대 교수·영화평론가)

 

작성자조희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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