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있는 풍경] 할머니 뾰족 등은 산(山)이요 산! > 문화


[삶이 있는 풍경] 할머니 뾰족 등은 산(山)이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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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철을 맞은 국화가 옹근 잎을 세우는 건너편, 그 많던 해바라기는 검은 씨앗으로 저물어 후두두두 하강이다. 어제는 처음으로 선풍기 한번 돌리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입추 지나고 처서도 지나고 칠석날, 견우직녀가 상봉의 기쁨으로 흘린 눈물이라는 칠석비는 내리지 않았으나 한결 서늘해진 날씨로 찾아온 칠석을 지나고 나니 한낮의 볕 마당이 시시하고 만만해 보인다. 살살 바깥출입이 잦고 있다.

 

칠석날 교회창립잔치 때 쓰고 남은 떡과 포도송이를 봉지에 담아 들고 신애 할머니집을 찾았다. 저 지난주 신애가 내려왔다는 소리는 동네 소식통 수다쟁이 아줌마 교인들을 통해 진작 들었다. 고 가스내 얼마나 컸을까 가보련 했던 것이 잔치다 손님이다 바쁜 일통으로 차일피일 미뤘던 게 이렇게 되었다.

일요일날 교회에 데리고 나올 줄 알았는데 신애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 또 어디 아프신가? 별일이야 있겠어. 신애 때문이겠지. 세 살짜리 ‘멋대로 아가씨’ 때문이겠지.

 

신애 할머니는 꼽추다. 내가 여기다가 척추만곡 지체장애우라고 생소한 말로 바꾸고 싶지는 않다. 우리 마을에서 이렇게 긴 장애명을 아는 사람은 나뿐이고 동네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어봤자 ‘그래 너 유식하다’ 오히려 비꼴 것이 뻔하다. 당사자 앞에서야 그렇게 안 부르지만 신애 할머니는 우리 동네에서 그냥 ‘꼽사(꼽추) 할매’로 통한다. 교인들 사이에서는 집사님이라고 꼬박꼬박 불리지만서도 행여 마음이 거스르면 대번 그 꼽추 할매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이 튀어나오기 일쑤다.

 

나는 다른 교회 목사님들처럼 교인들을 집사님이네 권사님이네 형제님이네 자매님이네 이렇게 부르지 않는다. 그렇게 부르는 게 되게 이상하고 어색하고 유치하게까지 여겨진다. 모두 누구 할머니 누구 할아버지 누구 어머니 아무개씨 이렇게 이름으로 부르는 게 편하고 다정하고 좋다. 그러나 교인들 사이에서는 교회에서 얻은 봉사직의 직책 이름이 대단한 벼슬이나 되는 줄 아시는가 어떻게서든 챙겨 부르려 애를 쓰는 모습이다. 다들 그렇게 부르든 말든인데 신애 할머니 최집사님 만큼은 ‘집사님’이라고 챙겨 부르는 것이 참 괜찮다라고 여겨진다.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면 입버릇이 되었을 텃골 곱추 할매라는 말이 언제 튀어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신애 엄마는 아이를 낳자마자 이곳 시골 외할머니한테 잠시 맡기고 자기 일을 보고 살았다. 다방에서 차를 나르는 일을 했다. 나는 소읍을 가다가 다방만 보아도 신애 엄마, 아이가 아이를 낳은 그 ‘어린 엄마’를 생각했다. 눈물을 뿌리고 데려다 놓은 신애를 신애 외할머니는 정성스럽게 키웠다. 나도 종종 유모차를 타고 교회를 찾은 신애를 들쳐업었다. 신애 할머니는 등이 뾰족해서 아이를 업지 못했다.

“내가 야를 못 업어주는 것이 한(恨)이요, 한.”

할머니의 그 말씀을 듣고 가슴이 아려서 그럼 내가 대신 업어줄라요 하고 들쳐업고 마당을몇 바퀴고 돌았던 날이 있었다.

할머니는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이리 저리 마실을 다녔다. 유모차가 할머니 키에 육박했다. 그래서인가 할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유모차를 밀었다. 언덕배기를 오를 때는 하느님이 시원한 서늘바람으로 할머니 이마에 땀을 식혀 주었다. 

“우와! 우리 신애 몰라보겄네?”

번쩍 들어 신애를 껴안았다. 몽창하게 살이 붙은 신애, 엄마 곁이 좋긴 좋은가봐.

“엄마가 다시 놓아두고 간 것은 아니죠?”

“요새 겁나게 바쁘닥 안 하요? 다음달 되어야 데려갈 모양인디 되어봐야 알제 몰르겄소. 아따 요거이 컸다고 내가 못해 보겄구만이라우. 그래가꼬 주일날 교회도 못 나갔당게요. 집밖에만 나가믄 감당을 못하겄어라우. 어쯔게나 날랭가. 달구새끼나 속없는 소양치 새끼도 저것보다는 점잖을 것이요.”

그래도 할머니는 돌이 넘도록 키운 정이 있어 외손녀 신애가 더없이 반가운 모양이었다.

 

신애는 내 품에서 나를 찬찬히 훑어보다가 울상을 지었다. 처음 보았을 이렇게 긴 수염에 놀란 것이다.

금방 앙앙앙 울 태세로 찡그린 얼굴. 아이고 어떻게 조처를 취해야겠군.

“신애야. 요거 먹어볼래?”

내 그럴 줄 알고 까까를 미리 준비했다 아닌가. 호주머니에서 알사탕을 꺼내 씹어서 두 동강을 내어 입에 물어주었다. 울상을 뚝 거두고 까르르르 웃으면서 알사탕을 깨문다. 그걸 보고 할머니도 웃고 나도 웃고.

 

동네까지 따라온 우리집 개 추와 빠삐녀를 본 신애는 개를 향해 돌진하다가 그만 넘어졌다. 신애가 흙바닥에 누워 울자 할머니는 신애를 일으켜 흙을 털어 주고 샘에 가서 손을 씻어주고 나는 이놈들 집에 얼른 안 갈래? 개를 쫓고 대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아! 샘에 쪼그려 신애를 씻어주는 할머니를 보았다.

아! 할머니 뾰족 등이 조그만 산(山)처럼 보였다.

아니 그건 분명 산이었다. 멀리 진짜 산과 겹쳐진 작은 산이었다. 그 작은 몸으로 낳은 딸이 또 딸을 낳아 아! 이렇게 산맥을 이루었구나. 아빠도 없이 자라는 가엾은 외손주를 씻기는 꼽추 할머니. 작은 언덕처럼 친근한 우리집 뒷동산 같은 산을 등에 이고 계시는 할머니.

“목사님! 진지 자시고 가셔야 쓰요이.”

“집에 가서 먹을랍니다.”

“아따 우리집 묵은지(짠지) 맛나단 말이요.”

“그라믄 한포기 싸 주세요. 집에 가서 묵을랑게. 점심때 손님 올랑가도 몰르고요.”

“쪼께만 기다리시쑈이. 배락(벼락)같이 한 포기 꺼낼 텡게.”

할머니가 부엌으로 사라지자 신애가 할머니 없어졌다고 다시 운다. 이 가스나, 완전 울보로구나. 내가 끌어안고 얼러도 좀체 그치지 않는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애가 자라서 사춘기 소녀가 되어도 이렇게 할머니를 좋아할 수 있을까. 우리 외할머니 어딨냐고 서럽게 울까. 저 뾰족 등까지 한아름 끌어안고 우리 외할머니 사랑하는 우리 외할머니 그럴까.

신애야! 그래야 한다. 알았지? 요 귀여운 것 신애야. 볼따구에 수염턱을 문질렀더니 더 죽는다고 운다. 


글/ 임의진 목사

이 글을 쓴 임의진 목사는 전남 강진과 광주에 ‘남녁교회’란 작은 교회를 세워 예배를 보고 조그맣게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자전거를 몰고 마을을 어슬렁거리는 일이 하루일과라는 임 목사의 남녁교회 세례명은 ‘어깨춤’이라고 한다. 수필집 「참꽃 피는 마을」이 있다.

 

작성자임의진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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